공부만큼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합니다
난 운동을 좋아하던 아이였나? 기억이 흐릿하지만 적당히 맞는 얘기인 것 같다. 유치원, 초등학교를 다니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하는 축구, 수영, 배드민턴 등에 열성적으로 참가했고, 만나면 꼭 뭐든 간에 스포츠를 하나씩은 했다. 대부분의 운동을 할 줄 아시는 아버지께서는 주말이든 평일 저녁이든 날 데리고 나가서 축구를 하든, 캐치볼을 하든, 배드민턴을 치든 꼭 뭔가를 같이 하셨다. 시간이 많이 남을 때는 온 가족이 월드컵 공원에 가서 위 세 가지 스포츠를 한 번에 하곤 했다. 이렇게 보니 초등학교까지는 앉아있는 시간보다 뛰어다니는 시간이 월등히 많았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이제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게 되면서, 운동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이 훨씬 줄었다. 기껏해야 학교 체육시간에 축구를 같이 하거나 아침 배드민턴 반을 등록해서 아침 조회 전 1시간 동안 배드민턴을 친 게 전부였다. 공을 잡으면 누군가 죽일 듯이 달려드는 게 무서웠기에 축구는 점점 흥미를 잃었고, 타구음이 경쾌하고 또래보다 잘했던 배드민턴을 훨씬 자주 그리고 깊이 하게 됐다. 대회를 나가기도 하고, 학교에 선수 코치님이 오시면 레슨도 들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중학교보다 더 운동에 쓸 수 있는 시간이 줄었다. 학구열이 높은 학교에 진학했고, 따로 운동을 해야겠다는 의식도 없었다. 그저 배드민턴이 좋았고, 어째서인지 배드민턴 준선수 급의 학생들이 꽤 많았기에 체육 선생님께 혼나가면서 체육관에서 몰래 점심시간마다 배드민턴을 치고는 했다. 점심을 빨리 먹고 다리 밑에서 배드민턴을 열심히 치다가 5교시 시작종이 울리기 직전에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자리에 앉은 일도 많았다. 그마저도 고3에 다다르면서 눈치 보여서 하긴 어려웠지만.
재수를 하면서는 오히려 더 규칙적으로 운동했다. 재수를 시작하기 직전에 집에서 할 수 있는 턱걸이와 딥스 기구를 사서 매일 학원 끝나고 집에 오면 30분 정도 운동했고, 일요일 오후에는 같은 학원을 다니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배드민턴을 치러 와우산에 갔다. 이 또한 수능이 다가오면서 점차 줄였지만, 운동을 아예 쉬지는 않았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더 다채로워졌다. 신입생 때부터 기숙사에 사는 동기들을 모아다가 철봉에서 턱걸이를 같이 했고, 무료였던 기숙사 헬스장에서 헬스를 시작했다. 배드민턴 지역 동호회에도 두 군데나 가입해서 서울에서 레슨도 받고 동호회 활동도 하고, 광교에서도 동호회 활동을 이어나갔다. 여름방학에 골프도 배우고, 이후에 어깨를 다치게 되면서 1년 정도 운동을 쉬었지만, 회복한 이후부터는 지금까지 수년간 복싱과 헬스를 꾸준히 하고 있다.
예과 2학년 때 주짓수를 시작한 동기와 항상 하는 말은, 우리가 예과 1학년때부터 헬스를 제대로 시작해야 했음이다. 한창 시간이 부족하고 잠도 못 자는 본과 때 운동을 시작한 탓에, 근성장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수면과 회복이 부족했음을 후회하는 것이다. 시간이 남아돌던 예과 때부터 헬스를 열심히 했다면 더 크고 좋은 몸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렇게 다시 보니 난 누구보다 운동을 즐기는 학생이었다. 지금은 물어본다면 대답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운동을 정말 좋아하지만 처음 시작할 땐 무슨 재미인지 잘 몰랐다. 그냥 친구들을 이기려고 뛰어서 땀 흘리면 뭔가 개운했고, 머리가 맑았다. 그게 운동의 효과인지 아닌지 알게 뭐람 하면서 그냥 즐겼고, 오히려 지식의 과잉시대에 사는 지금보다 순수한 재미를 추구했다. 잘하고 싶다보다도 경쟁 스포츠의 짜릿한 압박감을 즐겼고, 그게 뭐든 그냥 재밌었다. 요즘은 예전보다는 의무감에 하게 되는 것도 있고, 단순히 즐기기보다 잘하려고 하는 마음이 더 강하지만, 그럼에도 즐거운 건 여전하다.
의학적으로 운동을 하는 건 당연히 정신적 신체적으로 큰 도움을 준다. 주 3회 이상 숨이 찰 정도 이상의 운동을 하는 것이 혈압, 당뇨, 비만 등의 질환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이미 많이 증명되어 왔고, 정신적으로도 마찬가지다. 꾸준하게 운동을 하는 그룹에서 우울증, 불안장애 등의 정신질환의 유병률이 낮은 것은 유명한 얘기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 강조하고 싶은 운동의 가장 큰 장점은 사회적인 면에 있다.
운동을 오래 하고 최소한 꾸준히 한 사람들은 사회로부터 쉽게 고립되지 않는다. 인생도 고립시켜야 근성장을 이룬다는 몇몇 극단적 헬스론자를 제외하면, 운동은 기본적으로 지극히 사회적인 행위다. 스포츠의 기본인 경쟁에서 얻을 수 있는 인간적인 성숙과, 라이벌리, 팀워크 등은 앉아서 공부만 한다고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또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고통(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의 역치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높은 경향이 짙게 나타난다. 이는 본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라, 그것이 미생에 나온 명대사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에 여실히 드러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능력을 키우려고 운동을 시작하는 주위 사람을 보면, 쉽게 그만둔다. 운동을 해서 체력을 길러야겠다 생각하지만, 애초에 그 능력 자체가 부족하기에 특별한 동기가 없다면 오래 지속하기 힘들다. 그래서 무조건 어릴 때, 멋모를 때, 잘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 때, 그저 즐거울 때 운동을 시작하는 것을 강력하게 권한다. 학생들이 어릴 때 선행 한두 학기 더 나가려고 하루 종일 학원 돌리고, 숙제에 치여서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하는 것을 보면, 신장 대비 몸도 가볍고 유연성도 높은 저 시기가 운동에 얼마나 중요한데 하는 생각이 든다. 정작 학창 시절을 생각해 보면 소위 말하는 전교권에 놀던 친구들은 축구든 농구든 배드민턴이든 복싱이든 뭐든 하나쯤은 잘하는 운동이 있었는데 말이다.
물론 난 어릴 때 운동을 안 했는데, 그럼 성인이 된 지금은 망한 건가요?라고 한다면 절대 아니다. 우리의 삶에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어리고 젊다는 걸 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하루라도 빠르게 배우고 궤도에 올려야 즐겁다. 이 글을 읽는 누구든 운동을 하고 있지 않다면 지금 바로 시작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꼭 그들의 자녀로 하여금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운동 하나 두 개쯤은 제대로 깊게 배우게 했으면 좋겠다. 평생 가는 건 학력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