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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커피 Jan 31. 2024

돌,바람, 물 그리고 ...

포도호텔, 방주교회, 수풍석박물관


아무 계획 없이 길을 나섰다가 우연히 들른 곳에서 가끔 감동할 때가 있다. 우동 한 그릇 먹고자 들른 포도호텔이 그랬다. 제주 중산간 지역을 지나다 문득 생각이 났는지 남편이 맛있는 우동을 사준다고 하길래 우동이 맛있어 봐야 우동이겠지 뭐 했다가 세 번 놀랐다. 가격에서 놀라고, 맛이 그만큼은 미치지 못한 것 같아 놀라고, 포도호텔의 건축물에 놀랐다.

출처:podo.thepinx.co.kr


이타미 준의 작품이라고 했다. 재일교포이면서 제주도의 자연을 무척 사랑한 건축가라고 했다.

포도호텔은 삼백여 개가 넘는 제주오름과 전통 초가집에서 영감을 얻어지었다고 한다. 처마를 맞대고 있는 듯한 초가지붕 모양의 지붕이 하늘에서 보면 마치 한송이의 포도 모양 같아 포도호텔이라고 했다. 내부 객실도 포도알처럼 개별적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한다. 건축을 잘 모르지만 공간이 주는 친근감에 더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 친화적인 환경 때문인지 날아가던 새들도 잠시 들러서 옆에서 식사하고 있었다. 방해하지 않고 한 컷.

모처럼 감동받아하는 아내의 모습에 신이 났는지 남편은 이타미 준에 관한 짧은 지식들을 쏟아놓는다.


"이타미 준은 재일교포이고 한국 이름은 유동룡 이래.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자부심을 가지고

죽을 때까지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살았다네. 대단하지?

여기서 가까운 곳에 이타미 준의 방주교회라는 건축물도 있어.

노아의 방주 알지?

그런 방주 모양으로 교회를 지은 건데

산방산을 마주 보며 서귀포 바다를 향하고 있대.

식사하고 가볼까?"


제주 중산간 지역의 낮은 언덕, 울창한 나무 사이로 오후의 햇살이 잠시 내려앉은 곳에 방주교회는 있었다.

교회 주변에는 잔잔한 물이 내려앉은 듯 인공연못을 만들어 두었다. 모진 풍파를 견디며 바다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햇살이 비추는 교회의 지붕은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오니 교회 지붕에 내려앉은 햇빛이 퍼져 연못으로 흩어졌다. 파란 제주의 하늘이 교회 주변에 내려앉았다. 이렇게 고요함 속에서 기도하다 보면 절대자와 만나 부끄러운 내 모습도 온전히 내어 보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출처: mk.co.kr

교회 내부로 들어가려면 연못 물 위에 놓인 디딤돌을 밟아야 했다. 마치 하나님의 세계와 속세의 경계처럼 물을 지나야 한다. 그의 세상으로 선을 넘어가는 듯 경외심마저 들었다. 예배당에 앉으니 마음이 편안했다. 교회 내부의 나무 기둥들은 천장까지 연결되고 햇살이 예배당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연약한 인간을 위한 그분의 사랑처럼. 예배당에 앉으면 내가 지나온 연못의 잔잔한 물결이 보이고 제주의 방주 교회 안에서 은밀한 시간을 통해 초라한 나 자신을 내려놓는다.

방주교회

짧지만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포도호텔이 먹고 마시는 속세의 경험이었다면 방주교회는 오롯이 나를 내려놓고 절대자를 대면할 수 있는, 아름다운 대자연 앞에 먼지처럼 가벼운 존재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이타미 준은 특히 제주를 사랑했다고 한다. 제주 지역의 물, 바람, 돌을 테마로 해서 만든 수풍석뮤지엄도 내친김에 가보기로 했다. 예약하고 며칠 후 방문한 수풍석 박물관. 전시물이 있는 공간이 아니라 건축물 자체가 물과 바람과 돌이라는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기존의 박물관 개념을 생각하면 안 된다. 지역의 고유한 속성을 살려 자연과 인간의 삶이 어우러짐을 추구한 건축가 유동룡의 철학이 그대로 드러난 곳이었다.


지붕이 없는 둥근 천장으로 하늘과 빛이 그대로 직사각형의 호수 위로 쏟아졌다.  흔들리는 바람에도 작은 움직임을 드러내는 호수의 물결들을 보면서 서 있는 곳 어디서건 명상이 가능할 것 같은 수박물관.

수박물관 내부


수풀 사이에 헛간의 모습을 하고 있던 풍 박물관은 적송을 판으로 이어 바람이 자연스럽게 지나가도록 만들었다. 만들었을 초기에는 적송이 붉은색을 띠었는데  세월이 지나 이제 중후한 맛을 더해 짙은 고동색으로 변했다고 한다. 얼핏 보면 직사각형 모양이지만 한쪽은 직선 반대쪽은 곡선으로 휘게 만들어 바람의 소리가 더 잘 들리게 했단다. 오래 서 있으면 바람의 노래가 들릴 듯했다.

풍박물관 내부


산화 강판으로 만든 석 박물관은 멀리서 보니 그냥 덩그러니 놓인 돌덩어리 같았다. 어두운 내부로 들어가면 오직 하늘이 보이는 작은 창과 돌만이 존재한다. 천장에 뚫린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시간에 따라 모양과 위치를 바꿔가며 방의 고요를 쓸쓸하지 않게 만들어주었다.

석박물관 외부
석박물관 내부


예순이 넘은 이타미 준이 10년 가까이 공들여 진행한 제주 핀크스 리조트 포도호텔, 수풍석박물관의 프로젝트는 그의 말년에 모두 이룬 일들이라고 한다. 이 모든 것이 그의 건축 인생 30~40년이 지난 시점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의미이다. 예순이 넘은 나이임에도 건축에 관한 그의 열정과 제주를 사랑한 그의 마음이 합해져 이렇게 아름다운 결과로 드러난 것이다.


'이 일을 하면서 또, 이루고 난 후 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에 대한 사랑이 아주 컸다고 하니 사랑하는 곳에 자신의 재능을 모두 쏟아부은 그의 마음은 아주 흡족했으리라. 모든 일의 의미가 결과보다 시도이자 과정이라고 본다면 이제 조금씩 나도 나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인생 2회 차를 생각하며 잠시 쉼을 갖는 나에게 거장의 가르침이 새롭게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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