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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커피 Jan 24. 2024

고래를 만나다

제주남방큰돌고래, 희망, 동물보호

그 녀석들을 만난 건 서귀포시 대정읍 노을해안로에서였다. 

넓디넓은 띠로 연결된 듯 서귀포 바다는 너울대는 파도에 맑은 하늘까지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아니 우연한 만남을 하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녀석들이 저만치서 꼬리를 흔들고 장난치며 내게로 오고 있었다. 제주남방돌고래 떼들이라고 했다. 제주도에 이 남방큰돌고래가 100여 마리나 살고 있다.


'그래 이눔들아, 반갑다 반가워.'

출처: 피시본제주이야기 블로그


'제주도 서귀포 대정읍에 가면 삼팔이, 복순이, 춘삼이가 아기 돌고래들과 함께 헤엄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친구들은 수족관에 붙잡혀 고래 쇼를 하다가 대법원의 판결에 의해 제주도 바닷가로 돌아간 남방큰돌고래들입니다. 언젠가는 꼭 보러 갈 겁니다.'


얼마 전 인기 드라마였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이 돌고래가 나왔었다.

또렷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우영우 변호사의 이야기가 가슴에 꽂혔다.


유난히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들 덕분에 동물에 관한 책을 많이 읽고, 동물원도 많이 다녔었다. 연간 회원권을 끊어놓고 다닐 정도였으니 말이다. 고래에 관심이 많던 아이들을 위해 돌고래를 보여주고자 언젠가 제주도 퍼시픽랜드를 찾은 적이 있었다. 마침 고래 쇼를 시간대별로 하고 있었다. 잘 훈련된 고래들은 음악에 맞춰 꼬리를 흔들고 춤을 추며 수영하기도 하고, 조련사가 들고 있는 훌라후프를 통과하기도 했다. 사람들과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환호하며 좋아했고 그 쇼를 즐겼다. 죽은 생선 몇 마리를 던져주면 돌고래들은 360도 몸을 회전시키며 온갖 기술을 소화해 내었다.


아이들이 마냥 좋아할 줄 알았는데, 돌고래쇼를 다 본 아들이 한마디 했다.


'엄마, 돌고래가 너무 불쌍해. 돌고래 눈이 슬퍼 보여요. 우는 것 같아.'


넓은 바다를 유영하는 큰 고래만 책에서 보다가 수조에 갇혀 노예 같은 고래들을 보아서인지 아이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이후에 동물 학대 이슈가 확대되고 환경단체와 의식 있는 시민들이 이 녀석들을 바다로 돌려보내자는 운동이 진행되었다.


예전 퍼시픽랜드에서 불법으로 제주 바다에서 포획한 남방큰돌고래 11마리를 샀다고 했다. 거의 1억 정도를 들여 그 녀석들을 잡아 들여 훈련을 시키고 돌고래쇼를 한 것이다. 돌고래 쇼를 할 만한 시설도 열악했으니, 11마리 중에서 5마리는 죽었다고 했다.


당시 퍼시픽랜드에서 고래쇼를 하던 아이들은 네 마리였다. 춘삼이와 삼팔이는 돌고래쇼를 하고 있었고, 복순이는 장애가 있는 고래였다. 그리고 이런 복순이 곁을 떠나지 않고 늘 함께였던 태산이가 있었다. 복순이는 이유는 알 수 없으나 턱이 약간 돌아가 입이 비뚤어져 있었다고 했다. 제주도 바다에서 잡힌 이래로 훈련도 거부해서 조그마한 다른 수조에 가두어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태산이가 복순이 옆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할 수 없이 같이 가두었다고 한다. 장애를 가진 복순이가 안 먹으면 태산이도 안 먹고 그렇게 복순이를 보호했다고 한다. 태산이는 순정남이었나보다.


복순이를 다시 제주 바다로 돌려보내려고 하니 비뚤어진 입으로 살아있는 물고기들을 잡아 먹을 수 있을지 연구원들의 걱정이 많았다고 했다. 해서, 이 녀석들이 제주 야생의 바다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가두리를 치고 제주 바다에 익숙해지는 훈련을 시켰단다. 처음에는 살아있는 고등어를 풀어놓으니 도망갔다고 한다. 살아있는 고등어를 복순이가 먹기 시작하자 태산이도 그제야 먹었다고 한다.  


대법원의 판결을 듣고, 제돌이 삼팔이 춘삼이가 먼저 훈련을 받고 제주 바다로 풀려나갔다고 했다. 야생훈련을 받던 삼팔이는 그물을 찢고 먼저 나갔다고 한다. 동물사회에는 어디든 이렇게 용감무쌍한 놈이 한 두 놈씩 꼭 있나 보다. 2015년 7월에 비로소 태산이와 복순이도 마침내 제주 바다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이렇게 풀려난 제주남방돌고래들은 다른 곳을 가지 않고 제주도 연안을 뱅뱅 맴돈다고 한다. 그러다 작은 고래 새끼들이 함께 유영하는 것이 발견되었단다. 제주 바다로 풀려났던 춘삼이, 삼팔이, 복순이 셋 다 새끼를 낳아서 잘 기른 것이다.


언젠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도 '야생으로 돌려보낸 제주남방돌고래가 세계 최초로 새끼를 낳아 기르다'라고 보도한 적이  있다. 장애가 있던 복순이는 적응 못해서 죽을 거라고 언론에서 한결같이 얘기했었는데 결국 새끼를 낳아서 잘살고 있다. 새끼도 낳고 가정도 가졌으니 그럼 된 거다. 기특하다 복순아.


출처: 제주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돌고래 연구팀, 위: 남방큰돌고래 삼팔이와 새끼돌고래, 아래: 남방큰돌고래 춘삼이와 새끼돌고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자폐를 가진 장애인으로서 유독 고래에 집착한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가 수많은 동물 중에서 하필 고래를 선택했을까 하는 물음표가 생긴다.


어릴 적에 아이들과 같이 읽은 동물 책에서도 그런 내용들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장애가 있듯 모든 동물은 장애가 있다. 재밌는 것은 사람 이외에 모든 동물 중 유일하게 적극적으로 몸이 불편한 동물을 돕는 동물은 고래뿐이라는 것이다. 침팬지는 장애를 가진 개체를 잔인하게 공격한다고 한다. 동물의 본능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자리를 차지한다고 한다.

고래는 야생의 바다에서 이동 중에 허파로 숨을 쉬어야 해서 만일 다치거나 정신을 잃고, 기운이 없다거나 하면 물아래로 가라앉게 된다. 그러면 주변에 있는 다른 고래들이 그 한 마리를 등에 업고 다닌다고 한다.


어쩌면 우영우가 꿈꾸는 세상은 고래들 세상이 아닐까. 사람도 장애가 있거나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을 보면 도우려고 한다. 반대로 도와주지 않고 애써 외면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러나 고래 세상에서는 돕고 말고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장애 문제에 관해서는 고래사회가 인간사회보다 더 정이 넘치는 것 같다.  


대학 다닐 때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과 어수선한 사회적 분위기를 자조하며 술 한잔 걸치면 동기나 선배들은 그 녀석을 잡겠다고 동해로 떠난다는 노래들을 많이 불러댔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앉았네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삼등 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그래도 생각나는 내 꿈 하나는

조그만 예쁜 고래 한 마리~


불확실하고 불안한 이십 대의 좌절과 번민의 시기에 고래는 아마도 희망과 꿈의 상징이었나 보다.  


나도 서귀포 바다에서 희망을 보았다. 장애를 가진 복순이가 지극한 태산이의 사랑으로 돌봄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가 새끼도 낳고, 지금 저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그럼 된 거지. 그 녀석들이 떼 지어 바다를 헤엄치며 동쪽으로 이동하길래 나도 육지에서 그놈들을 따라 운전해서 중간중간 사진을 찍고 짝사랑하듯 그놈들을 쫓아다녔다.


바다에서 그 고래들을 보고자 제트스키를 타고 돌고래 떼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사람들 무리가 부끄러워진다. 고래를 보기 위한 제주도 관광 선박들도 많았다. 하지만 적절한 거리를 두어 배의 시끄러운 소리에 고래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를 바랐다.

인간은 본능적인 행동을 바로잡을 수 있는 지적인 능력을 갖춘 동물이다. 인간이 인간다워지기 위해서는 적어도 나의 즐거움을 위해서 누군가의 행복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시끄러운 돌고래 관광 배보다는 쌍안경을 들고 올레길을 걸으며 제주 남방큰돌고래 무리를 만나길 바라본다.


그러다 며칠 후,

서귀포 이중섭 거리를 걷는데 한 마리의 고래를 또 만났다. 이 고래는 벽에서 유영하고 있었다. 이중섭미술관에서 1분 정도 걸어가면 독립서점 유화당이 있다. 좋은 책을 추천해 주시는 책 지기님도 훌륭하지만 사실 고래벽화 때문에 더 유명해진 듯하다. 

이중섭거리 유화당 독립서점 벽

아, 서귀포에서 고래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방심하면 툭 하고 튀어나온다.


제주남방큰 돌고래 뛰어노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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