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로 보낸 한 철
나는 물건을 수집하는 버릇이 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반복해서 같은 카테고리의 물건들을 사모으는 편이다. 좋아하는 물건이라면 그립감의 작은 차이에도 재미와 만족을 느끼는 편이어서 그런 것 같다. 웃프게도 팬티의 경우는 만 원에 네 장 하는 팬티를 사서 오래도록 입는다. 그 돈을 아껴 대신 만원, 이만 원짜리의 뜨개바늘을 사모으곤 했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 편이 더 기분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코바늘을 사 오므고 써보았지만 결국 할머니가 쓰시던 코바늘 5호가 어쩐지 제일 딱인 느낌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면끈을 손잡이가 아플까 봐 감아놓은 이 허름한 코바늘이 이상해서 쫑쫑 감아놓은 실에 칼집을 내어 벗기려 했는데 실이 돌아가기만 하지 영 벗겨지지 않았다. 그래서 포기하고 쓰다보니 웬 걸 편하다 감겨진 실이 쥔 손이 뜨면서 미끄러지는 것을 잘 잡아주고 있다.
할머니는 이 코바늘 하나로 발매트와 제사 도구들이 담긴 목재함을 보호하는 받침대를 뜨셨다. 그리고 남은 면 콘사에 콕하고 바늘을 꽂아 내게 주셨다. 앞으로는 쓰지 않을 것 같다며. 마지막 뜨개도구를 쿨하게 넘겨주었다. 사실 할머니에게 코바늘과 면사를 받을 때 이미 내게는 그것의 100배가 넘는 코바늘과 실이 있었다. 그렇지만 할머니가 준 실과 바늘이 반가웠다. 할머니 꺼였으니까.
나는 할머니와 어릴 때부터 같은 방에서 자면서 자랐다. 할머니는 오랜 동무 같았다. 연애시절 밤새 남자 친구와 통화를 하면, 옆에서 듣던 할머니가 연애코치를 해주기도 했다. 나의 시시껄렁한 고민과 이야기를 들어주던 할머니는 뜨개질을 자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뜨개질을 시작하자 펄쩍 뛰었다. 아이 낳고 손목이 남아나지 않을 거라고 경고했다. 나는 그 말을 듣지 않았고 계속 손목에 소리가 날 때까지 뜨개질을 했다. 그 시절 코바늘은 나의 전부였다. 숨을 쉬는 것처럼 중요했던 일이었다.
시간이 흘러, 마음도 손목도 회복되어 코바늘을 멈추고 쉴 스 있게 되었다. 그동안 결혼을 하고, 아이와 남편을 챙긴다는 핑계로 할머니와 자주 통화를 하지 못한다. 어쩌다 전화를 해도 할 말이 없어서 남동생이나 언니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때우게 된다. 할머니와 나는 어떤 긴 시간을 통과하며 조금 멀어진 것 같다. 그 시간이 너무 지난하고 아파서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다. 목이 메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 당시 할머니는 아흔 살이 넘으셨던 할머니의 엄마가 요양원에 계시다 결국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주변에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혼자 티브이를 보다 운다고 나에게 하셨다. 나는 어떤 말을 할머니에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슬픔이다. 그때 나의 상황도 좋지 않았다. 어린아이 둘을 키우며 종일 집안에서 씨름 중이었고 남편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내내 계속 우울한 상태였던 것 같다. 할머니는 할머니의 방에서, 나는 나의 방에서 서로 만나지 못한 채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전하지 못한 말들이 쌓여가고, 그렇게 오해도 점점 깊어졌다. 지나가며 하는 사소한 말들이 가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가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처량했다. 이 세상에 혼자된 기분.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할머니는 여전히 분명 나를 사랑할 거라는 걸... 내가 머뭇거리며 시간을 보낼수록... 할머니는 오랜만에 찾아뵐 때마다 점점 늙어서 작아지고 있다. 이제 할머니는 아이처럼 작아졌다. 표정도 말수도 줄어 함께 사는 딸인 나의 엄마에게 마음을 기대고 살아가신다. 쇠약해진 할머니의 손을 내가 잡아드리지 못하는 것에 가슴이 아프고 죄송스럽다.
할머니의 코바늘을 매만지며... 할머니가 만지던 이 바늘이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백개의 코바늘을 잊어버려도 상관없다. 나는 할머니 꺼가 제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