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8년부터 노트북 대신 아이폰에 연결된 무선키보드를 사용하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때 둘째 아이가 태어났고, 드라마 대본 습작을 해야 했지만 도무지 글 쓸 시간이 나지 않았다.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고 있거나 공원에 있을 때 틈틈이 글을 쓰려고 무선키보드를 구매했다. 게다가 그 당시 핸드폰과 같이 넣고 다닐 작은 가방 정도가 내가 아이를 키우며 어깨에 메고 감당할 수 있는 무게였다.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손으로 노트에 적기에는 시간도 속도도 한계가 있었다. 한 웹소설 작가가 자기는 머릿속에 지나가는 문장을 손가락의 속도에 맞춰서 글을 뽑아낸다고 했다. 그래야 하루 2만 자가 가능할 것이다. 나도 한번 그런 식으로 작업해 볼 수는 없을까. 시간이 없고 글마다 돈을 받는 생계형 작가라면 글자마다 효율과 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무선키보드로 날아가는 듯이 내 문장을 팝콘처럼 튀겨내며 무선키보드를 두들겼다. 내 문장은 뇌를 바로 거치고 인터넷으로 튀어나왔다. 자주 오타가 나고 자주 틀렸지만 내가 정한 마감 기한 안에 글을 빵 찍어내듯이 찍어내는 것을 목표로 작업하였다.
2023년 얼추 내가 정한 마감을 지켜내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목표는 이룬 것이다. 어찌 되었건 마감시간에 원하는 분량을 찍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이 무선 키보드를 보며 반성적 사고를 하고 있다. 합평을 받을 때마다 내 문장에 대해 잘 모르겠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찍어낸 수많은 문장을 나는 얼마나 숙고하였나. 단순히 토해내기만 했던 것은 아닐까. 내 안에서 더 숙성시켰다면 좋았을 것을 이제는 그것이 후회가 된다.
좀 더 시간을 들이지 않은 것은, 나를 뼈아프게 했던 ‘돈’과 ‘가성비’ 때문이었다. 그런 비겁한 이유를 들며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았고 무조건 달렸던 내 과거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그렇게 아주 나쁜 습관이 들어버린 것이다.
지나고 보니 그것은 내 글을 읽는 이나 나 자신에게도 옳지 않다. 예의 없는, 이 싹수없는 내 문장들을 바라본다. 2024년은 마감을 하는 것 자체를 목표로 하지 않을 것이다. 아주 싸가지 있는 문장을 만들어 내기 위해, 무선 키보드에서 토해낸 문장들을 프린트하고, 그것을 입으로 읽고 연필을 들어 체크하고, 오탈자를 사전으로 검색할 것이다. 사실 무선키보드의 잘못은 아니다. 그 당시 이 무선키보드를 쓰던 나의 상태가 문제였을 뿐.
2018년부터 사용하던 키보드의 버튼이 눌리지 않아서 같은 기종을 구입하였다. 가격은 이제 1.5배 뛰었다. 하지만 불만이 없다. 가격이 오를만한 기종이다. 손이 작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핸드폰을 노트북처럼 사용하며 작업할 수 있는 천군만마니까. 무선키보드를 핸드백에 넣고 다니며 작업하고 싶은 분들이라면 누구든 추천드린다. 가볍지만 묵직하고, 빠르게 적지만 몇 차레 숙성해 내놓으면 된다. 2024년의 문장을 향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