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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가연 Jan 14. 2024

다이어리 : 올해의 목표를 적는 나침반


나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내 시간을 스스로 조절하면서 작업을 하는 외주프리랜서 작가다. 일을 안 하는 순간 언제든 백수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장점이다 단점이 되는데,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이 돈을 벌려고 하는 일인지, 창작을 위한 것인지 주객전도를 넘어 방향을 잃을 때가 있다.


그 방향은 언제나 조금씩 바뀌는데 내가 작업하면서 생긴 불만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수정되어 왔다. 2022년은 제작사에 들어가서 일을 하다가 중간에 나오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 2023년에는 타인에게 끌려 다니지 않고 온전히 내가 생각한 긴 호흡을 가지고 작업을 하겠다는 목표를 세워 long이라고 적었다. 일 년간 그런 실험을 했고, 그런 생각이 다소 오만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좋은 편집자와 멘토, 좋은 감독을 만나는 일이 필요하다. 나는 혼자 작업해서 서 있을 수 있는 깜냥이 안 되는 사람이었다.


다행히 2023년에도 자문을 해주신 선생님과, 지인들이 있었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내 작업을 함께 책임지고 해 줄 동료가 필요하다. 그림책으로 영상 만드는 경험에서 많은 부족함이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작화부터, 음향, 기술적인 완성도, 이 모든 부족함을 그대로 지켜보며 연말 연초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 작업이 자랑스러운 내 새끼라고 할 정도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2024년에는 내가 남에게 내놓을 때 자랑하고 싶은, 내 새끼예요 할 수 있는 작품을 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다이어리에 내 새끼라고 적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들을 나는 어떻게 좋아하는가. 그냥 말이 필요 없다. 그 사람의 한 장의 그림, 작품의 아우라, 에너지 때문에 눈비를 맞으며 그 사람들을 만나러 갔었다. 내가 어떻게든 영향을 받고 싶은 그 작품의 힘을 본 것이다. 결국 작품으로 설득하는 게… 창작자의 힘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현실의 나는 아직 그런 반열에 이르지 못한 것 같다. 힘겹게 마감기한을 맞추고, 기획한 데로 납품하는 것 자체를 해냈다고 만족하기에는 이상이 높은 것 같다. 내 작품이 좋지 않아 자주 부끄러워졌기 때문이다. 계속 작업을 하는 것은 나의 밑천을 드러내고 부끄러워지는 것을 감수하는 일이기도 한 것 같다.


12월까지 정신없이 달리고 한동안 브런치를 쓰지 않았던 것은 마친 일들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기도 했다. 그 부끄러움은 자괴감이나 자기혐오로 빠지기도 좋았다.


12월에서 1월까지 나는 완전히 멈출 수 있는 한 멈추었다. 계속 내 안에 생긴 불만에게 물었다.


2024년에는 어디로 가야 할지. 그 불만은 표지판처럼 내 다이어리 표지에 붙여진다. 다음 목표로 다음 목표로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게 읽고 또 읽는다. 정말 좋은 작품을 쓰고 싶다. 만들고 싶다. 그런 열망은 소망이자 기도처럼 내 안에 맴돈다. 오히려 그런 욕심이 아무것도 못하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2024년 3번의 쓰는 물건 연재를 어길 만큼.


약 4주의 기간 동안 자책을 마쳤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다시 키보드를 열면서 이제는 다시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종이테이프에 적은 200자 원고지 11매를 다시 지키기 위한 에너지를 채운 것 같다.


다이어리에게 다시 말을 건다. 앞으로 하고 싶은 프로젝트의 일정을 적고, 다양한 공모사업에 기획서를 내고, 앞으로 쓰고 싶은 작품들의 키워드와 캐릭터들을 그려 넣는다.


언제나 가방에는 만년필과 다이어리와 이어폰이 들어있다. 내가 상상하고 그려낸 세계들과 접속하여 그 세계를 더 더 구체적으로 이쪽 세계로 가져오려 한다. 2024년 나의 새끼들은 더 예뻤으면 좋겠다.


다이어리는 창작하는 나침반이다. 2023년 낡은 나침반을 보내고 새로운 나침반을 꺼내든다. 내가 가고 있는 나침반이 시키는 대로 올해도 실험을 이어나가겠다. 당신도 함께 그 여정을 읽어주었으면 궁금해해 줬으면 감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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