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를 사서 1
작업을 할 때 완벽하게 주어진 순간이라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모든 것이 엉망인 채로 뜨거운 햇빛이 머리 위에 떠서 돌아가야 할 수 있는 말과 장면들이 있다. 그때에 나온 이야기들은 오히려 강렬해서, 그 순간 화염처럼 타인에게 가닿을 수도 있다.
우리는 이 여름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다. 더워!
수채화 종이에 마스킹테이프로 고정하고, 작은 화장수용 미스트 용기에 담은 물을 칙칙 뿌려서 건조해지고 마른 종이를 적셔주었다. 그 종이를 한참을 바라보았다. 사진을 보고 그대로 그리거나, 좋은 참고사진을 보고 그리는 방법도 있지만. 그때의 결과물이 오히려 더 완성도가 있기도 하지만. 나는 그저 내 마음에 어떤 이야기, 상이 떠오를 때까지 멍하니 종이를 바라보는 일을 좋아한다.
그 이야기는 천천히 내 안에 잠겨 있던 내 마음속 장면을 끌어올린다. 뜨겁고 따갑고 눈물 났던 열기였다. 빛줄기는 일렁이며 이 여름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건 참 힘들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여름은 여름의 일을, 나는 나의 일을 한다. 열이 너무 오를 때는 얼굴에 시트팩을 붙여 두통을내려주기도 했다.
이 그림 다음 장면은 한참을 바라보면서 이 장면 저 장면 떠올리고 있다. 한 걸음 한 장면, 한 종이씩 그저 그려본다. 그리고 담아보면서. 계속 흰 종이를 앞에 두고 묻는다. 지금 내 마음이 괜찮은지. 어떤 마음인지. 잘 가고 있는지.
무더운. 여름. 당신은. 잘 지내고 계시죠?
> 사용한 재료는
홀베인 수채잉크와 닥터마틴스 레몬옐로는 발색이 좋아서 일반 수채화물감보다 눈이 시원하다. 팡팡 튀는 색감을 내고 싶어서 요즘 애용하는 재료다.
바오홍 수채화종이는 앞으로 더 써봐야겠지만. 변색여부나 종이가 물을 얼마나 견디는지 체크해보려고 한다. 종이의 촉감은 살짝 코팅이 되어 딱딱한 편이고 하네뮬레 수채화지보다 부드러운 편은 아니다. 파브리아노가 대체로 세목 중목 황목이 매끄러운 느낌이 었었다면. 바오홍은 중목에 다소 거칠고 딱딱한 느낌이었다.
일단 더 써보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