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오랫동안 모아 왔던 털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다. 집안에 워낙 털실이 많아서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고, 스튜디오 전용공간의 사용 기한이 다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사용하기 편하도록 정성껏 실을 감고 포장해서 나누어 주고 있다. 아는 책방들과 작은 도서관, 친구의 엄마 집, 여러 곳에 보내게 되었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털실을 나누면서 느낀 것은, 내가 택배를 보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모두 조금씩 다르다는 점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작은 보답을 하려는 사람도 있고, 받았다는 연락조차도 없는 경우도 있었다. 나의 경우는 둘 다 처음에는 상관이 없었다. 그저 더 이상 사용하기 어려운 털실을 보내는 일 자체가 나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는 보답을 해준 분들에게는 실이 필요하고 좋았나 보다 알 수 있어서 다시 보내주게 되었다.
아직도 털실은 산처럼 쌓여 있고, 그 산을 바라보면 이걸 다 비우고 내가 쓸 만큼만 두려면 1-2년을 걸려야 할 것 같다. 계속 천천히 실을 감고 정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보내주며 내 작업을 하려고 한다. 물론 아무나 주는 것은 아니다. 내게 의미 있는 사람에게만 준다. 택배비도 내가 내고 있고, 실을 감아서 보내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꽤나 신경이 쓰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올해 1년간 이사 박스 10개 이상 여러 공동체와 지인에게 털실이 퍼져 나갔다. 그러다가 놀라울 정도로 다정한 커뮤니티를 만나게 되었다. 그림책 빵 모임을 하면서 이 2년 전부터 방문하던 그래서 책방이었다. 그림책 모임을 할 때마다 조금씩 가져가다가 무거워서 택배로 보내게 되었는데 어느 날부터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갑자기 나를 인스타에서 태깅하며 언급하기 시작했다. 털실을 나눔 받은 사람들이었는데 본인들 뜨개 작품을 올릴 때 인스타에 나를 태그를 걸어서 올려주기 시작했다. 한 번도 그런 기대를 가지고 털실을 나누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언급될 때마다 황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인스타에 그런 기능을 잘 사용하지 않았었고 누군가 내게 그런 언급을 해준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기능이 이렇게 쓰이는구나. 나도 누군가에게 다음에는 이렇게 마음을 표현해 볼까. 마음은 늘 먹지만 누군가를 언급하고 사진을 찍고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수고와 시간을 내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내가 사람들에게 보낸 털실의 가치보다 더 큰마음을 전달받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책방은 종로구 방산시장 2층에 위치한 서점이었는데, 근처에 광장시장이 있고 다양한 예술가들의 사랑방 같은 서점이다. 나는 그 공간에서 점점 더 놀라운 일들을 경험했다. 책방에서 열리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털실을 사용한 예술가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일들이 종종 생겼다. 책방 사장님이 이 실을 받아서 각 예술가에게 누가 왜 이 실을 주었고, 어떻게 고마움을 표현해 달라고 설명하는 일이 더욱 번거로운 과정이었을 텐데 그런 일들을 해준 책방 사장님과 예술가분들의 오히려 내가 더 감사하다.
나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받았을 때 이토록 정성껏 고마움을 표현한 적이 있었을까? 올해 집 정리하겠다는 목표로 시작한 털실 나눔 프로젝트를 통해서 그래서 책방 사장님 두 분의 다정하고 우아한 태도에 대해서 배운 것 같다. 왜 그 공간이 예술가들의 사랑방이 되었는지, 왜 그곳이 나도 점점 좋아지는지를. 마음속 깊이 느낀다.
사람은 관계를 맺으며 서로를 비추는 빛과 같은 존재가 되어줄 수 있다. 그 빛은 때론 찬란하기도 하지만, 거리를 두지 않으면 따갑고 눈이 부셔 뜰 수가 없다. 유형의 자산에 집착하고 모으기를 바라며 살았던 삼십 대의 삶을 조금은 내려놓아야겠다. 사십 대에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래서 책방처럼 정성을 다할 수 있는 여유와 온기를 유지하고 살고 싶다.
사진출처 https://mediahub.seoul.go.kr/news/article/newsArticlePrintPopup.do?articleNo=20060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