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황형광펜 : 밑줄의 감정

by 심가연

하나의 물건을 몰입하여 쓰면서 다 쓸 때까지 그 물건을 쓰는 데 얼마나 걸리고, 어떤 용도로 가치가 있는지를 발견하는 일을 무척 즐겁다. 물건과도 어떤 관계를 맺고 소통하며 친해질 수 있다. 나는 무생물체를 꽤 좋아하는 편이다. 내 필통에서 언제나 나와 함께 다니는 형광주황펜은 단단한 젤리형태로 되어있다. 언젠가 중고로 펜을 처분하는 사람의 손으로 통해 내게 왔다. 나는 이 동아젤스틱을 산 기억이 없다. 신문을 볼 때마다 신나게 꺼내서 줄을 쳤지만, 형광펜은 영 다 쓸 기미가 없다. 이 형광펜을 만든 사람들은 꽤 양심이 있는 사람들인가 보다.


한 차례 일이 끝나고 쉬고 싶을 때, 아침에 일어나서 머리가 돌아가지 않을 때 나는 신문을 읽으며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들여다본다. 신문에는 저명한 사람들이 본 세상의 문제점, 함께 나누고 싶은 주제들이 배치되어 있다. 혼자 고인 마음을 털어내고, 시대의 목소리를 듣는다. 밑줄을 친다는 것은 내게는 약간의 박수, 끄덕임, 혹은 생각할 여지가 있는 부분을 기억하기 위한 수단이다.


쓰으으윽. 줄을 치고 나면. 손목과 손 끝이 그 문장을 향한다. 읽고 한번 더 읽고. 되새긴다. 와닿고, 다시 흩어진다. 많은 말들이 그렇게 흩어지지만 그럼에도 내 마음에 남고. 남긴 문장들은 어느 순간 내 머릿속에 다시 튀어나와 새로운 질문을 던져줄 것이다.


요즘 내가 하는 질문은 내게는 조금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내가 곧 죽는다면 어디서 누구와 함께 무엇을 하며 지내고 싶은가.’다.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나의 외할머니가 점점 노쇄하여 가시는데, 나는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지도 않고 해 드릴 것이 전화 외엔 없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전화할 때마다 내게 고맙다고 말을 끝맺는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이 전화가 뭐라고 나는 그토록 시간을 내지 못하는지 자책하게 된다. 신문을 읽다가 잠시 할머니 생각에 잠겨보았다.


주황형광색은 청소하는 분의 옷 색깔을 띠고 있다. 나는 이 색을 볼 때마다 시원하고 경쾌한 느낌을 받는다. 내 뇌 쪽으로 그 문장을 단숨에 가닿게 하는 기분. 이 주황 형광펜을 정말이지 성실하게 다 쓰고 싶다. 그러고 나면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한 권의 책을 다 읽어내듯. 종이를 위한 립밤재질의 형광펜을 줄 친 만큼, 나는 세상의 언어를 만나며 경쾌하게 미끄러진다.


오늘 아침 내가 읽은 기사를 기록하며 글을 마친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