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개: 이야기의 재구성

by 심가연


내년과 올해 사이, 부진했던 작업들을 가만히 돌아본다. 그저 잘하고 싶었을 뿐인데, 어떤 속도와 방향으로 정해진 시간 안에 만족스럽게 일을 마치는 것은 참 어려웠다. 다급했던 키보드 위의 손가락을 잠시 멈추고, 천천히 backspace 버튼을 누르며 문장을 지워본다. 사실 서둘렀던 이유는 내 마음 안에 움튼 불안함과 욕심 때문이었다. 바쁘게만 움직였던 발걸음은 어디로 향해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도착했던 곳에서는 이게 아닌 것 같다는 마음이 들 때가 있었다. 반면 그 추진력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어떤 일을 해내는 순간도 있었다. 빠르게 달리면서 잡는 것과, 놓치는 것, 그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옳은지를.


시간과 돈의 한계는 언제나 존재한다. 늘 우선순위인 일들이 치고 들어오고, 내 개인작업은 다소 미루게 되었다. 작가로 작업하기 위해 회사에 들어가지 않고 일했지만, 종종 주객전도 되어 작업 대신 주어진 일을 쳐내기 바쁜 채 작년을 살았다. 그 때마다 마음 속으로 속삭였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게 아닌데.'

올해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좀더 작업하고 싶다. 내 환경과 상황을 다르게 조율할 필요를 느낀다. 지금까지는 내게 온 모든 일들에 '예스'라고 하는 편이었다. 어떤 일이든 주어진 일을 통해 새로운 것을 깨닫고 나아가는 게 소중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은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재밌거나 의미가 있지 않은 일이라면 그 일은 왜 해야 하는지를 조금 따져 묻게 되었다. 올해 초부터 조금씩 어떤 일들은 내려놓기 시작했다. '노'라고 거절하고, 멈추는 순간. 일상이 편안해지는 걸 느낀다. 그 시간만큼 다시 나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내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은, 단지 아름다운 문학 작품을 남기는 일이다. 그 이야기를 위해 요즘 나는 얼마나 헌신하고 있었을까. 이야기 자체를 만드는 것보다 작년에는 내가 만든 이야기를 어떻게 팔 수 있을지를 알아 보는데 촛점을 맞추었다. 독립출판물을 서점에 입고하고, 북페어에 무인부스로 참여하기도 했다. 에세이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돌고 돌며 모은 이야기 구슬들이 머리 속을 돌아다닌다. 결국을 그 구슬이 남아 있을 때 얼른 꿰지 않으면 모두 사라질 것이다. 쌓인 이야기들을 꿰어 엮고 쓴다고 해도, 다시 그 이야기를 몇 번씩 읽으며 다시 풀어내고 체크해볼 시간도 필요하다. 소리내어 읽고 리듬에 맞지 않는 부분은 지우개를 꺼내 싹싹 지워버려야한다. 지우고 자르고 이어 붙여 맛있게 재구성하여 볼 생각이다. 앞과 뒤를 맞추고, 클라이맥스와 반전포인트를 살려 우아한 곡선미도 주는 것도 잊지 않아야겠다. 이 작은 지우개에게 부탁과 맹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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