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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우 Jan 14. 2020

아내가 외출하던 날

딸과의 즐거운(?) 하루

오늘은 아내가 외출하는 날이었다. 내심 이 젖먹이를 두고 어디를 가나 싶었지만 어제 ‘트인 남편’ 흉내를 내며 뱉은 말들이 있어 그냥 잘 다녀오라 했다. 아기를 돌봐야 한다며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남편들이 있다는 아내의 도발에 말려들어 ‘나는 그런 사람들과 다르다. 며칠이라도 놀다 와라’라고 떠들어댄 것이다. 아무래도 이건 미끼였다는 곧바로 깨달았지만 이미 늦어있었다.       


아내가 없는 날은 딸이 응가를 즐겨하는 경우가 많아 사실 전날부터 긴장이 되었다. 다행히 재하가 엄마가 출타하는 걸 어찌 알았는지 아침에 미리 응가를 해줬다. 웬일로 맘마도 군소리 없이 먹었다. 하루 출발이 상큼했다. 시작부터 육아친화적인 날이었다. 오늘만큼은 딸에게 항상 웃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침에 응가도 하고 맘마도 먹었으니, 1단계(재하가 편안히 오후 한 시까지 잔다), 2단계(조금 안아주고 얼러주다가 배가 고프니 분유도 군소리 없이 원샷한다), 3단계(배가 부르니 다시 낮잠을 잔다), 4단계(일어난 딸을 안고 집안을 돌아다닌다, 허리가 아프지만 이제 이력이 생겨 한두 시간은 문제없었다), 5단계(그러다 보면 아내도 생각이 있으니 돌아오겠지^^)와 같은 ‘재하 보기 5단계’ 계획도 세웠다. 마지막 단계가 객관적 자료가 아닌 아내의 양심에 기대는 것이라 약간 마음에 걸렸지만 그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이제는 백일 지난 어엿한 아기



아내를 현관에서 배웅하고 침대로 돌아오다 재하와 눈이 마주쳤다. 불과 이십여 초 전에는 눈은 감고 입은 벌리고 있었는데, 그 짧은 시간 만에 눈은 크게 뜨고 입은 앙 다문 얼굴로 변해있었다. 딸과 매일 지내다 보니 무슨 뉘앙스의 의사전달을 하는지 대충 알 수 있었다. 그 표정은 ‘당장 나를 안고 즐겁게 해주지 않으면 오늘을 기억에 남는 날로 만들어 주겠어...’와 같은 의미였다. 아빠라는 이름은 약하기에 일단 딸을 안았다. 1단계 계획이 틀어졌지만 앞에 사전작업을 하나 더 하는 것뿐이라고 자기 위안을 삼았다. 나는 기존 구상에서 0.5단계(재하를 십여 분 안아주고 재운다)를 삽입해 ‘재하 보기 5.5단계’ 계획으로 수정했다.  

    

재하를 안고 30분이 흐르자 내 예상이 틀렸다는 생각이 점차 들었다. 재하는 엄마와 있을 때는 최소 열두 시까지 자던 애였다. 지금 시간은 8시 반이었음에도 쌩쌩했다. 지나치게 이른 시간부터 몸에 중량을 가하자 허리, 어깨, 목, 팔이 이상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요새 재하를 많이 안아준 후유증으로 병원에서 도수치료를 받고 있었다. 도수치료는 너무 아팠다. 도수치료를 받으며 삐뚤게 살았던 내 지난날을 반성했다. 이건 돈을 받고 받아야 할 것 같음에도 돈을 내고 맞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그 아픔과 함께 몸의 내구력을 올리며 자신감을 약간 찾았지만 이렇게 새벽(?)부터 애를 안고 있으면 감당이 되지 않았다. 가늠하기로 이 추세대로라면 오전 열한 시 이전에 나는 완전히 퍼질 것이었다.    



내려가지 않겠다...



아빠가 말인 것 마냥 ‘이랴 이랴’ 하며 엉덩이를 들썩거리던 재하가 갑자기 멈추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씩 웃었다. 순간 아빠를 위로하는 줄 알고 솔직히 감동했다. 그 마음과 마음이 만나려는 순간 ‘부우욱-’ 하는 소리가 났다. 설마 했다. 설마 똥인가 했다. 분명히 한 시간 전에 백일 아기 적정량을 배설하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방귀겠지. 당연히 방귀일 거야’ 하며 기저귀를 열어보았다. 황금색 변이었다. 냄새도 약간 날짜 지난 은은한 요구르트향인 것이 우리 딸이 건강하다는 신호였다. 이틀 정도 일을 제대로 못 본 딸이 장을 비워내는 것은 축하할 만한 일이었지만, 홀로 뒤처리를 하려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 얼굴은 어느 영화 대본에 나오는 마냥 울면서 웃는 표정이었다.     


위에도 말했지만 그전에도 혼자 재하를 볼 때면 딸이 응가를 즐겨하는 경우가 많았다. 매번 엉성하게 응가 뒤처리를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인터넷 영상도 좀 찾아보았다. 내가 찾아본 영상에는 아기를 하늘을 보게 하며 바로 안는 방법과 뒤집어 안는 방법 두 가지가 있었다. 그분들은 능숙하게 한 손으로 아기를 잘 지탱하고 한쪽으로는 손도 보이지 않게 닦아주는 것이었다. 내가 재하를 그렇게 안으면 애가 켁켁거리고 바둥거리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현장 과외라도 좀 받아보고 싶었다. 아무튼 일단 온수를 틀고, 천기저귀를 깔고, 갈아입힐 기저귀와 닦아줄 손수건, 로션을 침대에 늘어놓은 다음 재하를 들고 세면대로 향했다.     


앞으로 안을 것인가, 뒤로 안을 것인가를 잠시 고민하다 일단 하던 대로 앞으로 안기로 했다. 재하의 머리를 오른 팔꿈치에 얹고 팔로 몸을 지탱한 후 오른손으로 재하 엉덩이와 허리 사이를 잡았다. 이론상으로는 완벽했지만 재하가 뭐가 또 불편했는지 좌우로 몸을 흔들었다. 아내는 그럴 바에는 세면대에 그냥 앉혀놓고 씻긴다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재하 하반신에 응가물이 묻는 것이 괜히 싫었다. 그래서 서커스를 하며 애를 닦아 주었는데, 한 손으로 아기를 지탱하고 있으려니 팔꿈치부터 어깨, 목, 허리, 엉덩이, 허벅지까지 찌릿하며 통증이 밀려왔다. ‘이것이 부모의 아픔이구나’를 생각하며 열심히 딸을 닦아주었다.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새끼 응가는 별로 안 더럽다. 응가 뒤처리는 치울 때 과정이 귀찮아서 그렇지 응가 자체는 별 문제가 없었다. 한 시간 전에 한 번 싸놓고 또 싼 것에 약간 마음이 상해 투덜투덜거린 것뿐이었다.       


재하를 들고 와 천기저귀에 눕혔다. 천기저귀에는 재하 외할머니의 사랑이 담겨 있는 물건이었다. 장모님은 귀한 손녀가 태어난다고 하자 처형들을 몰아서 광장시장에 가셨다. 가서는 기저귀를 만드신다며 천을 잔뜩 끊어오셨다. 요즘에 누가 천기저귀 쓰냐는 처형들의 말은 조카에 대한 사랑이 부족한 것으로 받아들이셨다. 당신께서 다 빨아 주겠다고 호언장담하셨다. 일회용이 얼마나 몸에 안 좋은지 너희들은 잘 모른다고도 하셨다. 장모님께 일회용 기저귀란 화학약품에 범벅이 되어 손녀에게 치명적인 물건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며칠 밤을 새워 천기저귀를 만드신 재하의 외할머니는 재하가 조리원에서 온 첫날밤에 천기저귀 포기 선언을 하셨다.

“똥을 그렇게 많이 쌀 줄은 몰랐지... 너희들은 그렇게 많이 안 쌌던 것 같은데...”

그렇게 장모님의 천기저귀 부심은 하루 만에 하늘로 사라졌다. 그래도 외할머니의 사랑은 여전히 남아 재하가 씻고 왔을 때나 응가하고 왔을 때 바닥에 깔아주는 용도로 쓰곤 했다.    

 

재하를 닦아주고 있는데 정수기 점검해주시는 분이 오셨다. 재하를 안고 그 사장님과 이야기를 좀 했다. 재하는 외부 사람을 간만에 보니 신기했던 모양인지 계속 쳐다보았다. 사장님은 딸이 아빠랑 똑같이 생겼다고 하셨다. 내가 봐도 그랬다. 재하는 나랑 너무 닮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밤에 울거나 하면 내가 일어나야 할 것 같은 책임감이 있었다. 나 닮은 딸 내가 안고 죽어야 할 것 같았다. 아내는 가끔 우스개로 얘기했다.

“딸 낳은 건 좋긴 한데, 남편한테 수수료를 너무 비싸게 줬어.”



왼쪽이 필자, 오른쪽이 딸



사장님이 점검해주시는 동안 재하는 조용했다. 나는 자랑삼아 우리 딸은 안아주기만 하면 조용히 있는다고 했다. 그분은 웃으며 말씀하시고 사라지셨다.

“아이고 사장님. 애기들은 안아주기만 하면 다 조용해요.”     


이 수수료 비싼 얼굴을 한 재하는 이제 슬슬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엉덩이를 들썩들썩 거리며 칭얼칭얼거렸다. 엄마가 없으니 모유가 아닌 분유를 먹어야 했는데 과연 얼마를 먹을 것인가 고민이 되었다. 한동안 재하는 분유를 거부하며 엄마젖만 먹겠다고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전의 나는 늘 우리 딸이 분유를 잘 먹을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120ml를 타곤 했는데 최근에는 헛된 믿음을 약 3분의 1 가량 줄여 80ml를 먼저 탔다. 먹다가 더 먹는다 하면 그때 더 타서 없는 살림에 하수구로 사라지는 분유들을 줄이곤 했다. 다만 오늘은 혼자라 어쩔 수 없이 재하를 침대에 눕혀 놓고 다시 믿음의 120ml를 타 왔다.     

 

백일쯤 타니 이제 분유 바리스타가 된 느낌이었다. 분유를 손등에 묻혀 맛을 보니 훌륭했다. 오늘 유난히 잘 타진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재하가 식사하는데 문제없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우리 까다로운 딸은 아빠의 사랑이 담긴 분유를 일단 거부했다. ‘아이 맛있어~ 아이 맛있겠다~ 아잉~’을 최대한 귀엽게 소리 내며 재하에게 젖꼭지를 물렸건만 이 지지배는 어디서 배웠는지 응원단마냥 허리를 활처럼 휘며 온몸으로 거절을 표현했다. ‘끄으으으응’과 같은 이상한 소리와 함께였다. 한 십여분 간 실랑이를 했다. 나는 내 사랑이 까인 것에 격분하여 이렇게 말했다.

“너 그거 알어? 너 맘마라는 글자에 선 하나씩만 그으면 맴매가 되는 거야!!”

이런 소리까지 하니 자괴감이 들었다. 물론 딸은 손이나 찹찹 빨며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분유 한 잔할래? 안 먹는다니까!!

   


약간 시간이 흐르자 자기도 배가 고팠는지 살짝 분유병을 물었다. 일단 입에 넣었지만 삼키지는 않고 분유거품을 입에다 뽀글뽀글 만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 분유꽃게를 게장 담가버리고 싶었지만 나는 아빠였다. 그래서 강아지들에게 하듯이 ‘아이 맛있어~ 아이 맛있어~ 아빠가 다 먹어야겠다’ 하며 먹는 척을 했다. 그리고 물리니 다시 좀 빨았다. 잘 먹는다 싶었더니 이번에는 분유를 옆으로 흘리고 있었다. 아니 애는 어디서 이런 뺑끼질을 배운 거지 싶었지만 다시 어르고 달래서 일단 먹였다.     


우여곡절 끝에 믿음의 분유 120ml를 다 먹였다. 당시 시간 열한 시 반. 시간이 훌쩍 흘렀다. 내 ‘재하 보기 5.5단계’는 1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2단계를 약간 집적거리고 있는 요상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미 내 허리는 오늘 쓸 힘을 소진한 지 오래였다. 그래도 일단 트림을 시키기 위해 어깨에 재하를 매고 거실로 나왔다. 등을 토닥거리자 딸이 웃었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좀 풀렸다. 어찌 되었건 타 준거 다 먹은 것이 고마웠다. 새끼 배부르면 내 배가 더 부르다니 그 말이 이제야 이해가 조금 되었다.       


재하는 밥을 먹고 따뜻한 곳에서 왔다 갔다 하니 어느새 잠이 들었다. 나는 조심스레 딸을 침대에 눕혔다. 나도 밥을 먹어야 했다. 그래야 이 험난한 하루를 이길 수 있었다. 자식 배부르면 내 배도 부르지만 그렇다고 내가 점심을 안 먹어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냉동 볶음밥이라도 돌려먹으려고 나가다 재하의 자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다시 돌아가 볼에 뽀뽀를 했다. 그랬더니 재하가 눈을 번쩍 떴다. 아 이게 아닌데. 나는 다시 재하를 들쳐 안고 30분간 집안을 유령처럼 배회해야 했다. 아내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재하를 다시 재운 후 나도 밥을 대강 먹고 설거지를 한 다음 재하 옆에 누웠다. 어느 순간 선잠이 들었는데 재하가 내 앞가슴을 자꾸 풀어헤치려고 해서 잠이 깨었다.

“아빠는 맘마 줄 수 없어. 요새 가슴에 살이 좀 찌긴 했지만 우유는 안 나와.” 

박효신의 ‘해줄 수 없는 일’이 생각났다.  

    

재하는 누워있기 싫어서인지 계속 칭얼거렸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비몽사몽 재하를 안고 다시 거실로 나왔다. 딸이 ‘다시는 나를 내려놓지 마라’라는 뉘앙스의 옹알이를 하길래 대꾸했다.

“너 도덕경에 그런 얘기가 있어. 만족할 줄 알면 부끄러울 일이 없다고.”

재하는 헛소리하지 말라며 귀에다 대고 고성방가를 했다. 그런 후 분이 안 풀렸는지 목에 살짝 이물질을 게워내고 귀에다가 침거품을 넣었다.      


슬슬 아내가 언제 오는지 궁금해졌다. 외출한 아내에게 연락을 하는 예의 바르지 못한 남편이 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러다가는 다음 주면 끝날 도수치료가 다음 달까지 연장될 것 같았다. 재하 엄마는 밖에서 친구를 만나며 산후조리를 할 거라고 했다. 믿기 어려웠지만 딱히 반박할 말도 없었다. 예전에 아내와 산후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산후조리는 분만 후 6주 아니냐고 하자 아내는 이상한 이야기하지 말라며 자기는 6년 동안 산후조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며 나에게 온갖 갑질을 하다 장모님께 한소리 듣고 온 후 나에게 미안하다며 600일로 줄이겠다고 말을 했다. 나는 3분의 1로 줄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하간 그렇게 중요한 산후조리를 하시는데 전화를 해도 될까 말까 고민을 하는 와중에 재하가 응가를 다시 했다. 하하하하 삼연똥이라니. 이번에는 발이 똥물에 잠기건 말건 세면대에 대충 담가놓고 씻겼다.     


무아지경으로 뒤처리를 하고 아기를 씻기고 외할머니의 사랑이 담긴 천기저귀에 재하를 눕혔다. 재하가 나를 보며 웃었다. 나는 ‘웃지 마 지지배야’ 했지만 같이 웃었다. 거울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내가 애비를 잡아먹는 관상이었구나.      


우리 둘이 그렇게 부둥켜안고 전기통닭처럼 자고 있으니 아내가 돌아왔다. 엄마가 돌아오자 재하는 세상 착한 표정을 하고 맞았다. 나와 있을 때의 그 거만한 표정이 아니었다. 어찌 되었건 아기 엄마가 오자 난 이렇게 하루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딸과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어서 좋기도 했다. 그랬더니 재하는 그 날 저녁에 더 나에게 앵겼다. 밤에도 엄마에게 가지 않고 나에게 계속 안아달라고 했다. 너무 친해져도 좋을 게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육아하기 좋은 날이었다.          


밥 좀 잘 먹자 딸아....




p.s: 지난 번에 감사하게도 카카오톡 브런치 채널에 글이 실려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고 구독자 수도 많이 늘었습니다.  제가 평소에는 댓글에 다 답을 다는데 음 이번에는 감당이 안되더라구요. 그래서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저는 원래 그렇게 진지한 글은 잘 안씁니다^^;;; 저 말고도 잘 쓰시는 분들 많으시니까요. 저는 오늘 올린 글처럼 그냥 좀 웃기고 그런 글 쓰는 걸 더 좋아합니다. 다만 애를 키우다 보니 저도 모르게 진지해져서 그런 글 쓰게 되더라구요. 아무튼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구요. 앞으로도 성실하게 쓰겠습니다. 가끔 들러서 읽어주시고 댓글도 부탁드려요. 읽어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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