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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우 Dec 28. 2020

월요병 부녀

평범한 육아의 하루

어느 월요일 새벽, 잠깐 나갈 일이 있어서 마스크를 꼈다. 줄이 바로 툭하고 끊어졌다. 불길한 징조였다. 하루가 길어질 것 같았다.      


월요일은 딸이 특히 기분이 안 좋은 날이다. 누가 그 날 기분이 좋겠냐마는 무시무시한 월요병은 직장유무, 취학여부와 전혀 관계없는 15개월 아기도 앓는다. 나이와도 관련 없는 모양이다. 병증의 원인으로는 주말 내내 자기와 놀아주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라져서 인 것 같다. 엄마가 나갈 때면 재하는 「이럴 거면 왜 잘해줬냐? 차라리 잘해주지 말지...」라는 표정을 짓는다.       


남은 나는 덤터기를 쓰고 긴 하루를 보낸다. 덩달아 월요병에 걸리는 것은 덤이다. 소화불량과 두통은 기본이다. 쓸쓸해진 딸이 내 위에서 안 내려가니 허리 통증도 함께 온다.      


빨리 안아줘....!!


안아주는 것이야 그렇다 치는데 배변 활동에 심각한 애로사항이 생긴다. 도무지 인권보장이 되지 않는다. 아내 출근 전 해결하면 좋겠지만 문제는 변의가 주로 아무도 없는 시간대에 온다는 점이다. 애를 놔두고 갈 수 없으니 화장실에 데리고 가야 한다. 시무룩해있던 딸은 내가 화장실 간다는 소리만 들으면 갑자기 웃으며 자기 짐을 바리바리 챙겨서 들어온다. 버스부터 색칠공부 책이랑 크레용까지. 소풍 가는 줄 아는 것 같다. 들어와서는 가지고 온 장난감이나 가지고 놀지 일 보는 나만 쳐다보고 있다. 가끔은 비데를 만지며 까르르 웃는다. 아무거나 누르는 바람에 일을 보다 물을 맞고 쏙 들어가기도 한다.      


화장실 나들이로 딸이 기분전환을 하면 드디어 내려와서 놀기 시작한다. 소리 나는 장난감을 누르며 자기 혼자 놀기도 책을 읽어달라고 가져오기도 한다. 나도 함께 책을 읽는다. 아내가 아빠가 본보기를 보이라며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요새는 영국 작가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를 보고 있다. 태어난 아이가 가정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이야기이다.         


아이에게 눈을 뗄 수 없는 것이 드디어 전기코드, 콘센트, 가위, 인덕션 등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얘네들이 재하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 같았다. 벌써부터 불나방 같은 인생을 살면 안 되는데 말이다. 이 물건들의 유혹에서 재하를 꺼내오려면 다른 상품을 제시해야 한다. 지폐가 꽤나 효율적인 교환 수단이다. 돈을 좋아하는 것은 마음에 든다. 그런데 이럴 거면 돌잔치에서 왜 붓을 들어 아빠 속앓이를 시켰는지 모르겠다.     


간신히 요주의 물건들에서 딸을 빼오고 나면 자기 장난감을 포함해서 나머지 물건들을 마구 거실에 펼쳐놓기 시작한다. 어지르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그 광경을 보며 움찔움찔하지만 자유로운 아이로 키우고 싶은 생각에 참고 또 참으며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이재하가 사방에 장난감 뿌리고 있어. 내가 얼마나 어지르는 거 싫어하는지 알지. 그런데 놔두고 있다니까. 내가 얼마나 딸을 사랑하는지 알겠지?」

「우리 자기, 고생이 많네. 조금만 참어. 내가 퇴근하자마자 갈게(각종 이모티콘과 함께)」

재하는 나름의 소유 개념이 생겨서 아빠 꺼, 엄마 꺼, 할머니 꺼 등등을 구분한다. 다만 이것들의 여집합, 즉 나머지 대상은 몽땅 자기 거라고 여긴다. 그러니 내 거 내가 널어놓겠다는데 아빠가 무슨 상관이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포도지옥...


리모컨에 특히 집착을 하곤 한다. 나름 숨겨놔도 여기저기 뒤지더니 결국 찾아낸다. 안된다고 뺏으면 짜증을 낸다. 깨물라고 덤비길래 ‘안돼!!’하고 붙잡고 외쳤더니 자기한테 뭐라고 했다며 구르면서 대성통곡을 한다. 그러면서 발길질도 한다. 발에 맞은 내가 죽은 척을 하니 슬쩍 보고는 웃으면서 리모컨에 달려간다. 아니 여아는 공감에 뛰어나다며? 이래서 EBS를 너무 믿으면 안 된다.    

  

이 와중에 전화기에는 카톡 수백 개가 쌓여 있다. 인기인이라 연락이 많이 오는 게 아니다. 동네 단톡방에서 떠드는 말들이다. 처음에 이 방으로 들어왔을 때 구성원들이 집값 얘기만 하루 종일 하고 있길래 이상한 사람들인가 싶어 바로 나와 버렸었다. 그리고 얼마 전 다시 들어갔다. 너무 심심하고 외로워서 그랬다. 이제 어머님들이 라디오에 왜 사연 보내는지 알 것 같다. 점점 라디오는 내 친구가 되어 간다. 조만간 DJ에게 문자 보낼 것 같다.         


간식을 먹일 때 다시 사방에 음식물을 뿌린다. 특히 포도 같은 것을 먹일 때면 양손에 포도를 쥐고 으스러뜨리고 옷에 포도 칠갑을 하고서 좋다고 뛰어다닌다. 지저분하게 먹는 걸 싫어하는 나는 제발 하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이것저것 손으로 만지면서 노는 것이 두뇌 발달에 좋다고 하여 참고 또 참는다. 옷이라도 갈아입히려고 하면 자기는 벗은 게 더 자신 있다며 입지 않겠다고 한다. 다시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이재하가 사방에 포도 뿌리고 있어. 내가 얼마나 그런 거 싫어하는지 알지. 그런데 놔두고 있다니까. 옷도 절대 안 입겠대. 내가 얼마나 딸을 사랑하는지 알겠지?」

「웅웅(이모티콘 하나)」

답이 짧아졌다.           


밥을 먹이고 나면 치울 거리가 쌓이는 건 당연하다. 재하는 내가 설거지를 하려고 싱크대 앞에 서면 울면서 쫓아와 못하게 한다. 아니 그럴 거면 아빠가 외갓집에서 설거지할 때 못하게 하지 이제 와서 이러는 건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나는 먹고 나면 바로바로 씻는 편이라 닦지 못한 접시는 늘 마음속에 남겨 놓는다. 밥그릇과 젖병이 산더미 같이 쌓이면 결국 참지 못하고 딸이 울고 불며 다리에 매달려도 설거지를 하고야 만다. 그리고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이재하가 설거지 못하게 했어. 내가 얼마나 바로바로 치우는지 알지. 그런데 놔두고 나중에 했다니까. 내가 얼마나 딸을 사랑하는지 알겠지?」

이젠 답이 없다. 바쁘겠지? 바빠서 답을 하지 않는 거겠지?      


아빠 죽을까봐 가끔은 앉아서도 먹고..


낮잠이라도 제 때 자면 좋겠건만 월요일은 유난히 잠을 잘 안 잔다. 주말에 일가친척들에게 둘러싸여 놀았던 기억이 사라질까 봐 그러는 것일까. 모든 서랍을 뒤지고 닥치는 대로 깨무는 등 잠 귀신을 쫓는 의식을 한다. 내가 학창 시절에 그 비법을 알았어야 하는 건데. 나는 그때 쿨쿨 잠만 잤다. 어떻게 어떻게 해서 재우고 나면 나도 뻗는다. 하지만 같이 자고 나면 남는 건 두통뿐이다. 자지 않으면 몸이 아프고 따라 자면 머리가 아프고. 그 와중에 재하가 30분만 자고 깨버리면 딸의 월요병 표정을 나도 짓게 된다. 「이럴 거면 아예 자지 말고 밤에나 일찍 자지」.     


슬픈 월요일의 하루를 써보려고 했더니 그냥 평범한 날의 육아 일상이 되어버렸다. 생각해보니 매일매일이 월요일 같다. 길고 지루하고 언제 끝나나 싶고 언제 마음 편히 쉴 수 있나 싶고. 그래도 머리카락에 정전기가 올라 나처럼 솟아 있는 딸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너도 겨울에 차문 열려면 힘들겠구나」 하면서. 그러면서 조금만 참자, 조금만 기다리면 애엄마가 올 거야 하며 남은 시간 더 잘 놀아줘야지 하곤 한다. 다만 가끔 아내에게 문자가 온다.

「자기야, 나 오늘 야근해야 할 것 같아. 얼른 하고 갈게」

아니, 월요일부터 무슨 야근이야. 또 사람 화나게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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