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우 Jan 22. 2021

나는 오늘도 아내가 보고 싶다

혼자서는 이 낮이 너무나 무서워

요즘은 연애 초기보다 아내가 더 보고 싶다. 눈물 나게 그립다. 물론 퇴근 후 육아에 열심히 참여하는 아내가 보고 싶은 것이다. 하루 종일 애 보느라 힘들어 죽겠는데 어제 다 못 봤다는 웹소설을 오자마자 누워서 보고 있으면 속에서 열불이 올라온다.     


재접근기에 들어선 딸은 부쩍 엄마를 찾는다. 계속 안겨있으려고 한다. 아침에 엄마가 사라진 걸 알고 나면 그렇게 서럽게 통곡할 수가 없다. 말없이 사라지는 게 문제인가 싶어 애가 비몽사몽일 때 안고 나가 인사를 시켰던 적이 있었다. 똑같았다. 육아시간만 30분 늘었다. 어차피 똑같이 울 거 잠이라도 좀 더 자는 게 나았다. 불현듯 나는 언제 엄마를 그렇게 그리워했을까 생각했더니 요즘이었다. 요새 돈이 별로 없다.     


몸은 엄마를 찾아대는 것과 별개로 입으로는 「아빠~ 아빠~」만 하고 있다. 아빠를 열 번쯤 하면 엄마는 한 번 정도 한다. 아내가 말했다.

「나 같아도 아빠만 하겠다. 아빠만 하면 밥 줘, 안아줘, 놀아줘, 재워줘. 그 말만 하면 장땡이고만」

나에 대한 태도가 오만불손한 것이 아빠를 제일 좋아해서 그러는 것 같지는 않고 일종의 어장관리가 아닌가 하는 추측이 든다.

예방접종을 위해 찾아갔던 병원에서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의사 선생님이 말은 얼마나 하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약간 부끄러워하며 ‘엄마아빠’만 많이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분은 무심하게 말씀하셨다.

「사실 그 두 마디만 할 줄 알면 세상 사는데 아무 지장 없지요」   



온몸으로 밥을 먹자...


말은 빠르지 않아도 말귀는 꽤 알아듣는다. 창 밖에 눈이 온다고 눈 좀 보라고 했더니 재하는 내 눈을 가리켰다. 순간 아주 흐뭇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 딸 천재인가? 자유롭게 키우려고 했는데 이러면 자꾸 기대하게 되잖아’

물론 그 날 저녁에 유튜브를 보니 15개월인데 50 단어씩 말하는 애도 있었다. 그냥 기대를 접고 계획대로 편하게 키우기로 했다.      


말도 못 하면서 요구사항은 많아진다. 특히 외모에 부쩍 관심이 많아지는지 머리핀을 세네 개씩 꽂으려고 한다. 그러고 나서는 거울 앞에 가자고 하여(당연히 안겨서) 자기 얼굴을 뿌듯하게 보곤 한다. 음악이 나오면 춤을 추는데 그 모습을 본 재하 큰 이모가 대견하다는 듯이 말했다.

「우리 재하 나중에 걸그룹 하는 거 아니야?」

바로 말했다.

「지금은 힘들어요. 아빠 닮았잖아요. 혹시 춤을 완전 잘 추면 노래 브리지 부분에 나와서 춤추고 예능에서 망가지는 포지션 정도는 할 수 있겠네요

그래도 지난 사진들을 보다 보면 많이 사람다워졌다. 예전 사진 보면 깜짝깜짝 놀란다. 아니 이렇게 못나니였다니. 내 눈에는 정말 예뻤는데. 그래서 자랑하려고 올린 건데. 당시에 예쁘다고 해주신 분들은 정말 좋은 분들이구나 싶다. 근래에도 카카오톡 프로필을 매일 바꾼다. 누가 메신저 프로필 자꾸 바꾸나 했는데 내가 그러고 있다.      


즐거운 인생...


재하가 맛있는 것만 먹는다는 소문이 나자 사방에서 진상품이 몰려들었다. 요사이 좀 덜하지만 여전히 비싼 샤인머스켓도 많이 들어온다. 재하는 그 귀한걸 매일 드신다. 나는 옆에서 수라간 나인마냥 식사 시중들면서 남겨주기를 기다린다. 사실 애가 먹어봐야 얼마나 먹을까. 결국 과일들이 오래되어 쪼글쪼글 해져야 내가 처리하려고 먹기 시작한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같이 먹을까도 하는데 감히 손을 대기 쉽지 않다. 언제 어떻게 찾으실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준 사람들의 의도도 생각해야 한다. 나 먹으라고 사준 게 아니기에 오늘도 포도가 살짝 맛이 가기를 기다린다.


재하가 다닌 길을 알아보려면 바닥에 떨어진 밥풀과 빵가루를 추적하면 된다. 아기들이 다 그렇지 않겠냐마는 얘도 밥을 온몸으로 먹기 때문에 온 집에 흔적이 남게 된다. 온몸에서 뭘 먹었는지 뿜고 다닌다. 처음에는 하나하나 줍다가 요새는 밥풀도 식구로 여기고 그냥 지낸다. 이불에도 종종 묻어 있어 버리기 귀찮으면 그냥 먹어버릴까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애 남긴 것들을 하나 두 개 주워 먹다 보니 몸이 비대해져 간다. 이제야 엄마들이 왜 애들 남긴 것 먹었는지 알 것 같다. 예전에는 돈 아까워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것도 있겠지만 치우기 귀찮아서도 그렇다는 것을 이제 깨달았다. 그냥 속에 넣어버리면 뒤처리가 편하니까. 물론 다 나오지 않고 몸에 머물러 있는 것들이 있으니 문제이긴 하다.     


걸레질 나도 해야지...


재하는 아빠가 걸레질하면 걸레질을 따라 하고 컵으로 물을 마시면 그걸 따라 했다. 그래서 좋은 습관을 들이겠다고 옆에서 책을 읽으면 꼭 뭐라고 한다. 핸드폰을 보면 별 말 안 하면서 책만 피면 못 읽게 덮으려고 한다. 꼭 자기랑 놀자고 한다.

「아빠~아빠~앙앙~앙~」(이런 거 보지 말고 나랑 놀자)

디지털 세대라서 그런가.

딸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줄까 싶어 전화기를 보는 건 자제하려고 하지만 책도 못 보게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폰을 열게 된다. 뉴스라도 보면 어찌나 재밌는지 육아의 괴로움이 좀 나아진다. 시험 때 백 분 토론 보던 거랑 비슷한 것 같다. 처음에 재하를 데리고 화장실에 갈 때 늘 손을 닦였다. 볼 일은 본 건 나였지만 아이에게 손 씻는 습관들이려고 그랬다. 이제는 화장실 가면 자기가 먼저 닦겠다고 한다. 그게 귀찮아져서 소변을 참을 때가 있다.      


낮잠 자는 오후 두 시 부근이 최대 고비이다. 나도 오전부터 시달려있어 이때 예민하다. 얼른 재하가 자서 나도 좀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자라고 자장가를 미리 틀어 놓으면 거기 맞춰 춤을 춘다. 잠투정을 시작하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때는 어떻게든 울 구실을 찾는 것 같았다. 뜨거운 물을 부어보고 싶다든지, 내 칫솔을 입에 넣어보고 싶어 한다든지 칼을 만져보고 싶다든지. 아내가 있으면 젖이라도 물릴 텐데 도무지 혼자서는 도리가 없다. 섬집 아기는 혼자서도 잘 자던데 얘는 아빠가 있는데도 왜 안 자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재우려고 안으면 그저 싱크대로 화장대로 책장 위로 돌아다니자고만 한다. 안 된다고 토닥이면서 ‘자장~자장~’하면 그 입 다물라며 입을 좌우로 꼬집는다. 얼마나 감정을 실어 힘을 세게 주는지 조커가 될 것 같다.   


싱크대 위가 제일 재미있음...

  

어느 날은 너무 힘들어 영상이나 보여주려고 TV를 켰다. 그런데 아내가 나 몰래 암호를 걸어놓은 것 아닌가. 내 생일, 아내 생일, 재하 생일, 결혼기념일, 차 번호, 하다못해 장인어른 생신까지 다 눌러봤는데 아니었다. 애는 뽀로로 본다고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애비가 리모컨 들고 헤매고 있으니 잔뜩 골이 나서 울부짖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기 친한 친구 생일이었다. 아니 비번에도 상도가 있어야지. 진짜 그때의 빡침이란. TV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요새 6시만 기다리고 있다. 그때가 TV를 켜도 적절한 시간이라 그렇다. 아이랑 지내다 보니 TV는 켜는 것보다 끄는 명분이 중요했다. 재하가 납득할 만한 사건이 벌어져야 TV를 꺼도 안전했다. 안 그럼 발 구르고 울고 뒹굴고 수습을 할 수가 없다. 엄마가 등장하는 긍정적 충격 정도는 되어야 순순히 TV를 꺼도 별 말 안 했다. 애기 엄마가 6시 40분쯤 귀가하니 그 정도는 보여줘도 되지 않을까 싶다. 나도 좀 쉬고. WHO가 아이들 영상 보여주지 말라고 매번 여기저기서 겁을 주니 괜찮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보건기구 말 듣다가는 먹을 것도 하나 없는 게 현실이기에 그냥 틀어준다. 건강 염려해서 하는 말인 건 알겠는데 현실 육아와 이백 광년쯤 떨어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에는 날이 너무 춥거나, 눈이 쌓였거나, 혹은 미세먼지 때문에 잘 나가지 못했다. 재하가 답답해 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이사 온 새 집을 탐험하고 있어서 그럭저럭 지낼 수 있는 것 같다. 혼자 재하를 본 지 6개월이 다 되어 가는데도 여전히 아내의 빈자리가 그립다. 늘 둘이 있었으면 '이 정도 난이도는 아닐 텐데'를 생각하게 된다. 잠자리에 누우면 솔직히 다음날이 오는 게 무섭다. 낮에는 외롭다. 그러니 하루 종일 아내가 보고 싶을 수밖에. 소파에 누워만 있어도 든든할 것 같다는 마음도 든다. 그 정도로 애 키우는 건 쉽지 않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재하는 당당히 사고만 치고 있고 말이다.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때는 6시에 TV 안 보고 유모차에 재하를 태워야겠다. 그리고는 말해야지.

「아가, 아빠랑 엄마 마중 가자」

아 그러면 5시에 TV 키게 되려나.

이전 02화 월요병 부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