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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우 Jun 10. 2021

간식을 좀 줄여볼까요

편식 줄이기

딸이 어린이집에 다녀보니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한다는 걸 느낀다. 사람 대하는 사회성도 좋아지고 낯선 곳에서 자신감도 붙었다. 무엇보다 희한하게 하던 수저질이 고쳐졌다. 엄지와 검지로 수저 끝을 잡고 수인 짚은 부처님처럼 들고 먹으면 수저질 수십 년 경력자도 다 흘릴 것이었다. 수저질이 제대로 되지 않아 답답하니 당연히 숟가락 내팽개치고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었다. 직접 손을 붙잡고 알려주거나 옆에서 말없이 보여줘도 자신의 독창적 수저질에 시비 걸지 말라는 도끼눈을 뜰 뿐이었다. 그걸 어린이집에서 바로 잡아 주었다.     


다만 아직 교정되지 못한 게 하나 있다. 재하의 편식이었다.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먹는 행태는 어린이집 다닌 지 석 달이 지나도 계속되었다. 「불가능은 없다, 가르치면 다 된다」라는 교육철학을 이마에 새기신 원장님께서 특단의 대책을 내놓으셨다. 그건 (아주 약한 강도로) 굶기자, 아니 살짝 덜 먹여보자 였다. 어느 날 재하를 데리러 간 나에게 원장님이 비장하게 말씀하셨다.

“아버님, 재하가 계속 반찬도 안 먹고 밥만 먹고 그래서요. 밥도 김에 싸줘야 먹고... 그래서 배고프면 잘 먹을까 해서 오전 간식을 좀 줄여도 될까요?”

“아... 그런다고 먹을까요? 점심 안 먹겠다고 하면 그냥 두셔도 돼요”

“아니에요. 지금 바로 잡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평생 가요. 괜찮지요? 선생님, 내일부터는 재하 오전 간식 조금 적게 줘보세요”

옆에서 말없이 듣고 계시던 담임선생님이 조용히 말씀하셨다.

“재하 원래 오전 간식 잘 안 먹어요”

“...”

일동의 그 침묵이 민망하여 바른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재하 할머니, 큰 이모, 작은 이모, 재하 엄마가 모두 맛있는 것만 드세요. 재하도 그냥 똑같아요.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요”     


아니... 이렇게 잘 나오는데


그렇다. 재하의 편식은 유전이었다. 다른 말로는 천성이었다. 딸의 엄마 쪽 핏줄, 도합 이백 년이 훌쩍 넘는 사람들의 인생에도 고치지 못한 것을 20개월 아기가 무슨 수로 고칠 수 있을까. 말 그대로 생긴 대로 살고 있을 뿐이었다. 제 엄마의 인생 신조가 「살아봤자 얼마나 산다고 맛없는 것을 먹냐」이기 때문에 추후 식사 환경을 통한 개선의 여지도 별로 없었다. 끼니마다 최선을 다한다는데 딱히 할 말도 없었다. 하루하루 한 끼 식사에 열심인 그녀지만 나에게는 늘 당당하게 으스댄다.

“우리 엄마랑 언니들 봤지? 난 순한 맛이야.”

그렇다. 이것도 사실이었다. 일례로 우리 어머님은 상견례 장에서 입맛에 맞지 않는 반찬이 나오자 바로 휴지에 뱉으셨다. 똑똑히 보았다. 아마 연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분들 앞에서 재하가 브로콜리를 보고 정색해봤자 돌아오는 건 「어머, 재하가 우리를 쏙 빼닮았네, 까르르」와 같은 들어도 썩 기쁘지 않은 칭찬뿐이다.      


요플레에는 진심



그런 재하가 오늘 반찬까지 싹 긁어먹었다고 했다. 어린이집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원장님이 달려오셨다. 「거봐라, 가르치면 다 된다니까」를 더 깊게 새기신 미소를 보내며 말씀해주셨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재하에게 사탕을 세 개나 까주었다. 재하는 ‘에헴, 나 다 먹어뜸’이라는 표정과 함께 배를 연신 문지르며 「많이!! 많이!!」를 외쳤다. 저녁 반찬으로 재하가 잘 먹었다는 불고기를 준비했다.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좋은 부위였지만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재료도 열심히 다듬어 넣었다. 그러나 재하는 먹지 않았다. 아무리 권해도 소용이 없었다. 아빠의 정성은 식판 밖으로 던져졌다. 눈물이 솟는 와중에 흥분해서 까먹고 있던 게 퍼뜩 떠올랐다. 그분들은 아무리 맛있어도 같은 것을 두 끼 연속으로는 절대 드시지 않는다는 것 말이었다. 아, 호주산으로 살걸.



김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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