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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우 Aug 02. 2021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시대의 육아

부디 이제 그만...

1.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로 인하여 글쓰기 및 브런치와도 거리를 좀 두게 됐습니다. 아이가 어린이집과 멀어졌기 때문이죠. 가끔 어린이집 선생님께 안부 전화가 옵니다. 재하가 잘 지내나 궁금하신 가 봅니다.

「아버님. 재하는 잘 있나요?」

「... 선생님 재하는 당연히 잘 있습니다. 제 안부를 물어 주세요」 

「아하하~ 아버님도 괜찮으시죠?」

「아니요 괜찮지 않습니다. 정말이에요. 그런데 혹시 긴급보육은 몇 명이나 나오나요?」

대충 들으니 한 40% 정도 나온다는 것 같습니다. 우리 딸을 보내 45%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이틀에 한 번도 괜찮고, 그것도 어렵다면 점심 반찬이라도 얻어오고 싶습니다. 아침마다 오늘 아프다 할까, 그래서 보냈다고 할까 하는 생각을 서른 번쯤 합니다. 어린이집 갔던 그 네 시간이 그렇게 소중한 줄 다시 깨닫습니다. 저야 이런 마음으로 살고 있지만 재하는 말 그대로 아주 잘 지냅니다. 콩순이와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처음에는 조금만 보여주려 했지만 이제는 될 대로 되라지 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보고 좋은 영상 감독되면 되는 거지요.     



어부어부어부바



2.

그나마 살 수 있는 것은 아내가 여름휴가와 특별 휴가를 몰아 쓰고 있기 때문이겠죠. 안 그랬으면 퇴근하고 돌아온 아내는 「... 사랑했다」라는 제 다잉 메시지를 보고 있었을 겁니다. 다만 재접근기가 씨게 온 재하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엄마에게서 떨어지지를 않습니다. 아내는 응가의 자유도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쮸쮸 귀신이 붙은 겁니다. 어찌나 독하게 엄마 가슴을 탐하는지 저는 감히 참견할 수가 없습니다. 말렸다가는 뭔가에 씌인 딸이 눈을 헤까닥 뒤집고 저에게 으르렁 거리거든요. 쮸쮸 귀신을 떼어내려고 굿이라도 해야 할 판입니다. 듣기로는 지금까지 수유를 했다면 두 돌까지는 그냥 가라고 하던데 거참 남사스러워서 어디 말할 곳도 없습니다. 재하 좋아하는 복숭아로 좀 꼬셔보려고 하지만 먹을 때만 저에게 오고 다시 엄마에게로 쪼르르 달려갑니다. 그나마 비싼 브랜드 복숭아 줄 때나 옵니다. 세 개 사면 두 개 더 얹어주는 그런 복숭아는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인생이 행복하다...



3.

아무튼 그래서 저는 이 욕구불만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풀기 위해 전화기를 바꿨습니다. 아이폰으로 말이지요. 평생 안드로이드만 써왔는데 애플 제품을 써보니 또 다른 신세계입디다. 재하가 엄마를 제압하여 젖을 물고 있으면 저는 거실로 얼른 도망 나가 아이폰 신선놀음을 하곤 합니다.

마음 아픈 이야기를 살짝 하자면 저에게는 아픈 손가락 세 개가 있습니다. 바로 ‘닭강정’, ‘아이유의 좋은날’, ‘아이폰’이지요. 모두 제가 군대에 끌려갈 때 유행한 것들입니다. 이 세 개를 즐겨보지 못하고 입영해서 어찌나 마음의 한으로 남든지요. ‘좋은날’에 대한 이야기는 제 지난 글을 참고하시면 될 것 같고(https://brunch.co.kr/@northcat/48), ‘닭강정’과 ‘아이폰’의 이야기도 하면 끝이 없습니다. 그나마 지난 십여 년간 기회 될 때마다 좋은날을 들으며 닭강정을 사 먹었더니 징병의 상처가 좀 치유되었건만 아이폰은 아니었나 봅니다. 종종 꿈에 故스티븐 잡스가 저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했을 정도니까요.  

평소에 저는 아이폰을 쓰는 아내를 보며 「아이폰은 매국, 갤럭시는 애국」이런 노래를 부르며 핍박하고는 했습니다.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부러워서 그랬습니다. 아마 아이폰은 제 마음속 결핍으로 계속 남아있었나 봅니다. 마침 가격대 괜찮은 제품이 나와서 구매를 고민하고 있자 애플 마니아인 제 친구 경수가 벼락같이 저를 꾸짖었습니다.

「예비군에게 얀센도 나누어준 혈맹의 제품을 사는 것이 그렇게 고민할 일인가!!!」

바로 설득당한 저는 당장 전화기를 질렀고 아직 적응 중이지만 재미있게 쓰고 있습니다. 더 늙기 전에 아이폰도 한 번 써봐야지요.    



못생긴 것만 올린 것 같아 괜찮은 것도 한 장...



4.

그리고 요새 다시 보는 책 하나가 있는데 한번 추천드리겠습니다. 제목은 「굿모닝 예루살렘」이고요 작가는 캐나다 출신의 기 들릴이라는 분입니다. 이분은 이 책으로 2012년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에서 최고 작품상도 받으셨다고 해요. 아주 재미도 있고 만화책이라 부담도 없습니다. 담겨 있는 메시지가 가볍지는 않은데 읽기도 편하고 누구 선물하기도 좋고 시간 날 때 잠깐씩 봐도 괜찮은 그런 책입니다.

소개를 드리면 이분은 만화가고 아내 분은 국경 없는 의사회에 근무합니다. 그래서 세계 곳곳의 위험한 곳을 떠돌아다니고 계시죠. 그래서 「평양」도 있고 「굿모닝 버마」도 있고 그렇습니다. 다 재미있으니 기회 되시면 찾아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아내 분이 상근직이시니 일을 하시고 이 작가님은 나름 프리랜서이니 애를 보면서 만화를 그리게 됩니다. 저에게도 의미가 있는 책인데 제가 와이프랑 연애할 때 첫 번째로 선물 한 책이 이 책입니다. 생각해보니 저에게는 일종의 예언서였던 거죠. 「와이프가 돈 벌고 너는 애를 보게 될 것이다」 막 이렇게 미래를 알려줬던 건데 그때는 잘 몰랐네요.

책의 분위기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시니컬한 휴머니즘, 딱 그렇게 보시면 됩니다. 분쟁지역에 있다고 해서 너무 진지하다거나 명분에 쌓여 저 나쁜 놈들 그런 거 없습니다. 그냥 생활인의 시각에서 주변을 관찰합니다. 그렇다고 전형적인 서구인의 오리엔탈리즘 적 시각도 아니고 그냥 인간 대 인간의 시선이에요. 보시면 제가 무슨 말하는지 아시게 될 겁니다. 사실 애 키우는 게 휴머니즘의 극한이잖아요 매일 내가 누구인지 고민하고 자책하고 지금 내가 서 있는 세상이 실존하는 건인지 꿈인지 막 헷갈리고, 매일 회한의 눈물도 나고 그러잖아요. 저도 요새 흥얼거리는 노래가 이승환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인데요, 이 부분의 가사가 특히 마음에 와닿아서 그렇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모든 걸 되돌리고 싶어...」

이 책은 정말 그런 눈물 나는 휴머니즘이 아니라 냉철하지만 나름 훈훈한 그런 인본주의적 시각으로 예루살렘이라는 분쟁지역을 소개해줍니다. 인본주의를 좀 잘못 서술하면 시쳇말로 ‘뽕끼’가 좔좔 흘러 거부감부터 드는 사람들도 계실 텐데 「굿모닝 예루살렘」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반복하지만 선물해도 좋습니다. 딱 배운 티 나거든요 헤헤헤.

아 그리고 여기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이 있습니다. 책의 배경이 예루살렘이잖아요, 당연히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실제로 책에서도 옆 동네에서 폭탄이 터지고 총알이 날아다니는 게 다반사입니다. 그래도 애들 데리고 나가요. 유모차 끌고 나가요. 이 캐나다 아저씨도 집에 아이 둘과 내내 있는 걸 견딜 수가 없었던 거죠. 안에서 죽으나 밖에서 죽으나 그게 그거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추천드려요!!!



5.

여하간 저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저같이 의지가 박약한 사람은 약간의 시련이 닥치면 글이고 뭐고 다 팽개치는데 꾸준히 쓰시는 작가님들은 정말 존경합니다. 대단하세요. 읽어주신 분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리고 부디 거리두기가 8월에는 좀 완화되어 재하도 어린이집에 등원하고 저도 글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건강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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