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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우 Sep 13. 2021

그냥 어린이집 가라, 딸아

아빠 너무 힘들다

  만에 재하는 어린이집에 등원했다. 대외적인 명분은 엄마 아빠의 백신 접종 완료와   아기의 사회성 함양이었지만 실제적인 이유는 내가 죽을  같아서, 정말 속된 말로 뒤질  같아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전염병 감염보다 골병과 우울증으로 먼저   같았다. 나라도 재난상황이고 우리 집도 재난상황이었다.   

      

매일 밤 꿈이 흉몽이었다. 감방에도 가고 곰에게도 쫓겨 다녔다. 놀아주는 게 힘들어 대충 몸으로 때우려고 재하를 많이 안아줘서인지 허리에 무리가 왔다. 등이 펴지지 않아 꼬부랑 어르신처럼 허리를 구부리고 다닐 때도 많았다. 그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재하는 아침에 일어나면 딩굴딩굴 이불을 뒤집어쓰고 굴러다니며 티브이를 보는 게 낙이었다. 하도 어이없어 재하에게 물었다.

「재하야, 선생님이랑 친구들 보고 싶지 않아?」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빠, 아빠!!」

아빠 있어서 괜찮다는 뉘앙스였다. 그러면서 만면에 미소를 띠고 손뼉발뼉을 치며 좋아했다. 나는 콩순이 노래를 노동요로 흥얼거리며 재하를 업은 채 딸내미 점심상을 차리곤 했다.

「안녕~ 나는 재하야♪ 아빠를 가만두지 않아♩」

(원래는 「안녕, 나는 콩순이야 잠시도 가만있지 않아」입니다)        


안 내려가야지ㅋㅋㅋ



힘든 것도 힘든 건데 딸의 교우관계가 꽤 걱정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현실 친구가 없으니 인형 친구만 늘어났다. 말동무를 해줘야 하는 늙은 아빠는 정오만 지나도 눈이 풀려 「... 아빠 좀만 쉴게」만 중얼거렸다. 사람을 별로 겪지 않으니 낯가림도 점점 심해졌다. 무엇보다 애가 심심해하는 게 눈에 보여서 마음이 무거웠다. 그 와중에 형제가 있으면 덜 심심해하지 않겠냐고 엄마가 실없는 말을 하길래 당신께서 바로 아래 동생과 절연한 사실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잠시라도 재하를 보육기관에 다시 보내기로 했다. 고맙게도 아내가 남편이 죽어가는 지금이 긴급 상황 아니면 언제가 긴급이냐고 강력하게 말해줘 그나마 기분이 나아졌다. 다만 어린이집도 선생님도 친구들도 다 잊어 먹었을까 봐 우리는 며칠 전부터 재하에게 시간 날 때마다 이야기했다.

「재하야 어린이집 맘마 기억 나? 우리 다음 주부터 다시 냠냠하러 가볼까?」

「재하야 선생님 안 보고 싶어? 선생님이 재하 너무 보고 싶다고 꼭 오래」

「재하야 B가 C랑 손잡고 다닌데. 당장 쫓아가서 끝장을 봐야 하지 않겠어?」

재하는 처음에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무슨 이상한 말을 하고 있나 라는 표정으로 날 보았다. 그러다가 사흘 내내 떠들자 충분히 알았다고, 내 발로 가겠다고, 그러니 이제 그만하라고 역정을 냈다.  


사실 안 심심한가?


     

강한 저항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재하는 엊그제 등원했던 것처럼 순순히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한참 만에 본 아이들도 훌쩍 커 있었다. 재하 사진이 벽에 붙어있어서였을까. 아는 얼굴 두세 명이 달려와 「재하!! 재하!!」를 외쳤다.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걔네들은 분명히 말도 못 하던 녀석들이었기 때문이다.          


딸이 외출한 집은 고요했지만 쉴 수 없었다. 내 교육방식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계속 따져봤다. 두 달 동안 우리 딸은 꾸준히 퇴행해서 수저질을 하기보다는 입을 벌리고, 골고루 먹기는커녕 소시지 타령만 하고, 요구사항을 말하기보다는 「아빠」를 십 초에 일곱 번씩 불러가며 거저 때우고 있었는데 머리카락도 몇 개 없는 것들은 말을 하고 있다니.    


요즘 재하는 예전 제주에서 보던 중국 사람들 같았다. 그 관광객들은 자기 말을 못 알아들으면 조금이라도 알아듣게 영어로 말하든지 다른 방법을 하는 게 아니라 크고 적극적이며 더 빠른 중국어로 말했다. 나중에는 윽박지르듯이 소리를 질렀다. 그들의 모국어 사랑은 배울 만했지만 어처구니가 좀 없기도 했다. 문제는 우리 딸도 비슷하다는 거였다. 「아빠! 아빠!」하며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말했을 때 내가 못 알아들으면 말을 더 하려고 하기보다 「아빠아!!!! 아빠아아아!!!!」를 더 크게 외쳤다. 자기 말에 나름 자신이 있나 보다 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말하는 아이들을 보니 자존심도 상하고 위기감이 들었다. 그리고 세 시간 후 재하를 다시 데리러 가는 길에 쓸 데 없는 생각하지 말고 잠이나 잘 것을 하며 후회했다.      


다시 잡은 두 손

   


다행히 재하는 친구들과 잘 지낸다고 선생님과 말씀하셨다. B는 C와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재하에게 돌아왔다고 하며 또 다른 D라는 남자아이도 등장해 딸에게 친한 척을 한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내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인기 많다고? 머리카락이 많아서 머리발이 좀 있나」

「확실히 머리카락은 지 애비랑 삼촌 합친 것보다 많지」

「... 그나저나 말도 못 하는 애 어디가 마음에 드는 거지?」

나는 대답했다.

「... 음 백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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