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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우 Jul 09. 2021

등원 거부를 거부한다

딸과의 눈치게임

오전 9시가 가까워오면 나와 딸은 눈치게임을 시작한다. 누가 그 말을 먼저 꺼낼 것인가? 아빠인가 딸인가? 서로 동시에 말할 때도 있다. 「재하야, 어린이집 갈래?」 ,「아아~ 아니~ 아아~」.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보다 어렵다는 바로 그 말, 어린이집 가자는 말이다.


안 갈 거야 힝...


보통 급한 것은 아빠이기 때문에 내가 먼저 말할 때가 많다. 저번에 오은영 박사님이 어느 프로그램에서 알려주시길 당연히 해야 하는 그런 일들은 선택을 물어보면 안 된다고 하셨다. 옳은 말씀인 건 알지만 애가 「그 제안 거절한다」라고 했을 때 뭐라고 답을 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시지 않았다. 「... 그렇구나... 가기 싫구나」라고 공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재하가 명확하게 내 말을 까면 뭐라 할 말이 없어진다. 가기 싫어하는 게 이해가 되어서 안쓰럽긴 하다. 나도 학교 다니기 싫어했으니까. 그렇지만 두 주 전 아이가 아파서 일주일 집에 있었던 이후에는 어린이집 입구에서 울어도 웃으며 안녕할 수 있는 마음 강한 아빠로 거듭나게 되었다.



재하가 먼저 말할 때도 있다. 내가 그윽하게 바라보면 눈썹 사이를 좁히며 손을 휘휘 젓곤 한다. 가기 싫을수록 이마 문신은 깊어지고, 손은 강하게 휘두른다. 바람소리가 날 때도 있다. 그렇게 세게 울거나 그러지도 않는다. 강하게 를 쓸수록 부모도 타협할 여지가 사라진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부작용을 알자 이제는 지속적으로 은근히 불쌍한 척을 하며 가지 않겠다고 한다.  반면에 아내가 휴가 같은 것으로 아침에 있는 날이면 재하는 일어나서 물도 못 얻어먹고 어리벙벙하게 끌려갈 때도 있다. 흉내 내어 보려고도 했지만 그런 단호함은 배워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부녀 사이만 나빠지고 나는 거실에 재하는 방에 있게 된다.



어제는 또 갈 시간이 임박해오니 딸은 눈치를 채고 안 간다고 선빵을 날렸다. 예상하고 있었다. 미리 준비한 멘트를 날렸다. 「어린이집 가서 맛있는 거 먹어야지」. 실제로 어린이집 먹을 게 잘 나오기 때문에 재하는 약간 움찔했다. 그래도 안 간다고 하자 하나 더 날렸다. 「선생님한테 예쁘게 머리 묶어달라고 해야지」. 내가 묶어준 머리는 아기 동학농민군 스타일이었다. 당장이라도 보국안민을 외치며 양이로부터 나라를 구하겠다며 유아용 죽창을 들고나갈 태세였다. 요새 외모에 부쩍 관심이 많아져서 일단 가겠다는 승낙은 받아냈다.


아니, 가면 잘만 있구먼


그다음도 문제였다. 옷을 골라야 했기 때문이다. 나비모양 손을 하는데 이게 뭘 가리키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말을 해야지. 급하면 말을 하는데 아직 급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구멍 뚫린 셔츠를 또 고른다. 아니, 이것만 입고 가면 우리 집이 엄청 가난하거나 애를 방임하는 줄 알 거 아니야. 다른 예쁜 옷 좀 입자고 구슬렸다. 재하는 원피스 같은 옷보다는 편히 입는 바지 같은 걸 더 좋아한다. 그래서 공주처럼 꾸며주고 싶었던 아내 일당은 실망이 컸다. 아무튼 21개월 등원룩을 고르는 실랑이를 하며 아침부터 지쳐버렸다. 표정이 곱게 나오지 않는다. 아빠 표정이 썩는 걸 보면 또 안 간다고 한다. 무한 루프 뫼비우스의 띠가 따로 없다. 옷을 가지고 나오면 자기가 입겠다고 또 대거리를 한다.



신발도 문제이다. 저번에 할머니가 샌들을 하나 사줬는데 그건 또 싫다고 했다. 더운 날에도 꼭 양말을 신고 운동화를 신겠다고 한다. 매번 즐겨 착용하시는 운동화는 빨지도 못해 가 꼬질꼬질했다. 아무래도 어린이집 선생님이 우리 집을 의심할 것 같다. 그래서 어린이집 선생님께는 예의 없지만 나부터 맨발로 슬리퍼를 신고 가게 됐다. 「아빠도 맨발 재하도 맨발」을 외치면서. 그러다 갑자기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샌들을 신겠다고 했다. 마음이 바뀔까 봐 두근두근 하며 신을 신겼다. 심장이 떨리고 불안했다. 따님 눈치 보며 신기다 손이 자꾸 미끄러졌다. 일단 안고만 나가면 그다음에는 울든지 안 가겠다고 하든지 그냥 직진하면 되는데 문을 나서기까지가 늘 문제였다. 알림장에는 「재하가 오늘도 웃는 얼굴로 즐겁게 친구들과 놀이하고 밥도 두 그릇 먹었어요」라 하는데 집 떠나기가 그렇게 싫을까. 이런 과정을 하고 나면 지쳐서 집에 가서 한 시간은 누워있다. 말이 통하는 것도 안 통하는 것도 아닌 과도기의 아이에게는 제시해야 하나 늘 고민이다.


B와의 행복한 시간... 좋을 때 많이 즐겨 둬라 ㅋㅋ


그러나 가끔 기적도 일어나는 것 같다. 오늘 재하는 아침 9시가 다 되어서 일어났다. 식사를 하겠다고 하기에 10시에 가 다행이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눈물을 흘리며 빵을 구웠다. 재하가 빵 한쪽을 다 먹더니 갑자기 어린이집에 가겠다고 손가락질을 했다. 웬일인가 싶어 혹시 누구 보고 싶은 거냐고 물어봤다. 다 고개를 젓더니 「B 보고 싶어?」라는 말에 수줍게 끄덕거렸다. 아니 세상에 벌써 어린것들이. 그래도 괜찮았다. 사실 좋았다. 이제 B 핑계대면서 어린이집에 편히 보낼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신경도 쓰지 않는다.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으니까. 하하하. 싸우지는 않겠지? 다음날 안 간다고 하거나 어린이집 옮기겠다고 할지도 모르는데. 혹시 다투려면 부디 금요일에 싸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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