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의 기억-1
제주교육박물관 이동박물관을 운영하는 날이었다.
탐라문화제라고 바닷가 옆이기는 한데 바다는 보이지 않으면서 바닷바람은 맞으며 하는 그런 축제였다.
우리는 온고이지신의 마음으로 민속놀이 스테디셀러 제기차기, 투호 던지기, 딱지 접기를 들고나갔다.
생각하기 귀찮고 타성에 젖어서 하던 거 또 하는 그런 건 절대 아니었다.
옆에는 민속자연사 박물관이 와 있었다.
VR 체험 장비를 들고 왔다.
하 역시 도청은 돈이 많다.
아주 북적였다.
「... 저쪽은 사람이 참 많구나」
알바를 하던 대용이가 대꾸했다.
「형 같으면 딱지 치실래요 VR 하실래요」
그래서 나는 옆 부스로 가서 어린이들 뒤에서 기다렸다가 VR 체험하고 왔다.
재밌었다.
우리도 4차 민속놀이를 도입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앞에는 농협에서 온 우리 돼지 한돈 부스가 있었다.
우리는 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겠구나란 기대를 했다.
가서 언제 굽냐고 물어보니 고기 담당자들이 어디서 뺑끼질을 하는지 오지를 않는다고 했다.
오후가 되어서야 농협은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당연히 사람들은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남녀노소 국적불문, 우리 돼지 한돈의 경쟁력이 느껴졌다.
우리가 아무리 옛날 교복 한번 입어보라고 소리쳐도 귓등으로도 안 듣던 사람들이 어디서 냄새는 맡았는지 뛰어왔다.
인생이 다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우리 부스로 와서 민속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정성이 마음에 닿았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기를 열나게 차서 뱃속을 소화시킨 방문객들은 다음 고기가 익자 저쪽으로 가버렸다.
물론 제기와 투호와 딱지는 길바닥에 뿌리고 가버렸다.
우리도 우리 돼지 먹고 싶었는데 털 빠진 제기나 주우러 다녀야 했다.
고기 먹고 제기 차고 또 고기 먹고 딱지 치는 악순환은 계속됐다.
아내가 도와주러 잠깐 들렀는데 사람들에 섞여 고기를 먹으러 가버렸다.
배가 부른 이들이 다시 소화시키려 부스로 몰려오자 아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총총총 사라졌다.
한 명이라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무척 부러웠다.
그리고 곧 택시 탔다고 자랑했다.
오늘 번 출장수당으로 아내가 편히 귀가했다고 생각하니 흐뭇했다.
물론 아내가 일하고 있는데 내가 가서 고기만 먹고 튀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를 고민해봤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런 부질없는 상상은 접어버렸다.
부모들은 우리 부스에 아이들을 맡겨놓고 고기 드시러 가셨다.
나도 아이들을 알바 친구들에게 넘겨주고 맛이라도 보러 갔다.
추운 바람맞으며 남이 구워주는 고기를 먹으니 너무 맛있었다.
밥상 위에 국가대표가 과장광고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인정하기로 했다.
고기가 동이 나자 군중들은 흩어졌다.
제기 차던 사람들도 사라졌다.
외투에 배인 냄새만이 여기가 사람들이 넘쳐흘렀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했다.
황성 옛터도 아니 한돈 옛터라니.
아무튼 그렇게 고기 구경을 하며 닷새를 때웠다.
그나저나 다음에는 뭘 하지?
우리도 4차 산업 시대에 걸맞은 걸 해야 하는데...
내년에는 사주라도 봐줘야겠다.
p.s 1 : 지금은 살지 않지만 예전 제주 살 때 썼던 글들이 있더군요. 정리도 할 겸 시간 순서에 관계없이 종종 올려보겠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봐주세요.
p.s 2 : 탐라문화제는 10월쯤에 열리는 제주 전역의 축제입니다. 한국예총 제주지부에서 총괄하기는 하지만 제주 온 전역의 관공서나 문화단체들이 모여서 벌이는 행사입니다. 제가 근무할 때 저희 박물관도 이동 전시하러 나갔었지요. 그때의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