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바퀴벌레 두 마리를 만났다.
한 번은 집에 들어오는 샛길 앞에서, 한 번은 함덕 해변에서 보았다.
나는 개인주의적인 사람인지라 바퀴에 별 악감정은 없었다.
하지만 정옥이가 중증 바퀴포비아를 앓고 있기에 명랑한 가정생활을 위해서 ‘나는 바퀴가 싫어요’를 종종 스스로 되뇐다.
토요일에 만난 바퀴벌레는 아파트 옆 지름길 입구에 앉아 있었다.
김선생 냉우동을 먹고 기분이 좋아진 정옥이가 언덕길을 뛰어 올라가다 경기를 하며 도로 내려왔다.
한두 번 겪은 것이 아닌지라 일단 형식적으로 괜찮냐고 물어본 뒤에 바퀴벌레를 쫓으러 갔다.
바퀴에 큰 관심이 없다 해도 딱히 마주치는 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바퀴벌레보다 정옥이가 더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 놈은 아치형 문 정확히 가운데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제주도는 공기가 얼마나 좋은지 벌레도 크기가 거대하다.
선캄브리아 시대에서 진화하지 못한 곤충 친구들과 함께했던 강원도 시절이 떠올랐다.
조용히 돌아와서 저 친구는 사람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라고 하며, 그럼에도 두려움을 피하지 않는 용맹한 바퀴벌레기 때문에 살려줄 가치가 있다고 정옥이를 설득 하려했다.
그리고 왼쪽 귀를 잡힌 채 정문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일요일 오후에는 함덕 해변가에서 바퀴벌레를 보았다.
나는 분당에서와 마찬가지로 제주에서 와서도 가내에 칩거하는 생활을 변함없이 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관에서 택시 운전사를 보고는 괜히 우울해져 정옥이에게 바다 구경을 가쟀다.
그랬더니 정옥이는 함덕에 가자고 했다.
휴가철이 다 지난 줄 알았는데 여전히 사람은 많았다.
그래도 중국말은 별로 들리지 않았다.
일본어는 좀 들리는 것 같아 귀를 집중해보면 빠르게 하는 제주 말이었다.
애월 바다는 초록빛이었는데 여기는 회색이라고 궁시렁 거렸다.
정옥이는 빛에 따라 바다 빛깔이 달라진다고 기다려 보라고 했다.
잠시 후 해가 나오자 바다는 쪽색으로 바뀌었다.
한낱 문돌이는 과학상식을 또 하나 알게 되었다.
정옥이가 말하길 자기는 지구과학만은 잘했다고 했다.
나는 사탐공부를 위해 과탐은 포기했었다고 했다.
함덕 바다 바위들 틈에서 보았던 걔는 바퀴벌레는 아니었다.
생긴 건 유사바퀴였는데 나중에 검색해 보니 갯강구라고 물 옆에 사는 거라고 했다.
정옥이는 그래도 밉다고 했다.
아 바퀴가 싫은 게 아니라 그렇게 생긴게 싫었던 거구나.
나랑 사는 거 보면 외모 취향은 독특한 것 같은데 벌레 취향은 보편적이라는 사실이 신기했다.
세상에 나쁜 바퀴는 없다고 또다시 정옥이를 설득하려 하다가 분위기가 안 좋아지는 것 같아서 모래밭으로 재빨리 빠져 나왔다.
눈치와 분별력으로 먹고 살았던 35년인데 요새 한 마디씩 꼭 더 붙이다가 자꾸 혼나게 된다.
사실 갯강구 때문에만 도망 나온 것은 아니었다.
갑자기 바윗가에 사람들이 불어났기 때문이었다.
손과 손에는 물고기를 담은 비닐 봉지를 들고 있었고 살펴보니 태고종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무래도 방생을 하려는 것 같았다.
몰려든 사람들은 어느 새 갯강구를 밟아버렸다.
웃으며 앞에만 바라보고 전진하던 터라 신경을 아무도 안 쓰고 지나들 가고 있었다.
정옥이한테 얘기해봤자 좋은 소리 못 들을 것 같아서 나도 내 갈길 갔다.
돌아가는 길에 혹시 나를 전도하려고 여기를 데리고 왔냐고 물어봤다.
이번에는 오른쪽 귀를 잡힌 채 운전을 해서 집에 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