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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우 Oct 24. 2021

중학생 셋

쪼랩은 선빵필승

주말 오후 박물관은 한가하다.
유초딩들이 엄마 아빠와 함께 찾아오는 것 말고는 사람이 별로 없다.
초등학생들은 ‘유초딩’이라는 명칭으로 어린애들과 같이 범주화되는 것을 상당히 싫어하겠지만 사실 하는 짓들은 비슷하다.
참여 활동하는 종이들 바닥에 버리고, 들어가지 말라는 곳에 들어가고, 전시된 옷들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고 그런다.
무엇보다 우리 박물관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디지털 맛보기를 구현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선들이 중환자실 마냥 얽혀있다.
블루투스 네트워크를 20세기유선방식으로 커버해보려니 나이든 컴퓨터들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게다가 그걸 애들이 아무렇게나 눌러대며 괴롭히니 컴퓨터들은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고 있다.
그래서 내 요새 주요업무는 이런 노후화 된 컴퓨터들을 고치는 일이다.
아니 이럴 거면 응시과목에 전산실습 같은 거나 넣지 고고학, 미술사는 왜 집어넣어 나를 늘 시험에 들게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고, 이렇듯 휴일 오후의 고요한 박물관에 시커먼 중학생 셋이 들어왔다.
무언가 재수 없고 세상을 조소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들어오는 것이 사춘기 초입을 지나 절정으로 치달아가는 애들 같았다.
‘혹시 담배를 피러 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긴장이 되었다.
막상 화장실에서 담배 피는 걸 잡으면 뭐라 해야 하는지 고민도 되었다.
“야- 너희들 여기서 뭐하는 거야?”
“학생들- 어느 학교 다녀? 이러고 있는 걸 부모님과 선생님은 아시니?”
“청소년 여러분- 공공장소에서 흡연하면 1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무슨 말을 해도 중학생들이 닥치라며 나를 때릴 것 같았다.
 
쪼랩싸움은 선빵필승이라는 말에 따라 기회가 된다면 먼저 자위권을 행사해야 할까 갈등했다.
하지만 백만청년실업시대에 어떻게 얻은 직장인데, 중학생들과 싸워서 잘리는 건 너무 슬픈 일이었다.
손자가 적을 공격하려면 3배가 있어야 된다고 했는데, 지금 나는 걔네의 3분의 1에 불과했으니 전술적으로도 불리했다.
아무튼 나는 속으로 제발 담배만 피지 말아달라고 되뇌며 CCTV만 살살 보고 있었다.
 
그러나 질풍노도의 중학생 셋은 내 예상과는 달리 노래방 코너로 들어갔다.
참고로 우리 박물관에는 노래방 기계가 하나 있는데 교가나 동요, 스승의 은혜 같은 건전한(?)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좁고 사방이 막혀 있지만 투명한 쪽방에 성장기 사내아이 셋이 들어가서 뭐하나 했더니 교가를 불러댔다.
각기 다른 노래를 부르는 것이 다 다른 학교에서 온 것 같았다.
그 노래방은 예산이 부족해 저렴한 유리벽을 쓴 건지 방음이 잘 되지 않는다.
애들한테 그걸 먼저 알려줄걸 그랬다는 생각도 들었다.
중학생 셋은 무엇의 정기를 이어받겠다고 악을 써댔다.
확실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여긴 제주도니 아마 주어는 한라산이었을 것이다.
오름의 정기를 이어받겠다는 학교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너무 시끄러워서 이어폰을 꼈다.
한 20분쯤 지났을까.
애들은 아직도 무언가를 부르고 있었다.
아니 아이돌 오디션을 교가로 나가려는 것도 아니고 저 덥고 좁은 곳에 왜 남자애 셋이 뒤엉켜 있나 했더니 누구를 사랑한다고 울부짖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하며 요새 교가는 사랑한다는 말도 들어가나 해서 잘 들어보았다.
그건 어디에선가 들어본 유행가였다.
 
어찌된 일인지 가서 살펴보니, 한 아이가 휴대전화기에서 MR을 틀어 마이크에 붙이고, 다른 아이 하나는 두 번째 마이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 제주교육박물관이 돈 없고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한 인민노래방이 되어주고 있었다니.
어이가 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했다.
저리 순수한 아이들을 두고 난 선빵을 쳐야하나 이런 궁리나 하고 있었다니.
많이 반성도 되었다.
 
하지만 내가 한 눈을 판 사이, 그 일당은 2층에 있는 ‘옛날 교복입어보기’에 가서 옷들을 한 번씩 입어보고 패션쇼를 하다 교복들을 몽땅 바닥에 다 팽개쳐 두고 유유히 사라졌다.
덕분에 나는 퇴근 직전에 전시장을 한참 치워야했다.
망할 중딩들, 월요일 회의 할 때 이제부터는 중학생도 부모동반해서 입장시켜야 한다고 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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