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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우 Nov 10. 2019

아니, 결혼식을 사흘 동안 한다고

포틀래치와 쿨라

예전에 친구들에게 제주에서 결혼한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이 녀석들은 놀러 다닐 생각에 아예 내 얘기는 안중에도 없었다. 얼른 사진만 찍고 산으로 바닷가로 떠날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결혼식을 하루 종일 진행하기 때문에 너희들도 계속 식장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게 말이 되냐고 되묻길래 이곳 사정을 찬찬히 설명해주었다. ‘제주 원주민들끼리 인연을 맺으면 사흘간 결혼식을 할 때도 있다, 하루는 돼지를 잡고 그 다음날은 신랑 신부 전날잔치를 하고, 마지막 날에 본식을 한다, 행사 진행 중에는 당사자들의 친한 지인들이 손님을 안내하고 자리를 지켜주는 청객을 해 준다, 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신랑, 신부에게 직접적으로 축의금은 전달하는 편인데, 이때 이들의 뒤를 쫓아다니며 봉투를 맡아두는 사람들을 부신랑, 부 신부 이런 식으로 부른다, 너희는 이런 것을 기꺼이 해야 한다, 그나마 우리는 이방인끼리 결혼하는 거니 11시부터 5시까지만 하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고마워해야 한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정작 결혼식 당일이 되자 친구들은 두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사라지고, 내 아버지 어머니를 포함한 본가 사람들은 세 시간 만에 도망가고, 다만 처가댁 식구들만이 우리 부부보다 더 오래 자리를 지켜주었었다. 물론 아내의 제주 공무원 동료들은 끝까지 함께 해 주었다. 



겨울 축제를 벌이고 있는 콰키우틀족


인류학자 프란츠 보아스(Franz Boas)는 북아메리카 북서부 해안 브리티시컬럼비아에 살고 있던 인디언 콰키우틀(Kwakiutl) 족의 재밌는 풍습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들은 장례식이나 결혼식, 대관식과 같은 중요한 의례가 있을 때 인근 부족들을 초청하여 ‘포틀래치(potlatch, ‘식사를 제공한다’,‘소비한다’라는 의미의 단어이다.)’라 부르는 광적일 정도의 낭비와 무절제한 소비가 이루어지는 성대한 잔치를 여는 관습을 가지고 있었다. 주최자는 손님들에게 생선 기름, 동물 가죽 등 귀중품을 선물했다. 당연히 음식도 차고 넘치게 제공하며 때때로 타인들에게 과시하기 위하여 부족에서 가장 소중한 구리판이나 카누, 담요 등을 파괴하기도 했다고 한다. 가용 가능했던 재원에서 이런 행위들은 한 것도 아니었다. 돈이 없다면 빚을 내서 잔치를 연 다음 구리판을 부수어야 했다. 그래도 보통은 상대방이 용인 가능한 수준에서 사례 하긴 했지만, 아예 감당도 못할 물품을 주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선전포고로도 받아들여졌다.


James Swan이 묘사한 1800년대 클랄람(Klallam)족의 포틀래치 축제


자본주의 개념에서 이러한 행동들은 ‘베블렌 효과(Veblen effect, 미국의 경제학자 베블렌이 발견한 개념이다. 상품의 가격이 오르는데도 과시욕이나 허영심 등으로 인하여 수요가 줄어들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의 한 예로 사용된다. 과시적 소비의 일종이며,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부를 과시함으로써 경쟁자들을 압도하려 한다는 것이다. 사회 내에서 당사자들의 명성을 확고히 하고 영향력을 발휘하려 하는 관행들이라고 볼 수 있다. 카페에서 비싸게 마시는 커피 한 잔이라든지, 호텔에서 하는 고급 결혼식은 오늘 우리의 모습들에서도 흔하게 ‘포틀래치’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있게 한다. 나도  월급을 타면 요플레를 사서 뚜껑만 핥아먹고 버리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었으나 아내의 방해와 위협으로 아직까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쿨라 교환이 이루어지던 파푸아뉴기니 지역


다른 한편으로는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Marcel Mauss)가 ‘포틀래치’를 해석한 개념을 빌어 이러한 행위들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모스는 원시부족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교역이 시장 거래와는 다른 ‘선물교환’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선물교환에서 주고받는 것은 단순히 물건이 아니라, 선물을 주는 사람의 영혼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를 통하여 사회적 유대를 형성하며 자발적이고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회적인 의무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포틀래치’와 태평양 뉴기니 섬의 ‘쿨라(kula)’ 제도를 함께 설명하며 ‘선물 의례’를 구체화했다. A라는 사람이 B에게 선물을 했다고 치자. B는 답례를 A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C에게 한다. 이것이 ‘쿨라’이다. 이것이 계속 반복되며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지고 모든 사람들이 충분한 몫을 가지며 만족하게 된다. 이를 통하여 ‘호혜성’이라는 사회적 법칙이 생기며 이에 대한 신뢰도 함께 생긴다고 말했다. 


조선시대를 ‘선물 경제(膳物經濟)’의 시대로 보기도 한다. 한때 시장만능주의가 득세했던 시절에는 ‘선물 경제’를 ‘시장경제’의 반대편에 서 있는 개념으로 설정하여 조선시대가 정체되고 비합리적인 사회로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대기업들이 이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 빈부격차를 줄이는 행위를 ‘포틀래치 경제’로 명명하여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줄이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와 함께 우리 조상들의 선물 교환 풍습도 사회의 부를 나누는 재분배의 지혜로 여겨지기도 한다. 물론 ‘선물 경제’가 ‘뇌물경제’로 이해되면 안 될 일이다. 무엇을 갖고 주느냐 보다는 베푸는 즐거움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고 생각된다.



제주 혼인문서(제주교육박물관)


서두에 등장했던 제주는 ‘수눌음’이라는 미풍양속이 대대로 전해 내려왔다. 마을에 힘든 일이 있으면 품앗이를 하여 돕고, 서로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며 생활했다. 처음에 말했던 결혼식 또한 공동체의 유대를 다지며 조화롭게 생활하고자 했던 제주 조상들의 지혜이다. 물론 육지로부터의 수탈같이 가혹한 역사를 지닌 제주의 어두운 그림자 일수도 있겠다. 역시 글머리에 언급한 부신랑, 부신부 같은 관습들은 서로 밖에 믿을 사람이 없었던 제주 사회의 모습이 담긴 단면으로 보아도 될 듯하다. 


이제는 슬슬 연말이 다가온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때때로는 자신의 것들을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며 따뜻한 한 해 마무리가 되시기를 바란다. 물론 술잔은 조금만 나누도록 하자. 음주는 ‘포틀래치’와 어울리지 않는다. ‘쿨라’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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