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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우 Nov 01. 2019

겨울이 오면

옛사람들의 겨울 먹거리

철이 바뀌면 이런저런 준비를 하게 된다. 특히 아기가 생기니 뭐 그렇게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아지는지. 가격도 비싸다. ‘웨딩’이나 ‘베이비’가 붙으면 값이 배가 되는 것을 몇 년 새에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현시대에서 계절이 돌아오면 먼저 마련해야 할 것은 옷이다. 집이야 에어컨이나 난방이 있고, 먹는 것도 먹던 것 먹으면 되지만 옷은 아니다. 겉에 걸칠 것도 신을 것도 새로 사던 지난해 쓰던 것을 꺼내든 해야 한다. 옛사람들은 무엇이 먼저였을까. 아무래도 식료품이 아닐까 싶다. 인간 생존에는 먹을 것을 통해서 섭취한 에너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겨울이 오면 밖에서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워진다. 동물처럼 겨울잠을 자면 좋겠지만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식품을 저장하는 방법을 연구해 기나긴 겨울을 나곤했다.


겨울의 슈바르츠발트


로마제국이 성립된 이후에도 독일 지방은 로마 문명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토이토부르크 전투(AD 9, 로마 제국의 아우구스투스가 보낸 로마 3개 군단이 독일의 토이토부르크 숲에서 게르만의 지도자 아르미니우스에게 전멸된 전투. 로마 제국 최악의 전투로 꼽힌다. 이로서 로마 제국은 게르만족의 땅에서 물러나게 된다)이후 로마제국은 독일 지방에 대한 영토 확장을 포기한다.


토이토부르크 전투


덕분에 라인 강 동안(東岸)에서는 독일 지방에 살던 게르만족 고유의 문화가 지속되게 되었다. 문제는 그 지역이 너무나도 척박했다는 것에 있다.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즉 ‘검은 숲’이라고도 불리던 게르만족의 땅은 앞이 보이지 않는 숲, 햇빛도 들지 않는 어두움, 높은 위도에 위치한 탓인 긴 겨울이 특징이었다. 그 외의 계절이야 사냥을 하든 물고기를 잡든 하겠지만 겨울에는 도저히 답이 없었다. 따라서 가축도 생장 기간이 짧은 돼지 밖에 기를 수 없었고, 생존을 위해서는 추운 날 동안 먹을 음식의 저장도 필수적이었다. 독일 지방을 여행 가거나 독일식 맥주 가게에 가면 나오는 양배추 절임인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사우어크라우트...소세지랑 먹으면 아주 맛나다


물론 이 사우어크라우트는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17세기나 되어야 만들어진다. 아무튼 돼지고기를 그냥 저장할 수는 없으니 햄이나 베이컨, 소시지를 만들게 된다. 햄이나 베이컨은 좋은 부위로 만들었지만 소시지는 내장이나 머리고기 같은 남은 부위로 만들었다. 창자도 당연히 포함됐고 찌꺼기에 의한 냄새가 지독했다고 한다. 우리 시대에도 창자 세척의 위생에는 말이 많은데 그때에는 오죽했을까. 여기서 나온 유명한 말이 ‘법률과 소시지의 제조 과정을 알고 나면 사용 못 한다’라는 말(미국의 저널리스트 존 고드프리 색스가 했다고도 하고, 독일의 정치가 비스마르크가 했다고도 한다)이다. 이는 독일 지역만의 문제는 아니어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역의 소시지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향신료 사용 비결이 발달했다는데 현대에도 소시지와 햄 등을 먹으면 나는 야릇한 향의 유래는 이 창자 찌꺼기 냄새를 잡기 위한 데서 시작된 것이다.



타락죽...한국에도 이런 이국적인 맛이!!


몽골을 비롯한 유목민들은 말린 고기를 통하여 겨울을 보냈다. 몽골의 요리는 ‘하얀 음식’과 ‘빨간 음식’으로 구분된다. 몽고는 ‘오축(五畜)’ 즉 다섯 가지 가축이라 하여 양, 염소, 소, 말, 낙타를 기른다, 이들이 생산하는 유제품이 하얀 음식이고 이들의 고기가 빨간 음식인 것이다. 여름에는 유제품을 주로 먹는데 종류가 20여 종이 넘는다고 한다. 한국에도 고려 원 간섭기에 이들의 음식이 전해졌다. 대표적인 것이 타락죽이다. 우유에 쌀을 넣고 끓이는 요리인데 임금님이 드시던 귀한 음식으로 허영만 화백의 만화 「식객」에도 소개되어 있다. 가을에는 가축들의 살이 오르므로 몽골 사람들은 이것 들을 잡아 겨울을 날 준비를 한다. 양고기는 통으로 보관하고, 소고기는 잘게 찢어 육포를 만든다. 이것을 보르츠(Borts)라 한다. 특히 지방질이 많은 부위가 중요했다. 겨울의 초원은 영하 40도까지 기온이 떨어지기에 단백질과 지방을 섭취해야 그 겨울을 무사히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르츠는 군용 식량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육포의 일종이기에 휴대하기가 편해서였다. 몽골군은 얇게 저민 보르츠를 겨울 내내 건조한 기후에서 동결건조(진공의 상태에서 온도를 낮추어 용매를 보관하는 방법. 몽골은 겨울이 춥고 습도가 거의 없어 동결건조를 사용할 수 있었다) 시켰다. 봄이 오면 이 말린 육포들을 잘게 부수어 소의 방광이나 위장에 넣고 원정을 떠났다.


몽골의 겔에서 보르츠를 말리는 과정


어느 정도 과장이겠지만 방광 하나에 소 한 마리가 다 들어간다는 말도 있을 정도였다. 몽골군은 전쟁에 들어서면 이 보르츠를 말의 젖이나 뜨거운 물에 부어 고깃국을 만들어 먹었다. 소고기는 평상시 보다 수분이 제거된 상태가 되면 열량이 더 증가한다고 하니 전투식량으로는 최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유목민 식 고깃국이 유럽에도 전래되어 오스트리아에 가면 ‘타펠슈피츠(Tafelspitz)’라는 갈비탕을 먹을 수 있다.


타펠슈피츠...비엔나에서 먹어봤는데 갈비탕 맛이다


유목민 계열인 마자르족이 세운 옆 나라 헝가리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하는데 생각보다 깔끔하고 맛있다. 몽골 요리의 특이점은 몽골인들이 채소를 거의 먹지 않는 데 있다. 풀은 짐승이 먹는 것이라 여겼다나. 그래서 비타민이 부족해 겨울을 나고 봄이 오면 영양소 결핍으로 인해 사망률이 높아졌다고 한다. 봄이 되어 신체 활동이 늘면 비타민, 무기질 등 체내 영양소의 필요량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몽골인 들의 입장에서 보면 ‘겨울이 오면’보다 ‘봄이 오면’이란 제목이 더 설득력 있을 수도 있겠다.




그 외에도 겨울이 오면 바이킹들은 청어를 말리고, 인디언들은 물소를 잡았다. 한국인들도 ‘김장’이라 하여 배추와 같은 채소를 절였다. 겨울나기는 세계 어느 곳을 가든 힘들었던 모양이다. 내가 잠시 살던 제주에서도 겨울이 되면 방어를 잡고 꿩을 먹었다. 예전에는 이것들이 긴 추위 속에 생존을 위해 몸을 지키기 위해서였겠지만 오늘날에는 맛있는 별식이다. 겨울을 제대로 지내기 위해서는 음식을 잘 먹는 것이 첫 번째로 중요하다. 미리미리 잘 챙기셔서 겨울을 잘 보내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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