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vs 요즘 애들, 그리고 방정환
얼마 전 아는 후배와 상담을 한 적이 있다. 현재 사귀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객관적 조건이 자신보다 뒤떨어져 부모님이 못마땅해한다는 것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대뜸 ‘사랑하는데 다른 사람 의견이 뭐가 중요하냐,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맞다’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빠가 되어보니 그 후배 부모님의 입장이 헤아려졌다. 우리 딸이 그런 상황이라고 생각하니 쉽게 얘기할 수 없는 문제였다. 덩달아 백수였던 나를 무척이나 싫어한 전(前) 여자 친구 아버지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며 그분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이래서 사람은 겪어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 같다. 물론 당시에는 ‘뭐 저런 꼰대가 다 있지’라고 투덜거렸었다. 지금은 토끼 같은 딸, 호랑이 같은 아내와 잘 살고 있으니 상관없다.
한국에서 시작해 해외에 유행하는 여러 단어가 있다. K-Pop이 세계로 퍼지면서 ‘오빠(oppa)’라는 단어가 알려졌다. 2017년 비트코인 열풍이 불면서 자신이 투자한 암호화폐가 대박 나기를 기원하며 외쳤던 주문 ‘가즈아(gazua)’도 있다. 최근에는 ‘꼰대(Kkondae)’라는 말을 외국인들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영국의 BBC는 꼰대를 ‘너는 틀렸고 자신은 늘 옳다고 생각하는 기성세대’를 의미한다고 소개했다. 곰방대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을 가진 꼰대는 원래 젊은 사람들이 자신의 아버지나 선생님 등을 가리키는 속어로 사용되었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 개인의 고유 영역을 침범하려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확대되었다. 아무래도 세대갈등이 심화되고 개인주의가 보편화된 것이 원인일 것이다. 연장자나 도와주려는 사람들의 말을 무조건 잔소리로 치부하면 안 된다는 지적도 당연히 있다. 어찌 되었건 외국인들도 별 거부감 없이 사용하는 것 보면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비슷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 ‘꼰대’에 맞서는 기성세대의 무기는 인류 최고의 유행어 ‘요즘 애들 버릇없어’라고 볼 수 있다. 꼰대라는 말이 최근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하더라도 ‘요즘 애들 버릇없어’와는 비교할 수는 없다.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의 작품 「일리아드」에는 ‘고대의 장수는 돌도 뽑아 던졌지만 요즘 젊은 장수들은 둘이서도 그 돌을 들지 못한다’라는 표현이 있다. 비슷한 시기 「신들의 계보」의 저자 헤시오도스는 ‘내가 어릴 때에는 조신하게 행동하고 어른들을 존경하도록 배웠으나 지금의 청년들은 지나치게 약삭빠르고 규율을 참지 못 한다’라는 말을 했다. 이 두 사람은 기원전 8세기의 사람들이다. 이로부터 700여 년이 지난 후의 인물인, 로마 공화정의 키케로(주 : B.C. 106 ~ B.C. 43, 로마 공화정의 정치인이자 저술가. 수사학부터 법률까지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공화정을 지키려다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에게 살해된다.)는 ‘카틸리나 탄핵문(Oratio in Catilinam, BC63년 로마의 집정관이었던 키케로가 로마를 전복하려던 카틸리나를 탄핵한 연설문. 4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라틴어 최고의 고전으로 꼽힌다.)’에서 ‘오, 세태여! 오, 세습이여!(O, tempora! O, mores!)’라고 하며 현세대를 비판하였다. 13세기 사제이자 볼로냐 대학(주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구식 대학교. 이탈리아 볼로냐에 있으며 1088년 개교하였다.)의 교수였던 알바루스 펠라기우스는 ‘요즘 대학생들은 선생들 위에 서고 싶어 하고, 선생들의 가르침에 논리가 아닌 그릇된 생각들로 도전한다.’라고 요즘 애들 버릇없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한자문화권도 사정은 비슷했다. 한비자는 「한비자 오두편(五蠹篇)」 에서 ‘지금의 어리석은 젊은이들은 부모가 화를 내도 고치지 않고 동네 사람들이 욕해도 움직이지 않고 스승이 가르쳐도 변할 줄을 모른다(今有不才之子 父母怒之弗爲改 鄕人譙之弗爲動 師長敎之弗爲變)’며 화를 냈다. 조선왕조실록 숙종 한 기사(숙종 17년(1691년) 8월 10일)에는 ‘요즈음 가만히 살펴보건대, 세상이 갈수록 풍속이 쇠퇴해져서 선비의 버릇이 예전만 못하다’라는 기사가 있다.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지금과 같이 인심이 허물어진 시기는 없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이렇게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두 달 먼저 입대했던 군대 선임은 나에게 ‘우리 이등병 때는 안 그랬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아예 이런 경향을 연구한 학자들도 있다. 캐나다 워털루 대학의 심리학 교수 리처드 아이바흐(Richard Eibach)는 2009년 현재보다 과거가 살기 좋았다고 착각하는 현상인 ‘좋았던 옛날 편향(Good Old Days bias)’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살았던 이전 시대가 도덕적으로 더 훌륭하고 사회적으로 결합되어 있다고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조사해보면 현재가 과거보다 범죄율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수치상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바흐는 이러한 원인을 놓고 사람은 나이를 먹어도 자신의 관점이 바뀌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위치나 상황에 의해 바뀌게 된다는 점을 꼽았다. 예를 들면 노인들은 반사 신경이 젊은 시절보다 떨어져서 운전할 때 반응이 느려질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변화는 감안하지 않고 다른 운전자들이 운전을 험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런 ‘꼰대’라든가 ‘너는 버릇이 있니 없니’와 같은 말들을 보고 동물농장의 저자로 유명한 조지 오웰은 다음과 같은 말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모든 세대는 자기 세대가 앞선 세대보다 더 많이 알고 다음 세대보다 더 현명하다고 믿는다.”
사람들이 다른 세대들과 늘 싸운 것만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소파 방정환(1899~1931)이 있다. 방정환은 어린이들을 위한 바로 그날, ‘어린이날’을 만든 인물이다. 그리고 어린이날은 ‘애새끼’로 불리던 어린아이들이 ‘어린이’라는 귀한 말로 불리게 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1921년 방정환은 천도교 소년회를 발족하고 ‘어린이’라는 말을 보급한다. 이듬해 새싹이 돋아나는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선포하고 1923년 색동회(주 : 1923년 도쿄에서 방정환을 중심으로 창립된 한국 최초의 어린이 문화운동단체. 이들은 어린이 운동과 동화구연을 통해 어린이 권리 향상에 힘썼다) 창립과 함께 첫 번째 행사를 열게 된다. 이날의 구호는 “욕하지 말고, 때리지 말고, 부리지 말자”였다. 1937년 일제의 방해로 어린이날이 잠시 사라지게 되었지만 해방 후 1946년 5월의 첫 번째 일요일이었던 5월 5일 어린이날은 다시 부활하여 오늘까지 이어지게 된다.
엄혹했던 일제 강점기였다. 어른 자신들의 권리를 챙기기도 힘들었다. 그럼에도 방정환은 그 시절에 다음 세대를 생각했고 존중의 씨를 사회에 뿌렸다. 이런 방정환의 헌신을 바탕으로 어린이는 점차 교화의 대상에서 위함의 대상으로 바뀌어 가게 된다. 방정환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한 시대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어린이 뜻을 가볍게 보지 마십시오. 싹을 위하는 나무는 잘 커가고 싹을 짓밟는 나무는 죽어 버립니다.”
5월에는 많은 특별한 날들이 있다. 어린이날이 있고, 어버이날이 있다. 스승의 날이 있고 성년의 날, 부부의 날도 있다. 기념일을 만든다는 것은 각자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이해하자는 뜻도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서로 처해있는 위치가 다르고 상황이 다르지만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서는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세대 간 감정이 골이 깊어지고 있는 요즘이다. 이번 5월에는 자신의 의견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