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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우 Sep 29. 2020

달은 왜 하나일까

두 개의 달에 대한 이야기

‘두 번째 달’이라는 월드뮤직을 하는 밴드가 있다. 드라마 ‘아일랜드’ 나 ‘궁’의 OST에 참여하기 했고 최근에는 판소리와 결합한 퓨전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렇게만 말한다면 대부분 이들을 모르겠지만, 이 팀은 한 이온음료의 광고 배경음악인 “나나나나나나나~ 널 좋아한다고~”를 만든 사람들이다. 아마 이 노래는 다들 아시리라 생각된다. 사실 이게 중요한 것은 아니고, ‘두 번째 달’이라는 밴드명 때문에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이들은 “만약 지구에 달이 두 개가 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에서 ‘두 번째 달’ 이란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두 개의 달이 떠 있을 밤하늘은 익숙하지 않겠지만 한 번은 보고 싶은 장면이다. 이 기묘할 광경과 이들의 음악은 참 잘 어울린다.



지구와 달


언제나 떠 있는 태양과는 달리 달은 차고 기운다. 사람들은 이를 자신들의 삶, 죽음과 연관 지어서 생각했다. 달과 우주의 기운이 맞닿아 있으며 이는 생명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었다. 달이 가득 찬 보름달은 풍요의 상징으로 해석되었다. 하늘에 커다란 달이 떠 있던 대보름과 한가위에는 다산과 풍년을 기원하는 줄다리기를 하곤 했다. 한가위의 ‘한’과 대보름의 ‘대’는 모두 크다는 의미이다. 농경문화에서는 달이 여성으로 여겨져 아름다운 미인을 나타내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물론 지금 아내에게 얼굴이 보름달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추후 사태의 책임은 차마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언어의 특징 중 의미가 확장되고 변하는 것을 역사성이라고 한다는데 문화적 상징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고 있는 것 같다.



서양에서는 달에 대해 불길한 이미지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보름달에 나타난다는 늑대인간과 또 역시 보름달 밑에만 날아다니는 마녀가 대표적일 것이다. 또 동유럽에서는 익사한 여자들이 달 밑에서 춤을 추며 인어로 변해 남자들을 물에 빠뜨려 죽인다고 생각되었다. 그 외에도 기독교가 자리 잡으면서 이교(異敎)에서 숭배하던 달을 금기시하기도 하였다. 또한 달이 인간에게 정신이상을 일으킨다는 생각도 서양에서는 오래도록 받아들여졌다. 아리스토텔레스 시기부터 시작된 이 믿음은 ‘lunar(달)’라는 단어에서 ’lunatic(미치광이)’이라는 파생어를 만들게 했다. 그 외에도 프랑스어의 ‘avoir des lunes(기분이 수시로 바뀌다)’, 이탈리아어에서 ‘lunatico(변덕스러운)’이라는 단어가 있고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에게 사용되었다. 심지어 광기와 달의 상관관계에 대한 의심은 19세기까지 이어져 영국의 ‘정신병을 규정한 법(Lunacy act)’에 ‘광인(lunatic)’은 ‘달의 변화에 따라 이성을 잃었다 찾았다 하는 사람’으로 정의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보름달에는 출산율이 높다’라든지 ‘달이 쇠할 때는 출혈이 멈추지 않는다’, ‘아이들이 보름달 밤에는 흥분한다’ 등과 같은 유사과학적 속설이 이어지기도 했다. 중세시대 이야기가 아니다. 20세기까지 연구된 가설이었다. 그리고 이 같은 가정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통계자료가 눈앞에 있어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이를 믿고 있다.



걸리버여행기의 라퓨타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속에서 인류는 원래 달이 두 개였을지 모른다고 상상해 왔다. 조너선 스위프트는 『걸리버 여행기』에서 하늘에 떠올라 있는 섬인 라퓨타(La puta) 학자들의 입을 빌어 두 개의 달에 대해 이야기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 『1Q84』에서 ‘커다란 노란 달과 작고 일그러진 초록색 달’이라는 표현과 함께 달이 두 개가 떠 있는 환상의 세계를 그리기도 했다. 서태지도 「시대유감」이란 노래의 가사에서 ‘세상에 대한 전복(顚覆)’을 비유하며 ‘두 개의 달이 뜨는 날’이라고 표현했다. 하늘 위의 땅, 1984년이 아닌 1Q84년, 뒤집힌 세상, 이들 모두 달이 두 개일 곳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의 달만을 볼 수 있는 곳은 우리가 아는 우주적 규칙이 지배하는 공간이다. 만약에 달이 하나 더 떠 있다면? 이는 기존 질서가 무너진 혼돈의 세상일지 모른다. 아니, 아예 보편 질서가 생겨나지 않았을 때 일수도 있다. 신화를 사용하여 세상의 시작을 설명하려던 옛사람들은 이러한 천지창조가 이루어지기 전 카오스적 상황을 그려보며 하늘 위 두 개의 달이 떠 있는 것을 떠올렸다. 조지프 캠벨은 신화를 가리켜 ‘사회가 꾸는 집단적인 꿈’이라 정의했는데, 세계 각지 창세전(創世前) 신화에 해와 달이 여러 개 떠 있는 걸 보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에 공감한 모양이다.



에르히 메르겡(Jacob Kielhorn 작품)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지상에 사는 사람들이 너무 괴로우니 누군가 나타나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를 ‘일월조정신화(日月調定神話)’ 라고 한다. 이 신화는 동아시아 지역에 광범위하게 분포한다. 중국에서는 태양 10개를 떨어 뜨리는 ‘후예(后羿)’가 있고, 7개의 화살로 7개의 해를 쏘아 맞춘 몽골의 ‘에르히 메르겡’,  두 개의 해와 달을 하나씩 사이좋게 없애 버린 경기도 지역의 ‘선문이 후문이’도 있다. 문명이 좀 발달한 이후에도 가끔 태양과 달은 여러 개가 된다. 신라 경덕왕 때 두 개의 해는 열흘 동안 떠 있었다. 이를 해결한 것이 ‘제망매가(祭亡妹歌)’로 유명한 승려 ‘월명사(月明寺)’이고, 이때 부른 향가가 ‘도솔가(兜率歌)’이다. 이를 두고 국문학자 조현설은 해와 달을 활로 쏘는 것은 수렵민들의 전통, 쏘아 떨어 뜨는 것은 힘을 더 센 힘으로 제압하는 샤머니즘의 논리, 사수에서 승려로 영웅이 바뀐 것은 호전적 영웅이 아니라 종교적 영웅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제주의 동자상



제주에도 비슷한 신화가 존재한다. 「천지왕본풀이」(주: ‘본풀이’라는 말은 ‘신화’의 다른 의미로 생각해도 된다. 신의 근본 내력을 심방(제주에서 무당을 일컫는 말)이 굿의 형태로 풀어내는 것을 말한다)가 그것이다.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태초에 하늘과 땅이 만들어졌는데, 해와 달이 두 개여서 낮에는 너무 덥고 밤에는 너무 추웠다. 하늘의 천지왕은 이를 바로잡으라고 아들 둘을 지상으로 내려 보내니 이들이 대별왕, 소별왕이다. 원래 대별왕은 이승을 소별왕은 저승을 맡기로 했는데, 이승이 탐이 났던 소별왕은 형을 속임수로 속여서 이승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승은 해와 달이 두 개에, 온갖 야바위와 폭력이 난무하고 귀신들도 인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이를 해결할 능력이 없던 소별왕은 형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이에 대별왕과 소별왕은 활을 쏘아 해와 달을 하나씩 떨어뜨리고 귀신을 구분하는 등 적당히 세상 정리를 도와준다. 하지만 소별왕이 거짓으로 이승을 차지했기 때문에 인간 세계가 이렇듯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이렇듯「천지왕본풀이」는 우리가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기원설화라 할 수 있겠다. 따지고 보면 지금도 이승은 엉망이라고 볼 수 있는데, 해와 달이 잔뜩 떠 있을 때는 얼마나 삶이 팍팍했다는 이야기였을까. 그때보다는 나으니 차라리 현재에 만족하고 살아가라는 조상들의 적당한 타협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대별왕 덕분에 제주에는 해와 달이 하나씩만 남게 되었다.



달이 두개라고?



옛사람들이 이를 알았는지 몰랐는지 알 수 없지만 ‘원래 달이 두 개였다’는 주장도 있다. 2011년 8월에 과학잡지 네이처(Nature)에는 원래 달이 두 개였다는 주장이 실렸다. 44억 년 전쯤 지구와 한 천체의 충돌로 인해 달이 생겨날 때 하나가 더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겨우(?) 7천만 년 후에 둘이 합쳐졌다는 것이다. 달의 앞뒤가 다르고 뒷부분이 높은 산지로 이뤄진 것을 그 증거로 말하고 있다. 인간의 상상력과 과학적 발견은 종종 맞닿아 있곤 하는데 이 주장도 그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나중에 인류가 화성에 살게 되면 두 개의 달을 가진 세상에서 살게 된다. 화성은 ‘포보스(Phobos)’와 ‘데이모스(Deimos)’라는 두 개의 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일 텐데 두 개의 달이 뜨면 지구 종말이 오는 것 마냥 너무 호들갑을 떨었다. 아무튼 두 개의 달이 떠 있는 하늘을 보고 싶으신 분들은 일단 우주여행을 준비하면서 보다 건강관리를 위해 힘써야 하겠다. 그리고 그때 한가위에는 취향껏 달을 골라서 소원을 빌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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