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창조 신화 이야기
딸아이가 태어나니 모든 것이 새롭다. 숨 쉬는 것부터 잠자는 것, 밥 먹는 것과 가끔 이상한 표정을 짓는 것까지 모든 것이 신기하다. 한 생명으로부터 다른 생명이라는 존재가 생긴다는 건 정말 놀라울 뿐이다. 현대 과학이 점점 발달하면서 이런저런 생물학적 사실이 알려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생명의 탄생의 비밀이 밝혀지려면 멀었다고 하는데, 딸을 앞에 두고 나니 그 이야기가 더 가까이 다가온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나도 아직까지 이렇게 신기한데 옛사람들은 오죽했을까. 그래서인지 이런저런 신화를 만들며 이 기적을 설명하려 했다.
수메르 신화에서 인간은 ‘엔키(Enki)’에 의해 창조되었다. 엔키는 물의 신이었으며 지혜를 관장했다. 수메르에는 남무(Nammu)라는 원시 바다의 여신에게서 탄생한 네 명의 주신(主神)이 있었는데 하늘의 신인 아누(Anu), 대기와 바람의 신인 엔릴(Enlil), 물의 신인 엔키(Enki), 땅의 여신인 키(Ki)이다. 이중 엔키는 물의 신이지만 특별히 담수(淡水, 민물)를 관장했다. 수메르 지역이 바다에 인접해있어서인지 고대 수메르인들은 바다에서 모든 생명이 기인한다고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수메르 지역은 평지지역이었기에 해일이나 홍수가 일어날 경우 소금물로 도시가 아예 쓸려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민물은 수메르인들이 생명을 유지하게 해주는 생명수의 역할을 했다. 그러니 엔키가 인간을 창조했다고 믿을만하다 여겨진다. 인간이 만들어진 이유도 특이하다. 수메르의 신들은 계급이 있었는데 하급신은 이기기(igigi)라 불렸다. 이들은 신들을 위해 노역을 해야 했다. 어느 날에는 이들이 이제는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다며 연장을 부수며 파업을 선언한다. 그래서 남무와 엔키가 머리를 맞대고 이기기들을 대신할 일꾼인 인간을 창조하게 된 것이다. 내세보다 현세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수메르인들에게는 ‘신들이 인간을 사랑해서 만들었다’ 라기 보다 ‘일시키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말이 더 설득력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수메르에도 찬송가가 있었다면 ‘당신은 노동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를 불렀을 수도 있겠다.
중국 신화에서 인간은 여와(女媧)라는 여신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세상은 반고(盤古, 중국신화에서 천지를 창조한 신. 삼국시대 기록된 『삼오역기(三五歷紀)』에 처음 나타난다. 중국 남방의 신화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도 있다.)라 불리는 거인 신이 만들었지만 이 창조주는 지쳐서 쓰러지고 그 자리에 여와와 복희(伏羲)가 나타난다. 남매이자 부부였던 이 둘은 상체는 사람이었지만 하체는 뱀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림 같은 경우에 둘이 함께 똬리를 틀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아무도 없는 세상이 쓸쓸하기도 했고 심심하기도 했던 여와는 사람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처음에는 진흙으로 열심히 인간을 빚었다고 한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수작업은 끝이 없었기에 줄에 진흙을 적셔 뿌리고 끌면서 다녔다. 이 와중에 줄에서 튀겨진 흙 조각들도 사람이 된다. 다만 이 신화는 여와가 처음에 정성스럽게 만든 흙 인형은 귀족이나 부자가 되었고, 대충 흩뿌려진 부스러기들은 천민이나 가난한 사람이 되었다는 무시무시한 결과도 함께 전한다.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질 정도면 옛사람들도 요즘 이상으로 사회 불평등 현상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이렇게 만들어 낸 사람들이 멀뚱멀뚱 서로 쳐다만 보고 있자 여와는 이들을 서로 짝지어 살게 하는 결혼이란 제도도 생각해낸다. 또 남편이었던 복희도 인간에게 농사짓는 법, 목축하는 법, 불을 피우는 법, 공동체를 다스리는 제도 등을 가르쳐준다. 이런 좋은 일을 많이 해서인지 이 둘은 후에 중국 전설상의 임금들인 삼황오제(三皇五帝) 안에 꼽히기도 한다. 또 이러한 흙으로 사람을 만들어 내는 방식은 흙으로 아담을 만든 그리스도교에 창세신화나 돌을 던져 인간을 만든 그리스 데우칼리온(Deucalion,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의 아들로 등장한다. 제우스의 대홍수 때 사촌동생이자 아내인 피라와 둘만 살아남는다. 이에 신탁을 구하자 어머니의 뼈를 어깨 뒤로 던지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어머니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이며 뼈는 돌을 상징한다는 것을 알아채고 돌을 뒤로 던져 현생 인류를 만들어낸다.) 신화와도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지금의 멕시코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던 아즈텍(14세기부터 16세기까지 멕시코 고원에서 번영한 문명. 신석기 수준의 도구문명을 가지고 있었으나 옥수수를 바탕으로 하여 천문학, 역법, 건축술 등을 발전시킨다. 1520년 스페인의 정복자 코르테스에 의해 멸망한다) 에서는 오메테오틀(Ometeotl)이라는 신이 사람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테오틀(teotl)이라는 말은 ‘신’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자연 원리’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 오메테오틀은 어떠한 인격신이라기보다는 ‘우주의 작동원리’라는 개념에 더 가깝다고 봐야 한다. 오메테오틀은 ‘이중성의 신’이라는 뜻인데 남자이자 여자이고, 삶이자 죽음이고, 창조이자 소멸, 빛이자 어둠이었다고 한다. 아즈텍인들은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 인신공양을 했다. 죽음을 통해 삶을 연장하려는 이러한 모순적인 행동은 이런 이중적 개념에서 나왔다고 보인다. 이런 연장선에서 보면 아즈텍 신화에서는 세상이 창조되고 인류가 만들어진 다음 멸망되고 또 인류가 만들어지는 순환적인 행태가 계속 등장하는 것도 살필 수 있다.
현 인류 역시 전시대의 인류가 사라지고 다시 재건된 집단들인 것이다. 뱀과 지혜, 비와 농경의 신인 케찰코아틀(Quetzalcóatl)이 현 인류를 만들었다. 세상이 파괴된 후 생명도 관장하던 케찰코아틀은 인간을 다시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케찰코아틀은 사라진 인간들의 뼈를 찾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간다. 죽음과 저승의 신 믹틀란테쿠틀리(Mictlantecuhtli)는 인간의 뼈를 주는 척하다 케찰코아틀을 함정에 빠뜨린다. 하지만 우리의 케찰코아틀은 슬기롭게 위기를 해쳐 나오지만 한 번 넘어져서 인간의 뼈를 부스러뜨렸다. 이 부스러진 뼈들의 조각은 각기 달랐기에 이를 기반으로 만든 현 인류의 체형은 다 다르다는 것이 이 신화에서 전하는 말이다.
이렇게 세계 각지의 인류 창조 신화에 대해 살짝 살펴보았다. 나중에 아이가 부모에게 아기는 어디서 오냐는 질문을 할 때 “아빠와 엄마가 사랑해서~” 이렇게 혹은 “황새가 물어다 줬어”라고 대꾸 할 수 있겠지만 가끔은 “멕시코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어”라고 하는 대답도 재미있고 유익하지 않을까 싶다. 여하간 사람이 생겨나 태어나는 것은 너무 신기한 일이다.
월간 제주교육 10월호에 동시 연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