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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우 Dec 12. 2019

태양이 돌아왔다

동지와 크리스마스 이야기

어릴 적에 다니던 교회에서 크리스마스는 큰 축제였다. 그리스도교 계열에서는 예수가 다시 살아난 ‘부활절’과 아기 예수가 태어난 것을 기념하는 ‘성탄절’ 즉 크리스마스를 양대 명절로 기념했다. 나로서는 삶은 달걀이나 주는 부활절보다는 선물도 주고 이런저런 재미있는 이벤트도 많은 크리스마스가 더 좋았다. 이렇게 눈도 오고 좋은 날 예수님이 태어나셨다니 더 감동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크리스마스와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날과는 전혀 관계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 날은 예수가 태어난 것이 아니고 예수가 세상에 왔음을 ‘기념’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나와 친구들은 모두 충격에 빠졌다. 어린 마음에 상처를 입고 교회가 자기를 속였다며 변절(?)했던 아이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일 아니지만 교회에서 하는 말이라면 철석같이 믿던 어린아이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던 사실이었던 것 같다.




아우렐리아누스 황제(214~275, 재위 270~275)


크리스마스가 왜 12월 25일이냐에 대해서 많은 이견이 있다. 가장 유력한 설은 서기 274년 로마 황제 아우렐리아누스(214~275, 재위 270~275)가 지정한 ‘무적의 태양탄신일(Dies Natalis Solis Invicti)’ 축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다. 고대 세계에는 태양신에 대한 숭배가 곳곳에 존재했다. 이집트의 ‘라(Ra)’, 그리스의 ‘아폴론(Apollon)’, 소아시아의 ‘헬리오스(Helios)’ 등등이다. 개중 후대에 유명했던 신은 이란에서 기원한 ‘미트라(Mithra)’이다. 미트라는 계약, 태양, 전쟁 등을 관장했다. 미트라는 조로아스터교에서 숭배하던 선신(善神)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h)’의 아들로 여겨진다. 조로아스터교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선과 악의 대립이 주요 교리였고, 신자들은 선신의 아들 미트라가 앞장서서 악마들과 전쟁을 벌인다고 생각했다. 여기에서 무언가 폼 나는 ‘전쟁의 신’ 이미지가 강해지며 미트라교가 아예 생겨버리게 된 것이다. 그렇게 보면 하고많은 날 전쟁을 벌였던 로마제국의 군인들이 미트라를 섬겼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제국 중반기가 넘어가면 군인 황제 시대가 열리는데, 이때는 ‘무적의 태양신(Sol Invictus)’이라 하여 로마화 된 태양신도 등장한다.


무적의 태양신(Sol Invictus)


역시 군인 황제였던 아우렐리아누스는 스스로를 태양신과 동일시했다. 나아가 이 태양신의 탄신일을 12월 25일로 지정하여 태양이 다시 되살아나고 만물이 소생한다는 축제를 벌였다. 안타깝게도 아우렐리아누스는 태양신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는지 무적태양절을 한 번밖에 지켜보지 못한다. 이듬해 9월에 원정을 떠났다가 앙심을 품은 측근에게 살해되어 버린다. 그리고 주인 잃은 이 태양절을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272~337, 재위 306~337)가 예수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날로 지정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완전한 사실은 아니고 가장 유력한 가설이며 아직도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이견이 분분하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고대 유대인들은 해가 지는 것을 하루가 저문 기점으로 삼았다. 또 다른 날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이브인 12월 24일 저녁부터 성탄절이 시작된 것으로 생각했다. 오늘날 천주교는 토요일 저녁에도 미사를 드리는데, 이런 관념의 연장선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와일드 헌트


게르만족들은 이 12월 25일 부근에 동지를 기념하는 축제를 벌였다. 명칭은 ‘율(Yule, Yuletide)’이라 불렀다. 독일, 스칸디나비아, 아일랜드 등의 지역에서는 한겨울에 초자연적인 존재(신, 귀신, 요정, 망령 등)들이 행진을 벌인다고 생각하며, 이들을 ‘와일드 헌트(The Wild Hunt)’라 불렀다. 우리식으로 생각하면 백귀야행(百鬼夜行)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들은 게르만족들의 조상들로서 내년의 농사에 축복을 내린다고도 생각되었고, 그리스도교 전래 이후에는 악마들의 행진으로도 여겨졌다. 그리고 게르만족들은 어두움, 영(靈)적 존재의 시간이었던 때가 가고 태양이 살아나고 빛이 되돌아오는 12월 25일 동지 부근에 12일 동안의 축제를 벌인 것이다. 


율축제를 재현하는 사람들

서양인들이 매년 먹는 크리스마스 햄은 ‘율’ 축제에서 먹던 멧돼지 요리에서 비롯되었고, 또 프랑스의 크리스마스 음식인 통나무 모양 케이크 역시 액운을 막기 위해 통나무를 태우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크리스마스 새벽에 돌아다니면서 캐럴을 부르는 풍습 역시 ‘율’ 축제에서 비롯되었다. 12일의 축제가 끝나는 날(1월 5일이나 6일) 농민들은 영주나 이웃에게 가서 풍년을 기원하며 노래를 불렀다고 하며 이를 ‘Wassailing’라 불렀다. 현대 천주교 전례력에서도 1월 6일은 ‘주현절(Epiphany)’이라 하여 동방 박사들의 방문을 받은 날을 기념하는데, 이 ‘율’ 축제와 연관 짓는 학자들도 있다.  




애동지에 먹는 팥시루떡(인터넷 이미지)


한자 문화권의 「역경(易經)」에서는 동지를 ‘일양시생(一陽始生)’이라 하여 양기가 솟아나 생명이 시작되는 날이라 여겨 한 해의 시작일로 삼았다. 중국 역법에서 한 해는 동지에서 동지까지였기에 동지를 계산하는 것은 중요하게 여겨졌다. 우리 민속에서는 동지를 ‘아세(亞歲)’즉 작은설이라 하여 기념했다. 동지는 양력으로 12월 21일~22일이지만 음력으로는 매년 달랐다. 다만 음력 11월에는 꼭 들기 때문에 음력 11월을 동짓달이라고도 불렀다. 11월 초순(1일~10일)에 동지가 들면 ‘애동지’라 하여 팥죽 대신에 팥 시루떡을 해 먹었다. 애동지는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고 여겨졌다. 아이들을 보살피는 삼신할머니가 팥죽 때문에 아이들 가까이 가지 못한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보통 동짓날에 양기가 솟으니 머리가 맑아진다 하여 서당에 입학하고는 했는데 아이들 입장에서는 개강이 빠르니 당연히 애동지는 좋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아프다는 아이들이 속출했을 테니 애동지에 아이들 건강이 좋지 않다 여겨질 수밖에. 이에 반해 11월 하순(20일~말일)에 동지면 ‘노동지’라 하여 노인들에게 좋다는 속설이 있었다. 이는 동지부터 나이를 세는 풍습 때문인데 동지가 늦으면 그만큼 나이를 늦게 먹기 때문이었다. 팥죽을 먹는 이유는 음(陰)의 기운이 극에 달하는 동짓날에 양(陽)의 기운이 필요하다고 여겨서였다. 태양, 불, 피 등의 붉은색은 생명과 힘의 표식으로 양의 기운을 상징하고 있었다. 이런 믿음으로 팥죽을 먹은 것이다. 그래서 개업을 하거나 새 집에 이사했을 때도 역시 액운을 쫓기 위해 붉은색의 시루떡을 하곤 한다.   



이상으로 12월 태양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았다. 중요한 것은 12월에는 모든 음식을 이웃과 나누어먹었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겨울이 와서 견디기 힘든 시간이니 다 함께 힘을 모아 이겨내자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우리도 가까운 분들에게 안부를 전하며 식사도 같이 하며 겨울을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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