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가수스 이야기
강원도 화천 산골짜기에서 군 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여느 산속이 다 그렇겠지만 밤에 초병 근무를 나가면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쳐다볼 것은 하늘뿐 이었다. 상대 근무자와 떠들다가 지치면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하는 마냥 서로 말없이 밤하늘의 별 이나 새는 것이 일상이었다. 어느 날은 한 선임병과 근무를 나갔다. 다름없이 그날도 하늘이나 쳐다보며 저 달이 상현달인지 하현달인지 헷갈려 하고 있는데 갑자기 선임병이 자기는 하늘에서 네모만 찾는다는 이상한 말을 했다. 당연히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들었다. 알고 보니 가을이 오면 네 개의 별이 연결된 사각형 하나가 떠오를 거라고 했다. 그리고 그 별들이 나타나면 자기는 집에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별들은 네모난 모양을 만들었고 며칠 뒤 그 선임은 제대했다. 나도 전역이 가을이었던지라 후임병에게 똑같은 소리를 하며 그 네모를 다시금 기다렸다. 다만 그 해에는 사각 별자리가 늦여름부터 눈에 띄어 나는 한동안 그 별들을 보며 씩씩거리다 집에 가야 했다.
그 네모 별들의 정체는 페가수스자리의 별들로 ‘페가수스 사각형(the square of Pegasus)’ 혹은 ‘가을의 대사각형’이라 불린다. 봄, 여름, 겨울의 별들은 대표적인 ‘삼각형’이 있는 반면에 가을은 넉넉한 계절이라 그런지 몰라도 하나 더 붙어 사각형이라고 한다. 페가수스는 잘 알려졌다시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하늘을 나는 말의 이름이다. 페가수스는 페르세우스(Perseus)가 메두사(Medūsa, ‘여왕’이라는 뜻. 원래 괴물이었다는 판본과 미녀였는데 아테네에 의해 추하게 바뀌었다는 판본이 공존한다)라는 괴물의 목을 벨 때 뿜어져 나온 피거품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한때 메두사가 괴물로 변하기 전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연인이었다고도 하는데, 포세이돈이 바다뿐 아니라 말도 관장했다는 것을 보면 페가수스가 난데없이 나온 것은 아닌 것 같다.
영웅이 된 페르세우스는 페가수스를 타고 하늘을 날아가 에티오피아(고대에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를 가리키는 통칭. 현재의 에티오피아와는 다르며 국명을 저 의미에서 차용했다)의 공주 안드로메다(Andromeda)를 바다 고래에게서 구한다. 안드로메다는 에티오피아의 왕 케페우스와 왕비 카시오페이아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허영심이 강했던 카시오페이아가 자기 모녀는 바다의 요정 네레이데스(Nereides)들 보다 아름답다고 입방정을 떨자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화가 나서 안드로메다를 제물로 바치지 않으면 나라를 멸망시키겠다고 한때였다. 이에 안드로메다는 졸지에 바닷가에 묶여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페르세우스가 구해준 것이다. 사실 페르세우스는 제우스의 아들이었으니(아르고스의 왕 아크리시우스의 딸 다나에와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제우스는 황금비로 변하여 탑속에 갖혀있던 다나에에게 접근했다고 한다.) 포세이돈에게는 조카가 되었다. 그러니 뭐 별말 없이 넘어갈 수밖에. 후에 금수저 페르세우스의 덕인지 모르겠지만 안드로메다를 비롯하여 케페우스와 카시오페이아도 밤하늘의 별이 된다. 다만 카시오페이아는 거꾸로 매달린 의자에 앉은 자세(알파펫 W모양)를 한 채 1년 내내 하늘에 떠서 바다에 절을 해야 하는 벌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가끔 카시오페이아자리는 수평선에 걸쳐져 머리 부분이 물속에 잠기기도 한다.
아르고스의 왕이 되어 천수를 누린 페르세우스와는 달리 페가수스는 또 다른 영웅 벨레로폰(Bellerophon)과 함께 모험을 다시 떠난다. 키메라(Chimaera)라는 불을 뿜는 괴물이 사람들을 괴롭히자, 지혜의 여신 아테네(Athene)가 벨레로폰에게 올림푸스에서 제우스의 벼락이나 나르고 있던 페가수스를 내려준 것이다. 천마를 타고 괴물을 무찌른 것 까지는 좋았지만 벨레로폰은 교만해져 버린다. 페가수스를 타고 신들에게 도전한 것이다. 항상 선을 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제우스는 번개를 던져 벨레로폰을 떨어뜨려 버리는데, 벨레로폰이 죽었다는 설도 있고 땅에 떨어져 장님, 절름발이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죄 없는 페가수스는 하늘로 올려져서 별이 되는데 이 사달의 여파인지 별자리에서는 상반신만 찾아볼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가을의 대사각형’의 별들은 이 페가수스의 별인데, 특이한 점은 네 개의 별 중 가장 밝은 별 하나를 안드로메다자리와 공유한다는 점이다. 이별은 안드로메다자리 알파(α Andromedae)라 불리고, 알페라츠(Alpheratz) 또는 시라흐(Sirrah)라고 불리기도 한다. 어원은 아랍어로 ‘말의 배꼽’이라는 뜻이다. 한자문화권에서도 천고마비(天高馬肥)라는 사자성어가 있는 것처럼 서구에서도 가을에 보이던 별자리에 말에 대한 의미가 담겨 있다니 신기한 일이다.
한국에서 페가수스자리는 북방 현무 자리에서 실수(室宿)의 실(室), 벽수(壁宿)의 벽(壁)과 일치한다. 한자문화권에서는 별자리를 3원 28수로 분류했다. 3원은 옥황상제가 살고 있다 하여 태미원, 자미원, 천시원이라 불렀다(태미원은 은하의 북극(처녀자리, 사자자리), 자미원은 지구의 북극(북극성), 천시원은 우리 은하의 중심(은하수)를 가리켰다. 각각 자미원은 국왕, 태미원은 신료와 조정, 천시원은 백성과 도성을 상징한다). 이 별들은 1년 내내 떠 있는 북극성을 위시한 별들을 가리켰다. 또한 28수는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시간을 상징하여 사방신인 청룡, 백호, 주작, 현무가 별 7개씩을 맡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서양의 별자리는 태양이 중심, 즉 태양이 가는 자리인 황도(黃道, ecliptic) 12궁(zodiac)을 중심으로 성립된 반면에 한자문화권에서는 북극성과 적도를 축으로 하는 세계관이 있었기에 이런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황도를 중심으로 한다고 꼭 12궁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었다. 마야의 경우 황도를 20궁으로 분류하기도 했다(그래서 마야력은 1년이 18개월로 구성되어있다). 아무튼 우리 식 페가수스자리인 실수의 실은 집, 창고, 토목공사를 상징했고 벽의 벽수는 하늘의 도서관을 상징했다고 한다. 집과 도서관이라니. 선선한 가을에는 집이나 카페에서 독서를 하란 뜻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 두 자리의 별이 만나 한참 전의 필자가 기다렸던 ‘가을의 대사각형’을 만드는 것이다. 물론 그때는 이런 의미는 모르고 집에나 빨리 가고 싶었다.
가을이 깊어져 간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김에 가을에 뜨는 페가수스자리에 대한 이야기도 살짝 살펴보았다. 말도 나오고 독서도 나오는 것을 보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계절이 바뀌면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비슷한 모양이다. 독자들께서도 가끔은 하늘의 네모 별자리를 찾아보시며 삶의 여유를 찾으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