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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우 Jul 06. 2020

하늘에서 비가 내려와

대홍수 이야기

날짜도 기억난다. 2011년 7월 27일이었다. 새벽부터 폭우가 내렸다. 나는 군인이었다. 휴가 날이었다. 부대는 화천에 있었다. 화천 남쪽의 춘천에는 밤새 비로 사고가 속출했다. 휴가 출발 신고를 하려는 시간은 아침 7시. 출발이 30분만 지체돼도 사단본부 아침 회의에서 당일 휴가 통제를 내릴 상황이었다. 당직사령은 나에게 ‘오늘 꼭 가야 되냐? 내일 가는 건 어때?’라고 말했다. 이런 날 가면 하루 날린다고도 했다. 하지만 마음 좋던 그는 사병에게 휴가란 군생활의 전부인걸 알아서 인지 강하게 이야기하지는 못했다. 나는 가겠다 했다. 폭우 속 휴가 출발이라니 왠지 낭만적이기도 했다.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위병소를 향해 달려 나갔다. 그날 서울에는 500mm가 넘는 비가 내렸다. 그리고 나는 4시간이면 갈 길을 교통이 모조리 끊겨버린 관계로 돌고 돌아 열두 시간 만에 도착했다. 그냥 당직사령 말을 들을 걸 그랬다. 나 같은 애들 한두 명 봤을까.



비가 많이 오면 홍수가 난다. 당연한 일이다. 오늘날에도 종종 난리가 나는 마당에 옛사람들에게 홍수는 크나큰 골칫거리였다. 대홍수라도 나면 생존이 걸린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세계 곳곳에 대홍수 전설을 가지지 않은 지역이 없다. 공동체가 겪었던 존망의 문제는 이런저런 각색을 거쳐 후대로 전해 내려왔다. 전래동화로, 때로는 전설로, 가끔은 신화가 되었다. 홍수 극복의 의지는 종교의 영역으로 승화되기도 했다.


키가 큰 마사이족들


아프리카의 마사이족(주: 아프리카 동부 케냐와 탄자니아 경계에 사는 부족. 큰 키를 지녔으며 주로 목축을 하며 살아간다)에게는 이런 홍수 이야기가 전해온다. 툼바이놋(Tumbainot)이라는 신이 보기에 의로운 사람이 살았다. 그는 두 명의 아내와 여섯 명의 아들이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나쁜 짓을 일삼자 신은 인간을 멸망시키기로 하고 툼바이놋에게 큰 배를 만들라고 한다. 그리고 그 배에 동물들과 식물 종자들을 태우라고 명령한다. 배가 완성되고 툼바이놋과 그 가족, 동물 커플들과 식물 씨앗들이 타자 신은 큰 비를 내려 홍수를 일으켰다.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고 툼바이놋의 배는 정처 없이 떠돌았다. 시간이 지나고 툼바이놋은 비둘기와 독수리를 보내 세상에 물이 빠졌는지를 알아봤다. 마침내 땅이 나타나자 툼바이놋은 배에서 내려 새로운 인류의 시조가 된다. 신은 동서남북에 무지개를 네 개 띄워 자신의 분노가 이제 풀렸음을 알려주었다.


노아의 방주를 새긴 모자이크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아닌가? 바로 그리스도교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와 유사하다. 이런 류는 다른 지역에도 존재한다. 알타이 지방의 나마(Nama) 신화, 하와이의 누우(Nuu) 신화, 그리고 이런 모든 배 타고 홍수 피하는 원전 격인 바빌로니아 길가메시 서사시(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바빌로니아의 서사시. 난폭한 영웅 길가메시가 죽지 않는 방법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의 우트나피시팀(Utnapishtim) 등이 있다. 중앙아메리카나 호주 지역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대체로 구조는 비슷하다. 착한 사람이 있고, 신은 화가 났고, 다 죽일 수는 없으니 의인에게 배를 만들라고 하고, 큰 비가 와서 홍수가 났으며, 한참이 지난 후 새 여러 마리를 날려보고, 땅에 다시 발을 디디게 된 의인의 가족은 신에게 감사한 다음 신인류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종종 신이 기분 좋으면 무지개와 같은 용서의 징표를 보여주기도 한다. 다만 하와이나 마사이족, 호주의 홍수 이야기는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도 있다. 일례로 신데렐라 이야기의 경우 아프리카에 존재하지 않았는데 그리스도교가 전파된 이후 그 지역 풍으로 각색이 되었다는 연구가 있음을 볼 때 아예 근거가 없는 의견은 아닌 것 같다.


길가메시 서사시가 적힌 점토판


인도의 마누(Manu)와 같이 우연한 선행으로 말미암아 대홍수에서 살아남기도 한다. 마누는 어느 날 손을 씻고 있었는데 힌두교 정의의 신 비슈누(Vishnu)의 화신(Avatara, 아바타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상에 내려온 신들의 분신을 뜻한다. 비슈누는 물고기 말고도 거북이, 멧돼지, 사람 등으로 세상에 내려온다)인 물고기 마츠야(Matsya)를 만나게 된다. 물고기는 자기를 살려주면 장차 닥칠 홍수의 재앙에서 너를 살려주겠다고 한다. 생선과 거래를 한 마누는 마츠야의 말대로 배를 만든다. 마누는 점점 커진 물고기의 뿔에 배를 매달고 대홍수 속에서 히말라야 산맥에 올라 살아남을 수 있었다. 혼자 남은 마누가 신에게 감사를 하자 ‘이다’라는 여성이 어디선가 나타났고, 이들이 부부로 연결되어 인류는 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비슈누의 화신 마츠야


그래도 지금까지 이야기는 인류의 뿌리가 근친상간은 아니라는 점에서 나름 윤리적이다. 다음 대에는 근친혼이지 않느냐 라고 할 수 있지만 일단 그것은 넘어가자. 문제는 남매끼리 살아남은 동네도 꽤나 많다. 중국의 소수민족 묘족(苗族, 중국어로는 마오족으로 읽는다. 중국 남부, 베트남, 라오스 등지에 살고 있으며 중국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민족이다)도 홍수가 일어나자 남매만이 살아남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둘만이 살아남아 머뭇머뭇하고 있자 옆에 있던 대나무가 너희끼리 혼인해서 자식을 낳아야 한다고 말한다. 선뜻 내키지 않아 남매는 맷돌을 두 산에서 굴려 신의 뜻을 묻기로 한다. 쪼갠 맷돌을 양쪽에서 굴리자 밑에서 맷돌이 딱 붙어버렸다. 그러자 남매는 이들의 결합이 하늘의 의지라는 것을 알고 부부가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묘족 말고도 중국 소수민족들과 복희와 여와의 중국 신화, 그리고 우리나라에 까지 퍼져있다. 전라도의 한 설화는 맷돌 말고도, 연기를 피워서 그것이 뒤섞이고, 물에다가 피를 섞어도 엉키는 삼세번의 검증을 하고서야 배필의 연을 맺게 되었다. 신화학자 조현설은 신이 이미 창조한 인간을 멸망시키는 비합리를 저질렀기 때문에 근친혼이라는 금기도 깨졌다고 해석한다. 재미있는 반대 이야기도 있다.  중국 남부의 이족(彝族)은 남매끼리 근친상간을 저질렀기 때문에 하늘이 노하여 홍수가 일어났다고도 다. 아무튼 이러한 홍수 이야기들은 불완전한 세상에게는 멸망 후 재탄생과 같은 순환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암시를 하고 있기도 하다. 겨울이 지나면 죽었던 꽃이 다시 피고, 사람 역시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태어나는 것에 대한 커다란 은유일 수 있겠다.



전통의상을 입은 묘족


태국과 라오스 지방에는 따이족(Tai)의 쿤 보롬(Khun Borom) 신화가 있다. 옛날 옛날에 이 곳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 역시나 사방에는 나쁜 인간들 투성이었다고 한다. 신이 착한 사람들을 쓸어버리면 이야기가 이상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신은 못된 인류에 대한 징벌로 홍수를 내렸다. 그리고 쿤 칸, 쿤 캑, 쿤 푸 랑 송이라는 선한 세 지도자만이 살아남는다. 특이한 것은 다른 곳의 생존자들은 배를 타거나, 산 위에서 물 빠지기를 기다리는 데 비해 이들은 신과 함께 하늘나라에 있었다는 점이다. 신은 땅으로 돌아가는 셋에게 물소를 한 마리 붙여준다. 이들은 지금의 베트남 디엔비엔푸(주: 베트남 북부의 도시. 프랑스군과 베트남군의 디엔비엔푸 전투(1953)로 유명하다. 프랑스는 이 전투의 패배로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영향력을 상실한다)에 정착한다. 물소는 몇 년간 땅을 갈아주더니 하늘로 돌아가려고 숨을 거둔다. 죽은 물소의 코에서 각종 곡식의 종자들, 동물들과 밝은 피부, 검은 피부의 사람들이 나온다. 밝은 이들은 따이족, 라오족 등이고 검은 이들은 ‘카’(Kha, 노예라는 뜻)로 불리는 지역 원주민인 말레이시아인들을 가리킨다. 아무래도 따이족은 정복 민족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런 신화가 생겨난 것 같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대홍수가 나서 인간들이 전멸하고, 살아남은 데우칼리온(Deucalion)과 그 아내 퓌라는 돌을 던져 사람을 만들었다. 이에 반해 태국에서는 소에서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이를 통해 볼 때 소를 이용한 농경이 시작된 이후 만들어진 이야기일 수 있겠다. 참고로 데우칼리온은 노아처럼 홍수 때 방주도 탔다. 아무튼 동남아시아에 사람들이 다시 북적거리자 신은 인간들에게 예의를 가르치려고 자신의 아들 ‘쿤 보롬’을 내려보낸다. 쿤 보롬은 동남아를 다스리면서 각 종족들의 살림을 윤택하게 해 주고, 훗날 자신의 일곱 아들에게 땅을 나눠주어 통치하게 했다. 그래서 현재 따이족, 라오족 등은 쿤 보롬의 공통의 조상으로 여기고 있다.


쿤 보롬의 후손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축제


이상에서 홍수 이야기들을 잠깐이나마 살펴보았다. 사실 이것 외에 무궁무진한 홍수 이야기들이 세계에 존재한다. 신화 입문서부터 학술적인 분석까지 이것저것 많이 진행되어 있으니 관심 있으면 한 번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비가 오는 날 실내에서 온 세상에 물이 넘쳐흘렀던 이야기를 읽는 것은 여름날의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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