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분노를 느끼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인간이 분노를 느끼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남편이 나를 무시한다. 나를 함부로 취급한다.’ ‘회사에서 나의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나에게 맞지 않는 부서로 발령이 났는데 이건 회사가 나를 무시하는 처사다.’ ‘직장 상사가 나에게 이것밖에 못 하느냐고, 할 줄 아는 게 뭐냐고 무시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자존감에 심한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분노를 느끼는 겁니다.
생존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신의 바운더리에 누군가가 침범해오면 공격해서 쫓아내야 한다고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이지요. 내 결혼생활에 다른 이성이 침범한 경우, 직장 동료가 내 일을 가로챈 경우, 사회에서 다른 사람이 내 자리를 차지한 경우부터 작게는 줄 서서 기다리는데 누군가 새치기를 하는 경우까지 폭넓게 해당합니다.
이것은 원칙과 당위, 옳고 그름의 경계가 무너졌을 때 느끼는 분노입니다. 이것은 사회적인 이슈와도 관련됩니다. 원칙에 따라 일을 하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사회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이런 종류의 분노를 더 자주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면 분노는 더 커집니다.
분노는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분노를 느끼는 것은 자신의 영혼이 상처받았다는 의미입니다.
타인과 세상에 대해 실망을 느꼈다는 뜻입니다. 무조건 덮어두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화를 억지로 눌러서 생기는 게 화병입니다. 억울하고 분해도 아프다고 소리치거나 “나에게 더 이상 상처 주지 마!”라며 스스로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분노가 생깁니다. 시어머니에게 구박받고 남편에게 무시당하면서 살아온 중년 여성이 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가슴이 답답하다. 속에서 불덩이가 치밀어오른다. 소화가 안 된다. 머리가 깨질 것 같다’는 증상을 호소합니다. 감정이 몸속에서 탈을 일으킨 것이지요. 나중에는 마음을 까맣게 태워서 우울증이 됩니다.
‘지금 느끼는 분노가 정당한가?’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정당한 분노라면 밖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모멸감을 느끼고 부당한 이유로 자존감에 상처 입고 고유한 자기 권리를 침해당했다면 화를 내서 자기 정체성을 지켜야 합니다. 이런 분노는 생존에 도움이 되는 적응적 감정입니다. 적응적 분노는 참아서는 안 됩니다. 고함을 지르며 표출하는 게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해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 성질나서 미쳐버리겠네!”가 아니라 “당신 잘못으로 너무 화가 납니다”라고 자기 느낌을 언어화합니다. 그러고 나서 원하는 것을 묶어서 알려줍니다. 나에게 사과했으면 좋겠다고, ‘나’를 주어로 해서 나의 느낌과 욕구를 표현합니다. 만약 자기 분노를 감당하기 어렵다면 화내는 것을 잠시 미뤄두겠다고 마음먹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정당한 분노를 억지로 참으려면 잘되지 않을뿐더러 ‘내 잘못도 아닌데 왜 참아야 하느냐!’라는 생각 때문에 분노가 더 커집니다. 이럴 때는 ‘10분만 미뤄두었다가 나중에 실컷 화를 내겠다’라고 여기면 감정을 조절하기도 쉽고 그사이에 분노의 강도도 약해집니다. 분노라고 해서 다 같은 감정이 아닙니다.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는 분노 감정을 세밀하게 해석하고 상황에 맞춰 활용할수 있어야 합니다.
적응적 분노는 현실세계에서 자기 목표를 이룰 수 있게 해줍니다.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게 해줍니다. 분노의 고유한 기능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감정에 지배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내 안에 수용하고 자기 감각 속에 통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당하지 않은 비적응적인 분노도 있습니다. 화가 나지 않아야 하는 상황에서 분노를 느끼는 것이죠. 수단적 분노가 그중 하나입니다. 대인관계에서 감정을 수단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이렇게 부릅니다. 분노로 타인을 지배하고 통제하려 드는 것입니다. 화를 내면 일시적으로 내가 당신보다 우월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감정적인 착각에 불과한데도 이것이 강화되면 도덕적으로도 우위에 있다는 환상에 젖습니다. 분노를 타인에게 쏟아내고는 짜릿한 쾌감을 느끼죠. 이런 분노는 금방 중독됩니다. 나중에는 사소한 일에도 분노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버릇이 튀어나옵니다. 이렇게 분노가 습관화되면 타인과의 정상적인 감정 교류가 차단됩니다.
수단적 분노는 내면에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정서가 아닙니다.
나에게 유리한 상황을 억지로 구성하기 위해 내가 조작한 감정에 불과합니다. 이른바 ‘갑질’이 대표적입니다. 힘과 권력을 가진 이가 감정적으로 타인을 지배하려고 할 때 갑질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회피로서의 분노도 있습니다. 진짜 감정을 분노로 덮어버리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어른들에게 “약해지면 안 돼, 강해져야 해”라고 교육받아온 사람은 눈물 흘리고 싶고 의지하고 싶을 때도 강해져야 한다는 믿음 때문에 위로받고 싶은 욕구를 회피합니다. 불안과 우울을 고통스럽게 느끼고 이런 감정들을 분노로 감춥니다. 중년 남자가 우울증에 걸렸을 때 사소한 일에 짜증이 늘고 분노를 폭발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정서적 위안이 필요한데도 오히려 주변 사람에게 버럭버럭 화를 내서 멀어지게 만들고 더 깊은 외로움에 빠지고 맙니다. 자기감정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스스로 외면해버립니다. 슬퍼하기를 두려워해서는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콤플렉스와 약점을 방어하기 위한 분노도 있습니다. 분노조절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보면, 뿌리 깊은 열등감과 자기혐오를 갖고 있습니다. 자기 문제를 타인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분노를 활용해 강한 척, 센 척합니다. 열등감이 큰 사람일수록 타인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과잉 반응합니다. 웃자고 한 농담에 욱하고 달려듭니다. 이런 사람은 분노조절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됩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어야 분노조절 장애도 해결됩니다.
마흔의 문제에는 선명한 해법이나 단순한 원리가 없습니다. 타인이 거쳐간 길은 그것이 아무리 좋고 옳아 보여도 절대로 내것이 될 수 없으니까요. 마흔의 마음 공부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길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마음 공부가 필요할까요?
바로, 마음 공부의 핵심은 상실의 고통을 끌어안고 전환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곧 마흔이 되는 서른에게, 동시에 마음은 아직도 서른에 머물러 있는 마흔을 위한 이야기를 글에 담아두었습니다.
마흔의 길목, 없어질 것만 보지 마세요.
당신에게 아직 남아 있는 소중한 것이 더 많으니까요.
- <마흔, 마음 공부를 시작했다> 읽어보기 > http://bit.ly/2OoRcV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