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이 약해지는 몇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원래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이었던 사람도 마흔이 넘으면서 어느 순간 자신감도 없어지고 사람들이 두려워진다고 합니다. 회의시간에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휘어잡을 만큼 당당했던 사람이 요즘 들어 발표할 일이 있으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해진다며 안정제라도 처방해달라고 병원을 찾아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평소에 잘하던 일조차 계속해낼 자신감이 점점 떨어져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것은 엄두도 못 내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며 한숨을 내쉽니다. 친구를 만나도 자기 모습과 비교해보며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뭐 했나’라는 생각에 위축되기 일쑤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데 도 요즘 들어 아내와 자녀들에게 ‘나는 좋은 아빠가 아닌 것 같아’라며 자신을 비난합니다.
나이가 드니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오랜 사회생활의 경험을 토대로 정신력이 가장 강할 때가 중년인데 자신감이 떨어질 이유가 뭐 있느냐며 의문을 갖는 사람도 많습니다. 실제로 중년기에 더 활기차고 자신감 있게 살아가는 이가 있는 반면 별다른 이유 없이 자신감이 떨어진다며 당황해하는 이도 있습니다. 무슨 안 좋은 일이 있거나 크게 실패한 것도 아닌데 중년이 되니 마음이 약해졌다고 하면서요. 몇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아무리 튼튼하고 성숙한 사람이라도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감은 마음의 문제인데 신체적 활력이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나 느끼는 일이지만 몸이 아프면 의욕이 떨어지죠. 질병이 있으면 쉽게 우울해지고 실제로 우울증도 잘 생깁니다. 다리를 다치거나 관절이 아파서 활동을 오래 못 하게 되었을 때 우울증이 발생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체력이나 신체적 건강은 심리적 자신감의 토대입니다. 인간은 심리적 상태보다 몸의 상태를 평가한 뒤 그것을 근거 삼아 자기 능력을 평가합니다. 쉽게 피로해지고 통증을 자주 느낀다면 우리 뇌는 ‘아, 내가 약해졌구나’라는 신호로 받아들입니다. 자신감도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에 느꼈던 신체적 활력과 지금의 신체적 활력을 비교하면서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 왜 이러지?’ 하면서 자신이 약해졌다고 인식하게 됩니다.
행복한 노후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두 다리입니다. 활동을 많이 할 수 있어야 노후의 정신건강을 유지할 수 있고 즐겁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친구가 많아야 노후가 행복하다고, 돈보다 인간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친구가 아무리 많아도 체력이 약하고 다리가 아파서 움직이기 힘들면 불행해집니다. 친구가 적더라도 두 다리 튼튼하고 체력 좋은 노인은 혼자서 등산도 다니고 구경거리 찾아다니며 인생을 즐길 수 있다고 느낍니다.
베테랑 투수는 강속구만 던지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뛰어난 투수라도 나이 들면 젊은 투수에 비해 구속이 떨어집니다. 강속구만 던지면 오래 버틸 수 없습니다. 성숙한 투수라면 다양한 구질로 승부할 줄 압니다. 투구 타이밍도 원숙하게 조절할 줄 압니다. 젊었을 때의 영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강속구만 던지면 얼마 못 가 선수생활을 접어야 합니다.
자신감은 자기 능력에 대한 믿음, 즉 자기효능감에 기초합니다. 내가 노력하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 능력에 대한 믿음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기억력도 떨어지고 체력도 떨어지니까요. 능력을 더 키우고 확장할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듭니다. 중년이 되면 자기 능력의 한계도 알게 되고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것에는 제한이 있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런데 마흔이 넘어서도 자연스러운 능력의 저하를 수용하지 못하면 자신감은 더 떨어지고 맙니다. 인정하면 홀가분해지고 여유로워지는데 ‘내가 왜 이렇게 약해졌나, 그러면 안 되는데……’ 하고 부정하면 좌절감만 커집니다. 어쩔 수 없는 하향세를 비관적으로 해석하지 말아야 합니다. 목표를 현실적으로 낮출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다 놓아버리라는 말은 아닙니다.
비슷한 나이에 세속적으로 성공한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나는 지금까지 뭐 하고 살았나, 내 인생은 그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라며 비참해하곤 합니다. 동창회에 갔더니 ‘누구는 건물도 올리고 회사 CEO가 되어 있고 자식들은 일류 대학에 들어갔던데…… 나는 이게 뭐야!’라며 자기 자신을 초라하게 느낍니다.
나는 아니라고 소리 높이는 이도 있겠지만 이들에게는 또 다른 열등감이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사람은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질투심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질투는 인류학적으로 볼 때 아주 오래 전부터 발달되어온 본질적 감정 중 하나입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꼬리감는원숭이 같은 영장류도 질투를 느낀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질투 같은 건 안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은 마음에 대해 무지한 바보이거나 거짓말쟁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질투를 나쁜 감정으로 취급하는데 이는 잘못된 태도입니다. ‘네가 할 수 있는 건, 나도 할 수 있어!’ 이런 마음이 우리를 앞으로 움직이게 만든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질투란 자신의 운명을 더 나은 방향으로 끌고 가는 힘입니다. 질투를 느끼기 때문에 더 노력하게 되고 더 나아지려고 행동하게 되니까요. 그래서 시인 기형도는 <질투는 나의 힘>이라고 노래했었죠.
질투라는 감정을 받아들여서 자기인식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질투를 느끼는 것은 내가 욕망하는 것이 질투의 대상이 가진 속성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 때문에 질투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나면 내가 삶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정신과 의사 노릇을 하면서 깨달은 것 중에 하나가 고통 총량 불변의 법칙입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똑같은 정도의 고통을 겪어야만 한다는 뜻인데, 사는 동안 하늘이 자신에게 정해준 고통의 몫을 반드시 다 겪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다 겪고 나면 죽음이 찾아오는 것이겠지요.
내 고통은 다른 사람의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운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런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너무 특별한 존재로 여기고 있거나,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은 욕망의 삐뚤어진 표현일 수 있으니까요.
마흔의 문제에는 선명한 해법이나 단순한 원리가 없습니다. 타인이 거쳐간 길은 그것이 아무리 좋고 옳아 보여도 절대로 내것이 될 수 없으니까요. 마흔의 마음 공부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길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마음 공부가 필요할까요?
바로, 마음 공부의 핵심은 상실의 고통을 끌어안고 전환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곧 마흔이 되는 서른에게, 동시에 마음은 아직도 서른에 머물러 있는 마흔을 위한 이야기를 글에 담아두었습니다.
마흔의 길목, 없어질 것만 보지 마세요.
당신에게 아직 남아 있는 소중한 것이 더 많으니까요.
- <마흔, 마음 공부를 시작했다> 읽어보기 > http://bit.ly/2OoRcV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