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을 향한 충동이 사라지는 것은 죽어가는 것과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완벽은 언제나 나를 피해갈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끊임없이 완벽을 추구하리라.”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인생에서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지만 그것을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삶의 본질이라고 강조했죠.
정진홍 박사도 《완벽에의 충동》에 이렇게 썼어요.
“완벽에의 충동은 살아 있음의 저력이고 생명을 이끄는 힘입니다. 완벽에의 충동이 살아 움직이는 만큼 내 삶도 유효합니다. 완벽에의 충동이 사라지는 순간 내 삶은 쉰내가 나는 것입니다. 썩는 것이지요.”
완벽을 향한 충동이 사라지는 것은 죽어가는 것과 같다, 삶의 열정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이쯤 되면 완벽주의가 삶을 풀어가는 묘약이라고 믿겠지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완벽주의가 독이 되면 성취해도 행복을 못 느낍니다. 만족할 만한 순간에도 흠결이 눈에 들어와 불행해집니다. 최선을 다하고도 만족하지 못한다면 완벽주의의 함정에 빠진 겁니다. 과도한 완벽주의는 정신건강의 적입니다.
조금 느슨해질 필요가 있는 사람에게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하면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건강에도 해롭다고 당부하면 개의치 않고 뿌듯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좀 꼼꼼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스타일이죠. 실수나 흠집이 있는 걸 두고 못 봅니다.”
이들은 완벽주의에 매력을 느끼고 그것이 일으키는 문제에는 눈감아버립니다. 완벽에 지나치게 매달리고 완벽만을 선으로 생각하면 불완전하고 약하고 깨지기 쉬운 본성의 자연스러운 요소들이 억압되어 마음의 그림자가 됩니다. 그림자는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것, 그렇게 되고 싶지 않은 것, 그래서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특성들을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억압할 때 무의식 속에 형성됩니다. 완벽에 도달하지 못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 그림자가 되어 의식 아래로 숨어버리는 것이지요. 억압해왔던 그림자가 중년이 되면 점점 강하게 힘을 발휘합니다. 자기 안에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마흔이 넘어서도 자기 그림자를 무시해버리면 정신건강에 위기가 찾아옵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40대 중반의 남자 내담자는 50이 되면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욕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 사업체를 자식에게 물려줄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직원 중에서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사람에게 넘겨주고 저는 50이 되면 은퇴하려고요.”
그런데 이 말 뒤에 인상을 찌푸리며 부하직원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습니다.
“도대체 일 처리가 꼼꼼한 놈이 하나도 없어요. 나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모든 것을 완벽하게 처리하려고 최선을 다했는데 젊은 직원들은 항상 뭔가를 놓쳐요.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내 심장에 완벽주의를 새겨넣었어요. 문신처럼 절대로 지워지지 않도록 말이죠. 그런데 직원들을 보면 내 마음에 드는 놈을 한 사람도 찾을 수 없으니 속이 탑니다. 그나마 마음에 드는 놈이 있어서 승진시켜서 경영을 가르치다 보면 얼마 못 가 힘들다고 사표를 던집니다. 좀 더 크라고 잘못을 지적하고 화를 좀 냈거든요. 그랬더니 힘들다고 그만두겠다고 합니다. 이러니 더 화가 나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아요.”
마흔 이후의 심리적 과제는 관대해지는 겁니다.
실수하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가진 자연스러운 약점에 대해
너그러워지는 자질을 획득해야 합니다.
중년이 되어서도 과도한 완벽주의에 매몰되어 관대함을 얻지 못한다면 심리적 괴로움에 빠지게 됩니다.
특히 타인에게 완벽주의를 강요하면 인간관계에서도 문제가 생깁니다. 완벽주의의 함정에 빠지면 타인의 사소한 실수에도 분노를 폭발하며 타인을 비난하고 몰아세우게 됩니다. 주변 사람은 그만한 일에 왜 그렇게 화를 내느냐며 이상하게 보는데도 본인은 오히려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자신의 분노를 정당화합니다. 나는 완벽한데 다른 사람은 다 문제가 있다고 여깁니다. 자신에게는 그림자가 없는 것처럼 구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은 타인의 결점을 발견하면 자기 그림자를 그 사람에게 투사하며 비난을 쏟아냅니다. 앞서 소개한 중소기업 사장은 자기의 불완전함은 눈감아버리고 타인의 약점에만 지나치게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자기 그림자는 보지 못하고 있는겁니다. 완벽주의에 매몰되어서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연약함, 약점, 어쩔 수 없는 실수를 악으로 간주해버린 것이지요. 자신에게는 그런 어두운 면은 없다고 쉽게 믿고 있는 것이지요.
한 중년 여성 내담자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저희 어머니는 욕을 입에 달고 사셨어요. 제가 어릴 적에는 욕먹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어요. 어머니가 저를 사랑한다는 느낌을 못 받았어요. 어릴 때는 그런 어머니를 미워하기 보다는 내가 못나서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완벽해지면 더이상 욕을 안 먹겠구나 싶어서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일도 열심히 하고, 가족에게 더 헌신적으로 하고, 내 삶에 빈틈이란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살았어요.”
우리는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와 실패를 반복합니다. 인간은 결코 완벽에 이를 수 없습니다. 완벽은 신의 영역이지 인간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간의 한계를 딛고 자꾸만 완벽해지라고 하니 죽을 맛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완벽을 강요하지요. 완벽하지 않은 것은 실패로 간주해버립니다. 최선을 다하고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자기 자신을 미워하기도 합니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나!’ 하고 말입니다. ‘나는 어떻게 해도 완벽해질 수 없구나!’ 하면서 자신을 괴롭힙니다. 스스로를 더 채찍질하며 아프게 합니다.
완벽주의 성향이 강했던 한 내담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무 빈틈이 없으니까 주변에 아무도 없어요. 조그만 잘못이라도 눈에 띄면 가만있지 않거든요. 불같이 화를 내고 당장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죠. 나이가 들어보니 참 외롭습니다. 내가 너무 깐깐해서 사람을 밀쳐낸 것이 아닌가 싶어요. 내가 못난 사람 같고 자꾸 자책을 하게 돼요. 그럴 때마다 우울해지고요. 저같이 빈틈없이 살아온 사람이 남들에게 우울하다는 소리를 어떻게 합니까? 그러다 보니 우울한 기분을 속으로만 더 꾹꾹 참게 됐어요. 그러니 더 외로워질 수밖에요.”
완벽주의자가 되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를 미워하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은 완벽해야 한다고 믿고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완벽을 강요하는 것은 이 세상 누구도 사랑하지 않겠다고 선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완벽을 향한 열망도 좋지만 완벽하지 않은 자기 모습, 완벽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도 모두 품고 가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겁니다.
마흔의 문제에는 선명한 해법이나 단순한 원리가 없습니다. 타인이 거쳐간 길은 그것이 아무리 좋고 옳아 보여도 절대로 내것이 될 수 없으니까요. 마흔의 마음 공부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길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마음 공부가 필요할까요?
바로, 마음 공부의 핵심은 상실의 고통을 끌어안고 전환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곧 마흔이 되는 서른에게, 동시에 마음은 아직도 서른에 머물러 있는 마흔을 위한 이야기를 글에 담아두었습니다.
마흔의 길목, 없어질 것만 보지 마세요.
당신에게 아직 남아 있는 소중한 것이 더 많으니까요.
- <마흔, 마음 공부를 시작했다> 읽어보기 > http://bit.ly/2OoRcV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