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속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은 인생에서 추구해야 할 것이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둘 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는 재미있게 살아야 하고 행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마흔이 지나면서 “내 인생은 즐겁고 행복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실제로 얼마나 될까요?
저는 내담자에게나 강의를 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에 속지 마십시오.”
대한민국에서 마흔이 넘으면 시간은 없고 매번 쫓기듯이 사는데 해야 할 숙제는 너무 많습니다. 마치 내일 학교에서 검사받아야 할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서 졸린 눈을 비비고 늦은 시간까지 숙제에 처절하게 매달려 있는 학생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여기다 대고 이른바 잘나간다는 사람들이 “행복해라, 재미를 찾아라”라고 하는 것은 성적 잘 나오는 옆집 친구가 “그깟 숙제 집어치우고 같이 공이나 차고 놀자”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해야 할 숙제는 많고 시간은 없는데 이런 상황에서 친구와 축구하면 그 학생이 진정 행복하다고 느낄까요?
백번 양보해서 학생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이 마흔이 되어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인생 숙제도 하지 않고 행복 타령이나 하고 있을 대한민국 중년이 몇이나 될까요? 하루하루 치열하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중년은 그렇게 못 합니다. 마흔이 넘으면 삶이 우리에게 던져준 숙제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게 인생입니다.
저는 ‘행복해야 한다. 인생의 재미를 찾아라. 인생은 숙제가 아니라 축제다. 즐기면서 살아야 한다’ 따위의 조언이 탐탁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하루하루의 삶이 충분히 고단한데 누군가 옆에서 자꾸 이런 말을 하면 오히려 기운만 더 빠질 겁니다.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고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만난 돈 많고 명망 있는 사람들도 다 나름의 스트레스와 마음의 고통을 갖고 있었습니다. 비둘기가 어느 순간 독수리가 된다고 해서 더 행복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로또 당첨으로 일확천금을 거머쥔 후 삶의 결말이 안 좋아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생기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은 모두 사람에게 큰 스트레스로 작용합니다. 이혼하거나 실직해도 스트레스를 받지만 결혼과 승진에도 마찬가지로 스트레스가 따릅니다.
거짓 행복을 추구하며 인생을 낭비하지 마세요.
지금 자신이 얻으려고 하는 행복이 과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지 확인해보아야 합니다. 사회나 언론에서 심어준 행복, 이를테면 사회적 성공과 부, 완벽한 사랑, 방황과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심리 상태 등 거짓 환상에 현혹되어 있지는 않나요? 영화나 신문에 나오는 행복의 이미지에 익숙해지면 나에게 진짜 행복이 뭔지 잊어버립니다. ○○○ 교수가 말하는 행복, ○○○ 박사가 말하는 행복이 마치 내가 추구해야 할 것이라고 착각하면 나답게 살지 못합니다. 병든 행복은 정상적인 불행보다 더 나쁩니다.
행복은 추구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행동이 모여 생기는 부산물에 불과합니다. 사실 희망이란 것도 실재하지 않지요. 희망이 존재한다는 확실한 증거는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희망을 하루하루 만들어갈 수 있을 뿐입니다. 지금 내가 하는 활동이 희망을 만들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
행복은 단순히 쾌락적 정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즐겁다고 해서 행복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술을 마시거나 심지어 마약을 해서 기분이 좋아진다고 우리는 그것을 행복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짜 행복일까요?
우리는 어떨 때 진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요?
인간은 자신이 믿고 있는 인생의 신념이나 가치에 부합하는 행동을 할 때 좋은 기분을 느낍니다. 만족하는 것이지요. 반면에 자신의 행동이 자기가 추구하는 가치와 일치하지 않아 마찰을 일으키면 불쾌함을 느낍니다. 불만족스러워지는 것이지요. 즉 사람은 자신의 고유한 인생의 가치로부터 멀어진다고 느낄 때 고통을 느끼고 하루하루의 삶이 가치에 잘 부합하면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자신이 인생에서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을 잃어버렸거나 길은 알고 있지만 그곳을 향해서 나아갈 수 없다고 느낄 때 불행을 느낍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정신적 문제도 발생합니다. 추구해야 할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누군가가 방해하거나 구덩이에 빠져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될 때도 인간은 정신적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시험에 대한 불안은 공부를 열심히 함으로써 떨쳐버릴 수 있다고. 불안이나 우울 같은 심리적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불안해지는 원인만 없애려 하면 더 문제가 생깁니다. 시험 때문에 불안하다고 시험을 보지 않거나 결석을 한다고 해서 행복해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지요. 시험 때문에 불안한 것은 시험을 잘 치르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지 시험 그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당장 불안하고 힘들다고 해서 현실에서 도망가버리면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하면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끝내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조르주외젠 오스만Georges-Eugène Haussmann은 나폴레옹 3세의 명을 받들어 1853년부터 1870년까지 파리의 도시 개조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한 인물입니다. 그는 수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파리 전역에서 낡은 집과 좁은 골목을 새로운 주거지역과 백화점, 반듯하게 정리된 길, 넓은 가로수 길로 바꾸어놓았습니다. 현재 파리의 커다란 별 모양 광장과 거기서 뻗어나오는 넓은 대로도 그가 만들었지요. 그런데 그는 오염에 대한 강박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평생을 질병과 오염에 대한 불안으로 고통받고 살아야 했습니다.
이런 그가 자신이 가진 강박증을 없애기 위해 매일 손 씻는 일에만 전념하고 질병에 걸리지 않나 걱정만 하고 있었다면 그의 인생이 행복해졌을까요? 아니면 강박증이 아니라 더럽고 정돈되지 않은 파리를 아름답게 꾸미는 일에 헌신했을 때 행복하다고 느낄까요? 어느 쪽이 진짜 인생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나요? 강박증이 있다고 해서 실패한 인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을 극복하고 인생의 목표를 이루었을 때 더 훌륭한 인생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만난 많은 중년 남성이 “나는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해”라고 말하더군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때 기분이 좋다는 말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하루를 유흥으로 즐기거나 골프나 치면서 보내는 것은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는 그저 그런 일에 불과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일을 통해서 자신만의 인생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감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직장 열심히 다녀서 우리 딸 시집 갈 돈이라도 모아두는 것이 제 꿈입니다.” “사업 잘되면 조그만 장학재단이라도 만들어서 저처럼 돈 없어서 제대로 못 배우는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돕고 싶어요.”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돈이 좋아서가 아니라 돈을 통해 이루고 싶은 인생의 소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힘들어도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놀 줄 모르는 일 중독자라며 인생의 맛을 모르고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요? 과연 누가 인생을 진정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우리는 인생에서 풀어야 할 숙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숙제를 끝냈을 때 행복도 느낄 수 있는 겁니다. 숙제를 해야만 한다는 족쇄가 있기 때문에 숙제를 끝냈을 때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거지요. 숙제보다는 하루하루를 축제나 벌이며 살겠다고 하는 것은 진정한 행복을 평범한 쾌락으로 바꾸어버리는 가장 철없는 행동입니다.
중년의 남자, 여자에게 “현실을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며 훈수 두듯 말은 많이 하지만, 정작 “당신 인생의 진정한 사명은 무엇이냐?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가치가 무엇이냐? 이루고 싶은 꿈이 무엇이냐?”라고 물어보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 나이쯤 되는 사람에게 “꿈이 뭐냐?”고 묻는 것이 왠지 어색하게 느껴져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런 질문을 하면 선뜻 대답하기 힘들어하는 사람을 많이 만납니다. 인생의 사명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보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추구해야 하는 가치와 사명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해두어야 합니다. 자신만의 삶의 이야기에 뿌리를 둔 인생의 사명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게 됩니다. 어디로 갈지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면 인생의 위기가 닥치는 순간 주저앉고 맙니다. 가야 할 길을 모르면 걸어가야 할 의욕도 생기지 않습니다. 사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거창한 것을 이루려 하기보다는 작은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진짜 내 삶을 제대로 살아야 합니다. 볼테르Francois-Marie Voltaire도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Candide ou L’Optimisme》에서 “우리는 우리의 정원을 가꾸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영국의 시인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 역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위대한 일들은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내로 이루어진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이루려 하기보다는 자기 길을 꾸준하게 걸어가는 사람만이 진짜 인생을 살고 있는 겁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생의 마지막이 되어봐야 알 수 있는 법입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 우리는 매일매일 노력하고 인내하고 애쓰며 살아가는 겁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언제나 인생 전체로만 답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에게 아직도 해야 할 숙제가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숙제가 많은 만큼 인생을 살아야 할 이유도 많다는 뜻이니까요. 아직 그만큼의 열정이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요. 숙제 없는 마흔은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마흔이라면 당연히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숙제가 남아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알려줍니다. 우리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과 당분간 숙제의 무게만큼 고통도 던져버릴 수는 없다는 것을. 그래서 힘이 들어도 우리는 계속해서 뚜벅뚜벅 자기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마흔의 문제에는 선명한 해법이나 단순한 원리가 없습니다. 타인이 거쳐간 길은 그것이 아무리 좋고 옳아 보여도 절대로 내것이 될 수 없으니까요. 마흔의 마음 공부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길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마음 공부가 필요할까요?
바로, 마음 공부의 핵심은 상실의 고통을 끌어안고 전환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곧 마흔이 되는 서른에게, 동시에 마음은 아직도 서른에 머물러 있는 마흔을 위한 이야기를 글에 담아두었습니다.
마흔의 길목, 없어질 것만 보지 마세요.
당신에게 아직 남아 있는 소중한 것이 더 많으니까요.
- <마흔, 마음 공부를 시작했다> 읽어보기 > http://bit.ly/2OoRcV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