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인스타소설

by 은상

지난 주에 슬쩍 수요문학회를 쉬었는데도 아무도 모르기에 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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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투명인간이다. 진짜로 사람들 눈에 안 보이는 투명인간이 아니라,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거부한 50대 직장인이라 투명인간이다.

다만 복도에 책상이 있다거나 책상에 아무것도 올려두면 안 된다고 하는 등의 악질적인 괴롭힘은 없다. 회사에서 지급한 고물 노트북도 있으니 구색도 갖춘 상태다. 거기다 업무도 있다. ‘재고 소비를 위한 마케팅팀 차원의 기획안’을 작성하는 것이다. 물론 기한 같은 것도 없고 아무도 보지 않을 기획안 작성이다. 일도 있고 자리도 있으니 노동청에 신고할 거리도 없다.

‘정말 투명인간처럼 행동해볼까?’

회사를 안 나가면 근퇴문제로 해직당할 수 있으니 회사 내에서 투명하게 행동해볼 예정이다.

일단 만만한 김 대리 옆으로 자리를 옮겨봤다. 김 대리는 잠깐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더니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그 이후로는 내 쪽을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흰자위로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이 뻔한데도 일에 열중한 나머지 한눈팔 겨를이 없다는 표정을 억지로 지었다.

난 김 대리는 포기하고 박 과장 뒤로 가서 섰다.

박 과장은 의자를 당겨서 슬쩍 나와의 거리를 벌렸다. 착한 사람이다.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거리를 두려 하고 있지만 입사 초기부터 나를 잘 따랐었다. 아마 속으로는 매우 미안해하고 있을 것이다.

“자, 점심 먹으러 가죠.”

박 과장은 마치 내가 없다는 듯 앞만 보고 말했다. 착한 사람이었다.

점심시간이 지나서 몇몇 명에게 다가가봤다. 반응은 똑같았다. 난 정말 투명인간이었다.

투명인간 놀이도 재미가 없었다. 차라리 옷을 벗어버릴까?

그건 안 될 말이다. 변태로, 혹은 성추행범으로 회사를 잘릴 수는 없다.

책상으로 돌아가 고개를 파묻었다.

6시가 조금 넘을 무렵 고개를 들었다.

사무실에 아무도 없었다. 오늘 회식이 있는 모양인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회식에 참석하지 못한 건 꽤 오래 전 일이라 섭섭하지 않다.

하지만 정말 섭섭한 일이 벌어졌다. 사무실 불이 자동으로 꺼진 것이다.

‘어라?’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보안직원이 시스템을 내린 모양이다. 보안문도 자동으로 잠겼다. 이러면 갇힌 것이다. 언젠가는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

그래서 그런지 전혀 당황이 되지 않았다. 포기하고 집에 전화를 걸었다.

“나 오늘 집에 못 들어갈 것 같아. 더 물어볼 건 없고? 알았어.”

집에 못 들어간다고 해도 아내는 별 반응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아내 목소리를 들은 것도 며칠은 지난 것 같다.

난 진짜 투명인간이 된 것인가?

물이라도 한 잔 마시려고 정수기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경광등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보안업체가 설치해둔 동작 감시 센서가 작동한 것이다. 내가 투명인간은 아니라고, 센서가 확인해 줬다. 센서가 사랑스럽다.

아마도 보안요원이 출동해서 문을 열어줄 것이다. 이런 소동이 일어나고 내일 출근해도 오늘처럼 아무 일 없다는 듯 나를 대할 것이다. 어떤 화제도 입에 올리면 안 되니까….

그나저나 이러면 집에 가야 하는데… 아내가 싫어하지 않을까?

혹은 내가 집에 가도 모르는 것 아닐까? 집에도 센서를 장착해 놔야겠다.

그리고 오늘은 보안요원도 나를 발견하지 못했으면 좋겠다는 작은 희망을 품어본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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