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5, 1958
요즘은 인기가 한풀 꺾인 듯 하지만,
몇 해 전까지만 하더라도 신혼집 또는 리모델링 직후의 집의 식탁 위에는 이 PH5가 매달린 모습이
인스타그램을 점령했었다.
크기가 서로 다른 3개의 갓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걸까?
PH는 디자이너인 폴 헤닝센(Poul Henningsen)의 이름의 약자이고,
5는 지름 50cm(가장 큰 가운데 갓 기준)를 의미한다.
지금 봐도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어느 공간에나 어울리는 이 펜던트의 시작은
폴 헤닝센이 1924년에 3개의 중첩된 갓(three-shade) 개발하면서부터이다.
1924년? 꽤나 오래전 디자인인걸?
그리고 3개의 갓이 왜 이리 중요하다 말인가?
먼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당시 사용하였던 조명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1. 석유등 2. 가스등 3. 에디슨의 백열전구(전기조명)
석유등과 가스등은 불을 켜기 위해 태우는 연료로 석유(오일), 가스를 사용한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은 어두운 밤에 그야말로 한줄기 빛처럼 비춰준다.
그러나 주변을 환하게 밝혀줄 만큼 빛은 충분하지 않았으며 그마저도 연료가 떨어지면 칠흑 같은 어둠으로 돌아갔다.
1879년, 드디어 에디슨이 전기를 이용해 빛을 내는 백열전구를 발명하게 된다(이전에도 백열등은 존재했지만 에디슨은 이를 보완하여 상용화에 성공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기를 공급하면 투명한 유리구 안에 금속(필라멘트)에서 빛이 발생된다. 불의 빛보다 훨씬 더 오래가고 더 밝은 빛으로 말이다.
폴 헤닝센이 태어났을 때는 이미 이 백열전구를 집집마다 사용하고 있을 때였다.
백열전구는 획기적이었지만, 단점이 있었다.
눈이 부시다는 점이었다.
폴 헤닝센은 눈이 피로하지 않은 은은한 빛에 골몰했다.
눈부심을 막고 부드러운 빛을 만들기 위해 탄생한 것이
바로 3중 갓 시스템(three-shade system)이다.
그의 초창기 작품에는 3개의 갓이 크기에 따라 차례로 중첩되어 있다.
그의 대표작 중 또 다른 하나는 아티초크를 닮은 펜던트, PH 아티초크이다.
코펜하겐의 레스토랑 Langelinie Pavilion 측 의뢰를 받아 제작됐는데 현재까지도 17개의 펜던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PH 아티초크는 72개의 갓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확하게 배치된 12개의 줄에 각 6개의 아티초크 잎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광원이 노출되지 않게 감싸며 빛을 분산시키고 확산시키면서 어느 각도에서 조명을 보아도 눈부심이 없도록 세심하게 배치되어 있다.
참고로 아티초크는 쌍떡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채소로 먹기도 한다(참고: 두산백과).
요즘은 불멍을 위해서 또는 전기가 제한되는 캠핑장에서 일부러 석유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불빛만이 주는 감성적인 분위기가 있다.
그러나 전등이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힘들다.
거기에 더해 눈에 피로까지 생각한 디자이너의 세심함이란!
폴 헤닝센의 PH시리즈들이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사랑받는 이유는
심미적으로도 아름답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폴헤닝센 (Poul Henningsen, 1894.09.09 - 1967.01.31)
덴마크 조명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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