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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네?

by 공간여행자 Feb 26. 2025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오전 시간이었다.

출퇴근 시간이 막 지난 아홉 시쯤 되었을까?


카운터 끝쪽에는 개교기념일이라 휴교라며 신난 도원이가 친구와 스터디카페에 간다고 친구의 커피까지 챙기고 있었다.

텀블러를 정성스럽게 다루는 걸 보니 여자친구가 분명하다.


-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테이크아웃이요.


평범한 손님의 평범한 메뉴였다.


신속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준비했다.

진한 에스프레소 위에 차가운 물과 얼음을 채운 후, 컵 홀더를 끼워 조심스럽게 건넸다.


- 커피 나왔습니다.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건네자 날카로운 음성이 매장 안을 가로지른다.


- 이게 뭐죠?


손님이 컵을 들어 올리더니, 짜증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 전 분명 따뜻한 아메리카노 시켰는데요?


어느덧 익숙해진 일과 평범한 날들에 방심한 탓일까?

재빠르게 POS 기를 확인해 본다.

분명 500원이 더 비싼 아이스 아메리카노 영수증이 찍혀있다.

내가 착각한 게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내 앞에는 이미 잔뜩 신경질이 난 손님이 서있다.

순간 잘잘못을 따질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 손님, 괜찮으시면 금방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바쁜데 진짜. 빨리 해주세요.


두 개의 텀블러를 챙기느라 안에서 잠시 머물던 도원이 놀란 눈을 하고, 무슨 말인가 할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도원이를 향해 가만히 있으라는 눈짓을 보내고 최대한 침착하게 다시 에스프레소를 내린다.

잠시 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아메리카노가 담긴 테이크아웃용 컵을 건네며 덧붙였다.


- 오늘은 날이 쌀쌀하니까, 따뜻한 커피가 좋죠.


컵을 받아 들던 손님은 뭔가 생각난 듯 흠칫 놀란 표정으로 서둘러 커피숍을 빠져나갔다.


도원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 누나, 제가 똑똑히 들었어요. 아이스 아메리카노라고. 이 추운 날 아이스라니. 속으로 얼죽아구나 생각했다니까요.


- 나도 알아. 분명 3,500원을 결제했으니까. 하지만 그 상황에서 옳고 그름을 따져봤자 서로 기분만 상했을 거야.


- 그래도 억울하잖아요. 누나가 잘못한 게 아닌데.


- 저 사람도 알았을걸?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걸. 그냥 그런 날이 있잖아. 화만 나고 뜻대로 일이 되지 않는 날.


- 그래도 화풀이를 여기서 하면 안 되죠. 다른 사람 기분까지 망치잖아요.


- 맞아. 그러면 안 되지. 당해서도 안되고.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이유 없는 화풀이를 당하게 되면, 빨리 빠져나와야 해. 그 화살을 내가 맞지 않도록,,, 이유 없는 화풀이에 이유나 근거를 가지고 따지려 들면 화살의 끝은 나를 향하게 돼.


- 만약 그 화살에 타깃이 되면 어떡해요?


- 화제를 돌려야지.


- 아까 누나가 날이 쌀쌀하다고 한 것처럼요?


- ㅎㅎㅎ 맞아. 게다가 그 사람 오늘 500원 더 주고 따뜻한 아메리카노 사 먹었잖아.


- 그래도 저는 기분 나쁠 것 같아요.


- 나랑 상관없는 사람 때문에 내 기분이, 내 하루가 엉망이 되는 게 더 억울하잖아. 그럴 순 없지. 오늘은 도원이 너랑 이야기하면서 다 풀렸어. 고마워.


- 뭘요. 아직 저는 어렵네요.


- 그게 쉬우면 인생 한 4회차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친구 기다리겠다.


시간을 흘끗 확인하던 도원이 급하게 커피숍을 나선다.


- 누나, 오늘 액땜했다 쳐요!


역시 인생 2회차 쯤 되는 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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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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