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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근기 Apr 21. 2020

나의 첫 히말라야 트레킹 2

-나의 청춘 여행기 9: 네팔 포카라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가이드 람이었다. 잠깐 잠이 든 것 같은데, 벌써 아침 7시라니. 푼힐 전망대에서 일출을 보려면 4시 30분쯤에 일어나서 올라가야 한다고, 가이드 람은 어젯밤에 나에게 몇 번이나 당부했었다. 그래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알람을 4시 30분에 맞춰 놓았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문 앞에는 이미 푼힐 전망대에서 일출을 보고 내려온 람 일행이 서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늦잠을 자다니! 정말 대책 없는 사람이라며, 한 마디씩 했다. 나도 나 자신이 싫다. 평생 한번 올까 말까 한 곳에 와서 늦잠을 자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아키는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아침 일출은 구름 한 점 없이 너무너무 아름다웠다고. 내가 아쉬워하자 람이 한 마디를 더 보탰다.

“오늘처럼 깨끗한 일출은 저도 일 년에 몇 번 못 봐요. 정말 장관이었어요.”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그래! 그냥 이대로 내려갈 순 없지. 나는 아침도 거르고 부랴부랴 푼힐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날 아침의 하늘은 돌을 던지면 깨질 듯 적막하고 깨끗했다. 눈이 무릎 높이까지 쌓여 있어 걷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트레커들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서 푼힐 전망대를 찾아 올라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일출을 다 보고 전망대에서 내려오던 트레커들은 뒤늦게 씩씩거리며 푼힐 전망대를 향해 올라가고 있는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있는데 부랴부랴 영화관으로 들어서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올라가면 아무것도 볼 수 없다며 짓궂게 놀리는 여행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냥 이대로 발길을 돌릴 수는 없다. 그렇게 한 40분 정도 씩씩거리며 올라갔을까. 드디어 내 눈 앞에 말로만 듣던 그 푼힐 전망대가 나타났다.    

푼힐 전망대의 고도는 3210m이다. 누구나 보통 해발 3000m 이상부터는 고산증 증세가 나타난다고 하는데, 다행히 고산병 증세는 없었다. 가이드 람의 말에 따르면, 해가 떠 오른 뒤에는 구름이 몰려오기 때문에 히말라야 설산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그날은 웬일인지 해가 뜬 후에도 기상 상태가 매우 좋았다. 게다가 구름도 거의 없어서 장엄한 설산의 풍경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안나푸르나 남봉이 눈 뭉치를 던지면 닿을 듯 가깝게 보였다.  


푼힐 전망대에서 보던 히말라야 설산 풍경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정면엔 산스크리트어로 '하얀 산'을 뜻한다는 다울라기리(8167m)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고, 오른편엔 안나푸르나 남봉(7219m)과 마차푸차레(6993m)가 보였다. 마차푸차레는 물고기의 꼬리(피시 테일)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데, 정말 아름답게 생긴 봉우리다. 네팔 정부에서는 마차푸차레는 신이 사는 신성한 산이기 때문에 등반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저 산을 오른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보면 볼수록 신비한 느낌이 드는 산이다.   


이미 시간이 꽤 늦은 뒤라, 푼힐 전망대에 남아 있는 사람은 몇 없었다. 덕분에 난 조용히 히말라야의 설산을 감상할 수 있었다. 요즘 같으면 인증샷을 찍느라 꽤 많은 시간을 보냈겠지만, 당시에는 필름 카메라를 사용했기 때문에 사진도 몇 장 밖에 찍지 않았다. 난 하염없이 눈 덮인 히말라야 산맥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늦었지만 올라와 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푼힐 전망대에서 힐탑 롯지로 내려오는 길은 수월했다. 람 일행은 다이닝 룸에서 차를 마시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짐을 챙겨 다이닝 룸으로 내려왔다. 다른 트레커들은 벌써 다 체크 아웃을 한 모양이다. 롯지 방문이 모두 열려 있었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간드룽이었다.  


사방이 온통 눈으로 덮여 있어 어디가 길인지 도저히 분간할 수가 없었다. 람이 앞장을 섰고, 우리 셋은 람의 발자국을 따라 밟으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간드룽은 고라빠니보다 훨씬 고도가 낮지만, 가는 길이 처음부터 내리막은 아니다.  일단 고라빠니에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가 내리막 길을 타기 시작했다. 내리막길이 시작되자 온 신경이 발끝에 쏠렸다. 아차 하는 순간 미끄러질 수 있고, 미끄러지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만약 람 일행을 안 만났다면 어땠을까?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 봐도 나 혼자 이 길을 걸어서 내려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다행히 고도가 낮은 곳에는 눈이 쌓여 있지 않았다. 대신 길이 몹시 질퍽거렸다. 젖은 신발에 진흙이 잔 달라붙어 걷기가 불편했다. 다행히 체력이 떨어지려고 할 때쯤 식당이 나타났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에서는 참 신기하게도 트레커가 지칠 때쯤 되면 어김없이 롯지나 식당이 짠 하고 나타난다.  눈을 말끔하게 치워 놓은 식당에서 식사를 한 뒤, 차를 시키자, 주인이 주전자에 물을 부어 아궁이에 올려놓는다. 아궁이에서는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가 난다. 따뜻한 짜이 한 모금을 마시자 몸에 피가 도는 느낌이 든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그 레스토랑에서 간드룽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밑으로 내려올수록 기온도 점점 올랐다. 어느새 질퍽거리던 길도 사라지고, 간드룽에는 따뜻한 오후의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노란 튤립은 이제 막 꽃봉오리를 피우려고 하고 있었고, 잔디밭에서는 선생님이 아이들 몇 명을 모아 놓고 공부를 가르치고 있었다. 내가 손을 흔들자, 선생님과 아이들은 공부를 하다 말고 열심히 손을 흔들어 주었다.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햇살이 잘 드는 곳에 위치해 있어서일까. 간드룽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작은 마을이었다. 우리 일행은 넓은 잔디밭이 있는 한 롯지에 들러 늦은 점심을 시켰다. 라면을 주문하고 파를 좀 많이 넣어달라고 부탁했더니, 주인은 밭으로 가 파를 뿌리 째 뽑아 주방으로 향했다. 한국 사람의 입맛에는 네팔식 라면이 좀 밍숭 밍숭 한 편이다. 하지만 그날은 배가 고파서였을까, 꽤 맛있게 먹었다.


이제 람 일행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람과 일본인 트레커들은 ABC 베이스캠프로 가기 위해 위로 올라가야 하고, 나는 나야폴에서 버스를 타고 포카라로 돌아가기 위해 산을 내려가야 한다. 우리는 만난 지 이틀밖에 안 된 사이였지만, 그 새 정이 담뿍 들어 있었다. 국적도 다르고 말도 안 통하는 사이였지만, 함께 히말라야 산을 걸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서로를 친구처럼 느끼고 있었다. 우리는 이메일과 전화번호를 교환한 뒤, 몇 번이나 몸조심하라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간드룽에서 다시 나야풀로 내려가는 길을 계속 내리막길이었다. 게다가 바람이 등 뒤에서 불어서 아주 쉽게 내려갈 수 있었다. 부랴부랴 내려온 덕분에 저녁 늦게 나야폴에서 포카라로 가는 차를 탈 수 있었다. 왜 그때는 무조건 빨리 걷기만 했을까? 왜 간드룽에서 하루 더 머물며 여유롭게 트레킹을 즐기지 못했을까? 왜 빨리빨리 앞만 보고 길을 걸어왔을까? 후회가 된다. 왜 젊었을 때는 길을 음미하며 걷는 법을 몰랐을까.    

그 후, 나는 몇 번이나 더 히말라야 트레킹을 했다. 요즘은 히말라야 트레킹에 대한 정보가 넘쳐난다. 코스서부터 롯지 정보까지 관심만 가지면 온갖 정보를 모을 수 있다. 나도 요즘은 트레킹을 떠나기 전에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여러 가지 정보도 확인해 보고, 어느 롯지에서 묵을지도 정해 놓고, 산에서 파는 물건의 가격이 얼만지도 알아본다. 물론 등산 장비도 철저히 갖추고 트레킹을 시작한다. 처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


그런데 참 희한하지. 준비를 철저하게 하고 트레킹을 하면서부터 왠지 설렘이 크게 줄어드는 느낌이 든다. 처음 트레킹을 할 때 내 손에는 달랑 허접한 지도 한 장이 들려 있었다. 푼힐이 히말라야 어디에 붙어 있는 줄도 모르고, 무작정 길을 떠났었다. 그래서일까. 그때는 발걸음마다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언제부턴가 트레킹 코스에 대한 정보를 긁어 모으기 시작하면서부터 설렘이 크게 줄어들었다.


누군가는 경험이야 말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재산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건 설렘이 아닐까. 두근거리는 떨림이 아닐까. 그런데 경험과 설렘은 반비례 관계에 있다. 나이가 들고 많은 경험이 쌓일수록 설렘은 점차 줄어드는 것이다. 트레킹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저기 보이는 저 길 모퉁이를 돌아가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이미 알고 있다 보니, 첫 히말라야 트레킹의 그 두근거림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경험이 쌓이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 경험에 매몰되는 순간, 마음은 급격하게 늙기 시작한다. 주름살이 잡히고, 체력이 예전만 못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자연의 섭리니까.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두근거림 만은 잃고 싶지 않다언제까지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낯선 길들을 음미하며, 타박타박 걸어가는 여행자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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