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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세경 Sep 12. 2020

서문 II: 미국 대학교 석박사 과정에 합격하기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연구계획서(SOP), 학점 평균, 교수 추천서, GRE 점수, 예비 지도교수(POI)와의 적절한 사전 컨텍, 희망 연구분야와 학부시절 수강한 수업과의 연관성 등등... 미국 대학교 석박사 입시에 작동하는 요소들은 전공을 불문하고 다양하다. 앞으로 연재하는 글에서는 이러한 요소들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하나씩 깊게 다뤄보도록 할 텐데, 그전에 우선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 명문 대학교 석박사 과정에는 어떤 이들이 합격할까?"




이런 추상적인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사실 하루에 8시간씩 공부해서 GRE/GMAT 고득점을 받거나 장문의 연구계획서를 야심 차게 작성하는 등의 노력을 하는 것은 합격하는 사람이나 불합격하는 사람이나 모두들 하는 일일 뿐이고, 결국에는 비슷한 양의 노동을 해도 합격할 만한 사람들이 합격하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면, 명문 대학교 프로그램에 합격할 만한 준비가 된 사람들은 구분된 입시 요소들을 통해서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잠재력을 드러낼 수 있지만, 그저 정량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을 것 같은 요소들을 맹목적으로 준비하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은 사실 상당한 확률로 헛수고를 하게 된다.


당신이 명심해야 하는 것은, 대학원 입시는 학부 입시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학부 입시가 대학교라는 집단에서 한 명의 유능한 학생을 뽑는 것이라면, 대학원 입시는 (비록 학과별로 커미티가 구성되어 심사를 하더라도) 한 사람의 교수가 다른 한 사람의 제자이자 동업자를 뽑는 개념이다. 짧게는 2년 길게는 7년 이상을 치열하게 공부하며 함께 일사람을 뽑는데, 또 대학원생 한 명 잘못 뽑으면 교수 입장에서도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닌데, 단순히 각종 서류들을 기계적으로 채점해서 합산 점수가 가장 높은 학생에게 합격 통지를 주지는 않. 그럼 어떤 학생들이 합격할까? 혹은, 교수들은 어떤 석박사생 제자를 원할까? 대답은 일차적으로는 자명한데, 교수들은 자신과 함께 성공적인 연구활동을 할 재능이 여러 가지 입시 요소들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학생을 원한다.




예를 하나 들어 보자, 학생 A는 국내에서 특별히 유명하지는 않은 대학교의 건축공학과에 재학 중이다. 전공이 건축공학이긴 하지만 공학설계보다는 건축공학사에 관심이 많던 A는 전공 필수 학점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학점을 "고대 그리스의 건축과 문화사", "현대 건축 디자인과 건축공학" 등의 관심분야 수업들로 채웠다. (물론 건축공학 공부도 성실히는 했다.) 그렇게 공부를 하던 중 자신이 "1950년 이후의 미국 건축사"라는 세부 분야에 특별한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A는 교내 미국학과 역사학 분야의 교수들에게 많은 질문을 하며 학부 고학년 기간 내내 열정적으로 해당 분야를 공부했다. 결국 미국 현지의 대학원에 유학을 가서 자신의 관심분야를 심도 있게 공부하고 싶어진 A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 건축사를 연구하는 현직 교수들을 리서치했고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리서치 과정 중에서 "제2차 세계대전, 애국주의 프로파간다 그리고 도시 디자인의 삼각 관계"라는 세부 관심사를 도출했고, 그 관심사에 맞추어 예비 지도교수들의 리스트를 추려갔다. 특히 미국의 H대학교 미국학과의 X교수와 J대학교의 건축학과의 Y교수의 프로그램이 연구핏이 좋다고 생각해서, 그 두 학교를 중심으로 총 열 군데의 학교에 원서를 쓰며 유학을 준비했다.


X교수와 Y교수에게 간결한 이메일을 보내 자신의 연구 관심분야를 소개하자, "매우 흥미로운 연구주제다. 다만 이런이런 부분에 대한 추가 정보를 연구계획서에 기술하면 더 좋을 것 같다. 꼭 원서를 접수하 바라며 궁금한 점이 있다면 다시 연락하라"는 취지의 간결하지만 긍정적인 대답을 받았다. 추천서는 평소 가까이 지내던 미국학과, 역사학과 그리고 건축공학과의 교수 세 분에게 부탁드렸고, 평소 A가 해당 분야를 주체적으로 공부하는 모습을 봐왔던 교수들은 A의 학문적 열정을 섬세히 기술해주었다. 비록 영어 실력에는 자신이 없었던 A였지만, 관심분야의 개념과 어휘에 있어서는 이해도가 높았기 때문에 영어를 잘하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수준 높은 연구계획서와 작문 견본(Writing Sample)을 작성했다. 특히 어떻게 보면 약점으로 기능할 수도 있는 "자신이 역사학 전공생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 본인이 그동안 여러 교수들의 도움 하에 주체적으로 역사학을 공부해왔고 관련 학부 수업도 적지 않게 들었다는 점을 효율적으로 어필함과 동시에 건축공학 전공생으로서 자신이 갖고 있는 공학적 지식이 해당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자세히 기술하여 장점화했다. 하지만 GRE와 TOEFL은 아무래도 너무 어려웠다. 그래도 열심히 공부해서 원서 지원 최저선은 간신히 넘긴 점수를 받았다.


반면, 학생 B는 미국의 20위권 명문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 중이다. 어렸을 때부터 지적인 호기심보다는 성실함을 기반으로 공부한 B는 역사학과 안에서 다양한 수업을 들었고, 모든 과제와 시험에 성실히 임하여 꽤 높은 학점 평균을 받았다. 졸업을 앞두자 '역사 분야에서 전문직에 진출하려면 석사 이상의 학위가 없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하게 되었고, 본인이 서양사 내에서 동시대 미국사에 비교적 흥미도가 높다는 것을 이유로 "1950년 이후의 미국사"라는 세부 분야를 연구하기로 하였다. 학점은 충분히 높으니 GRE 고득점만 확보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많은 시간을 GRE 공부에 투자해서 고득점을 받았다. 영어권 대학교를 졸업했으니 TOEFL은 필요 없고, 학부 수업에서 작성했던 에세이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던 글을 라이팅 샘플로 제출했다. 학과 교수들 중 가장 안면이 있는 분들에게 대학원에 지원한다는 말씀을 드리자, 교수들은 기억을 더듬어 B가 매우 근면 성실한 학생이라는 내용의 추천서를 써주셨다. 지원 대학 리스트는 건축, 문학, 정치 등 어떤 맥락에서든 1950년 이후의 미국사를 공부하는 교수가 있는 학교들을 모두 추려 US NEWS 랭킹 순으로 열 군데를 뽑아 지원했다. 그중에는 X교수의 H대학교와 Y교수의 J대학교도 포함되어 있었다.


두 학생 중 X교수와 Y교수의 선택을 받은 학생은 누구일까? 물론 교수 개인의 관점과 커미티의 종합적인 평가기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A가 더 높은 평가를 받았을 확률이 높다. 사실 B의 입장에서는 납득이 안 갈 수도 있다. 흔히들 대학원 입시의 5대 요소라 여기는 연구계획서, 학점 평균, GRE 점수, Writing Sample, 교수 추천서를 구분해서 기계적인 평가를 해볼까? 연구계획서의 디테일을 제외하고는 B가 A에 비해서 부족한 점이 없거나 오히려 더 좋은 배경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현지 명문 대학교에서 높은 학점 평균을 받고 GRE에서 고득점을 기록했으며 미국 내에서 입지가 상당한 석학들이 추천서를 써주었는데, 이 정도면 단연 엘리트 대접을 받으면서 합격했어야 되는 게 아닌가? 게다가 A는 역사학 전공생도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생각은 전제부터가 틀렸다. 커미티는 대학원 입시의 여러 요소들을 따로 평가하여 단순 합산하지 않는다. 제출된 서류들을 펼쳐놓고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지원자를 그려보고는, 해당 교수와 학과에 더 필요하고 매력적인 사람을 뽑는 것이다.


다시 말해, X교수와 Y교수 입장에서 A는 "나의 연구 분야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주제에 분명한 지적 호기심을 갖고 있는 영리한 학생이며, 이미 상당한 시간의 자기 주도적 학습을 해왔기 때문에 6년 이상이 소요되는 학위과정을 변심 없이 묵묵히 따라갈 확률이 높고, 본인의 학교에서 교수진과도 친밀한 관계를 갖고 학문적인 대화를 하던 학생인 것으로 미루어보아 함께 일하기 좋은 사람일 것 같으며, 비록 영어 공부는 조금 늦게 시작했지만 기준 점수를 넘긴 것을 보니 수업을 듣고 논문을 작성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는 학생"이라면 B는 "좋은 학교에서 성실하게 공부한 똑똑한 우등생"일뿐이다. X교수와 Y교수 입장에서 많고 많은 좋은 지원자들 중에 B를 뽑아야 하는 이유가 하나라도 있을까? A를 뽑을 이유는 매우 많아 보인다.




그럼 미국 대학원 입시 준비는 꼭 학부 저학년 시절부터 장기적으로 해야만 한다는 이야기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물론 학문적 관심사를 갖고 공부하는 습관을 일찍부터 갖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미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나 석사생이라도 절대 늦지 않았다. 위의 두 예를 든 이유는 결코 준비 시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떤 태도로 준비해야 하는가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결국 지원자 본인이 무슨 연구를 하고 싶은지와 어떤 교수진의 지도 하에서 어떻게 공부하고 싶은지에 대한 분명한 목표의식을 바탕으로 본인에게 남은 준비 시간을 잘 헤아려서 꼭 필요한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지 무작정 대학원 입시에 필요하다는 요소들을 계산적으로 준비한다고 합격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제부터 다음장에 기술된 목차에 따라 대학원 입시에 필요한 서류들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좀 더 실용적인 접근법으로 설명할 것인데, 독자의 편의를 위해 각 입시 요소들을 구분해서 설명하겠지만 해당 요소들이 따로 그리고 기계적으로 준비될 수는 없음을 명심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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