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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세경 Oct 01. 2020

1-2 학점평균과 이수학점

학부 저학년의 나에게 누군가 이런 말을 해줬더라면

1. 대학원 입시에서 학점평균(GPA)의 역할
2. 높은 학점만큼 중요한 것: 적절한 수업을 들었는가(Relevant Coursework)
3. 부실한 성적증명서로 대학원 원서를 써야 한다면?


대학원 입시 과정에서 우리는 성적증명서(Transcript)를 제출한다. 성적증명서는 단순히 학점의 높고 낮음을 나타내는 것에 더하여 학부시절 지원자가 어떤 수업을 들었는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는 서류이다. 이 글에서는 대학원 입시에서 성적증명서가 맡는 역할을 연구계획서(SOP)의 기능과 연관 지어 설명할 예정이니, 혹시 "1-1 연구계획서의 작성"편을 아직 읽지 않았다면 아래 링크에서 해당 글을 먼저 읽고 돌아오기를 권한다.


https://brunch.co.kr/@sekyungock/5


아울러, 이번 글에는 원론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올 것이다. 만약 본인이 현재 학부 과정 중에 있는 대학생이라면, 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어보기를 권한다. 하지만 본인이 이미 학부를 졸업한 독자라면, 윗부분은 대충 훑어본 뒤 마지막의 "부실한 성적증명서로 대학원 원서를 써야 한다면?" 파트에 집중하도록 하자.




1) 대학원 입시에서 학점평균(GPA)의 역할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학점은 높을수록 좋다. 하지만 원서 제출 시에 학점이 낮다고 합격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며, 또 높은 학점이 합격을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다. 두 가지 극단적인 질문을 한번 해보자. 우선, 교수 입장에서 자신을 몇 년간 서포트할 똑똑하고 뚝심 있는 제자이자 조수를 뽑아야 하고 마침 온갖 재능의 인재들이 몰려와 본인을 뽑아달라고 부탁하는 상황이라면, "그냥 성적순으로 뽑겠습니다"라고 하겠는가? 절대 아니다, 연구계획서를 중심에 두고 다른 서류들을 검토하면서 지원자들의 연구 역량, 지적 성향, 본인과의 연구핏 등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결정할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어떤 지원자가 현란하고 야심만만한 연구계획서를 들고 왔으나 학부 학점이 엉망이라면, 그 학생을 마음 편히 뽑을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아니다, 그 지원자가 자신의 연구계획서를 스스로의 힘으로 작성한 것이며 해당 계획서에서 묘사하는 것에 준하는 수준으로 연구를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객관적 증거가 없는 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제출서류들을 통해서 해당 부분이 보완적으로 설명되지 않았을 경우의 이야기다).


너무 빙빙 돌려 설명하는 것 같다면 결론만 간단하게 정리해보겠다. 높은 학점평균은 그 자체로는 "해당 지원자는 성실하고 (어쩌면) 똑똑한 학생"이라는 정도의, 굉장히 결정적이지만 동시에 사소한 정보를 제공할 뿐이다. 다만 같은 학점이라도 다른 제출서류들과의 관계 속에서 상이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으므로, 본인의 학점평균이 커미티에게 어떻게 비칠지를 논리적으로 상상하며 원서를 준비해야 한다. 예를 들어, 훌륭한 연구계획서, 매우 열성적인 교수 추천서, 관련 경험으로 가득한 이력서를 갖고 있는 지원자의 높은 학점평균은 "다른 제출서류들이 보여주는 해당 지원자의 지적 열정과 연구 역량 그리고 성실성을 객관적인 차원에서 증명해주는 정보"가 될 것이다. 반면 부실한 연구계획서, 해당 학생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전혀 없는 교수 추천서, 별다른 문제의식이나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 작문 견본 등을 갖고 있는 지원자의 높은 학점평균은 "해당 지원자가 특별히 열정적이거나 역량이 있는 학생은 아니지만 그래도 성실하게 학부 공부에 임했다는 정보" 정도로 비칠 가능성이 높다. 비슷한 맥락에서, 비록 낮은 학점평균을 갖고 있지만, 작문 견본의 수준과 공인시험 점수가 해당 지원자의 학업적 역량을 옹호해주고 있는 상황에서 본인이 학점이 낮은 이유에 대한 적절한 설명(변명)이 포함된 탄탄한 연구계획서를 갖고 있다면, 그 지원자의 낮은 학점평균은 "교실 밖에서 열성적인 자기계발을 해온 해당 학생이 학점이 낮다는 이유로 불성실하거나 학업적 역량이 부족하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어느 정도는 중요성을 감하여 검토해야 하는 정보"가 될 것이다. 물론 여기서 언급한 시나리오들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현실에는 훨씬 더 다양한 변수들이 작동하겠지만 말이다.




2) 높은 학점만큼 중요한 것: 적절한 수업을 들었는가(Relevant Coursework)

학점평균은 지원자의 성실함과 똑똑함을 보여준다는, 그래서 다른 서류들을 함께 잘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런 당연한 이야기를 하려고 두 문단이나 사용한 것이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굳이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성적증명서가 보여주는 또 다른 내용, "과연 적절한 수업을 들었는가의 여부"가 높은 학점평균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우선 원론적인 이야기로 시작해보자. 일반적으로 학부 졸업 직후에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대학교를 다니며 공부를 하다 보니 (1)점차 추상적인 학문적 관심사들이 생기기 시작하고 (2)그러한 관심사들이 비교적 세부적인, 연구분야라고 할 만한 것들로 발전되기 시작하고 (3)결국에는 특정 분야를 더 심도 있게 공부하고 싶어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들이 이렇게 학생에서 예비-학자로 거듭나는 과정 중에 대학교에서 가장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무엇일까? 도서관도 인터넷 데이터베이스도 좋지만, 사실 가장 유용한 것은 학부 수업이다. 대학교에서 전공별로 제시하는 졸업 요건과 의무 이수 과목들은 절대 허투루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강단에서 강의를 하는 교수들 역시 각자의 연구 스펙트럼 안에서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가들이다. 처음에는 본인의 전공과 관심사에 맞는 개론 수업을 들으며 해당 분야의 어휘와 지평을 이해하고, 그 이후로는 그 자체가 하나의 세부 분야를 대변하는 각종 수업을 선별적으로 들으며 본인에게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고, 졸업에 임박해서는 특정 주제에 대한 독립적인 연구/창작 연습을 통해 지적 작업물을 만들어보는 과정 속에서 학생은 스스로의 지성을 준비시킨다. 그렇게 정석적으로 준비가 된 학생은 각종 제출서류(특히 성적증명서)를 통해서 본인의 역량을 자연스럽게 뽐내기 마련이고, 결국 좋은 대학원에 합격하게 된다.


너무 원론적인 서설 같다면 이제 원서 이야기에 집중해보자. 우선, 당연한 이야기지만, 적절한 수업의 도움을 받으며 만들어진 좋은 학생의 성장 과정은 성적증명서 내의 이수 과목 명단을 통해 여실히 드러. 커미티는 당신의 성적증명서를 한눈에 훑어보며 당신의 연구자로서의 준비상태를 체크할 것이다. 본인이 연구계획서에서 제시한 계획과 관련된 수업은 얼마나 들었는지, 실험 수업이나 독립 연구 수업의 경험은 있는지, 연구에 꼭 필요한 방법론적인 기본기를 가르치는 수업을 빼먹지는 않았는지, 혹시 필수적인 수업을 빠트렸다면 해당 훈련을 다른 활동을 통해 보완했다는 증거가 다른 서류에 나타나는지 등 이수 과목 명단은 커미티에게 많은 것들을 말해준다. 아울러, 적절한 수업을 듣는 것은 양질의 교수 추천서를 확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본인의 학문적 관심사와 관련 있는 수업들을 알차게 듣는다면, 당신은 학부 과정에서 본인과 유사한 관심사를 갖고 있는 특정 교수들의 수업을 다수 듣게 될 확률이 높다. 바로 그들에게 추천서를 부탁해야 한다. 그들은 당신의 연구분야에 대한 상당한 지식이 있는 데다가 당신을 오랫동안 봐왔기 때문에 적절한 어휘와 사례를 들어 당신의 잠재력을 묘사할 수 있다. 또한 학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교수의 경우라면, 역으로 당신에게 특정 학교나 프로그램에 지원해볼 것을 권할 수도 있고, 당신의 예비 지도교수와 서로 아는 사이일 수도 있다. 이뿐이랴, 연구계획과 관련성이 높은 주제를 다루는 작문 견본(Writing Sample)도 적절한 학부 수업의 기말 과제로서 탄생할 확률이 높고... 뭐 굳이 더 열거하지 않아도 수업이라는 게 얼마나 소중한 자원인지는 이제 모두 느끼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학부생 독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이 역량 있는 학생이 되고 좋은 대학원에 가는 데에 (혹은 직이나 직장생활을 하는 데에) "A를 퍼주기로 소문난" 뜬금없는 수업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설령 누군가가 그런 수업들로 학점평균을 올려놓았다고 해도, 일관되고 계획적인 훈련을 받지 못한 티는 철철 나기 마련이다. 전공-교양을 막론하고 좋은 학자들의 수업을 듣고, 열심을 다해 쓴 글의 첨삭을 받고, 야심 차게 세운 연구계획에 대한 조언을 들을 수 있는, 그런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3) 부실한 성적증명서로 대학원 원서를 써야 한다면?

지금까지의 내용이 학부 저학년을 위한 내용이라면, 이제 원서 접수를 코앞에 둔 학부 고학년 혹은 졸업생을 위한 실용적인 이야기를 하겠다. 만약 당신이 대학원 지원자인데 학점평균이 낮거나 그동안 적절한 수업을 챙겨 듣지 못했다면 어떡할까? 다른 제출서류들을 준비함에 있어서 본인의 부족한 점은 만회하고 강점은 살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 여기에는 정해진 원칙이 있는 것이 아니니 두 가지 일반적인 사례를 들어서 독자들에게 "감"을 전달해보도록 하겠다. (1)만약 학부시절 일과 공부를 병행하느라 높은 성적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방학을 활용해 부족한 독서를 했고 졸업 후에도 학업적 노력을 이어갔기 때문에 해당 연구분야에 있어서는 남들보다 더 준비된 상태라고 자부한다면, 그런 설명을 연구계획서에 짤막하게 넣어도 좋다. 물론 그 "준비된 상태"가 본인만의 상상이 아니어야 하며 다른 제출서류들을 통해 커미티에게 드러나야 한다. 어쩌면 본인이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사회경험을 했다는 점이 책상에서 공부만 했던 것보다 연구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서사를 이용하는 것도 경우에 따라 도움이 될 수 있으니 잘 판단하자. (2)만약 연구 관심사가 고학년에 이르러서 뒤늦게 바뀐 탓에 학부시절 들은 수업에 일관성이 없는 것 같다면, 본인이 고학년 이후에 한 노력에 중심적인 서사를 부여하는 연구계획서를 쓰자. 그리고 관련 분야의 교수에게 추천서를 부탁할 때 본인이 뒤늦게 연구분야를 정한 탓에 해당 주제의 수업을 많이 듣지 못한 것이 커미티에게 좋지 못한 인상을 줄 것 같아 걱정된다는 고민을 솔직하게 얘기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그 교수가 당신을 좋은 학생으로 평가한다면, 당신이 조금 늦게 관심사를 정했지만 충분히 준비가 되었다는, 당신이 연구계획서에서 한 이야기와 일치되는 내용의 추천서를 써줄 수 있다.


근데 여기서 특별한 문제가 하나 생길 수 있다. 만약 당신이 학부 전공과 다른 학과의 프로그램에 지원한다면, 당신이 적절한 수업을 들었는가의 문제(혹은 당신이 해당 분야에 충분한 지식이 있는가의 문제)와는 별개로 해당 프로그램의 공식적인 지원 자격요건에 관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사실 학부에서의 전공과 인접한 타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은 워낙에 흔한 일이고, 졸업 후에 독립적인 공부나 직장생활을 통해 전문분야가 바뀌어 학부 전공과는 거리가 먼 학과의 석박사 과정에 지원하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있다. 이 경우에는 지원하는 대학원의 입학처 홈페이지나 학과 홈페이지에 명시되어 있는 공식적인 지원 자격요건을 꼭 확인해야 한다. 출신 전공에 관한 자격요건에 몇 가지 전형적인 유형이 있는데, "X전공의 수업을 최소 30학점 이상 들었어야 함"과 같이 정량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지만 "X 혹은 그에 인접한 분야를 전공한 학생"과 같이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골치 아픈 경우가 다양하게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만약 당신이 사회학 전공이고, 당신이 다닌 대학교의 사회학과가 양적연구방법론 연구에 많은 투자를 하는 기관이고, 당신이 데이터 사이언스와 사회학적 통계의 접점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라고 생각해보자. 당신은 사회학과 내에서 <사회학 연구와 통계>, <사회학적 통계와 데이터 사이언스>와 같은 수업들을 다수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통계학과에서 제공하는 유사한 수업들을 들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 경우에, 당신이 학부 시절 습득한 통계학적 지식의 실질적인 양과는 별개로, 당신의 성적증명서에 나타나는 "공식적으로 통계학과에서 제공한 수업"의 수는 적을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당신이 대학원 진학을 계획하면서 찾아본 예비 지도교수들 중에는 필시 사회학과가 아닌 통계학과에 소속된 교수들도 있을 텐데, 해당 학과에서 "통계학 수업을 30학점 이상 들었어야 하며, '통계학 연구방법론' 혹은 '통계학 연구 연습'과 같은 수업을 꼭 들었어야 함"과 같은 지원자 자격요건을 제시하고 있다면 당신은 본인이 사회학과에서 들은 통계 관련 수업들이 해당 자격요건을 충족시키는지에 대해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이렇듯, 만약 본인이 수강한 수업이나 본인의 출신 전공이 대학원 측에서 제시한 자격요건을 충족시키는지가 모호하다면, 꼭 해당 학과에 이메일을 보내서 본인의 상황을 설명하고 (필요하다면 성적증명서와 의문점이 남는 수업들의 강의 계획서들을 보내고) 확실한 피드백을 받자. 대학원은 제출서류의 형식적인 내용에 매몰되기보다는 준비된 인재를 뽑으려고 애쓰기 때문에, 당신의 설명이 설득력이 있다면 관대한 답변이 돌아올 확률이 높다. 혹시 해당 학과에서 당신에게 부족한 이수 과목들이 약간 있음을 짚어준다면, 우선 합격을 한 뒤 조금 일찍 입학해서 부족한 선결 수업들을 듣고 정식 과정에 진학하는 조건부 합격(Conditional Offer)을 줄 수 있는지를 물어볼 수도 있고, 먼저 원서를 제출하고 당신이 졸업한 학교나 온라인 평생교육원 등의 기관을 이용해서 필요한 학점을 입학 전까지 채워두겠다는 설명을 전달하여 대답을 듣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 결론은 해당 학과와 최대한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며 가장 효율적인 대안을 찾는 것이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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