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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 피터팬
Dec 15. 2024
게임은 재밌는데, 왜 일과 삶은 그만큼 재미가 없을까?
“전 제 일이 재밌어요”라고 말할 때가 있었다. 눈이 반짝이고 의욕이 넘치며 주도적으로 일했다. 회사에 가는 게 즐거웠고 '난 일에서 재미가 중요한 사람이구나'란 생각을 했다. 다년간의 직장 경험을 통해 이제는 안다. 일을 즐겁게 만드는 것은 일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해 얻는 보람이나 보상 때문이라는 것을. 그래서 일을 둘러싼 환경이 중요하다.
그때는 뭐가 그렇게 재밌었을까? 무엇이 재미를 느끼게 했을까? 우리가 삶에서 재밌다고 느끼는 활동들을 생각해 보면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재밌다고 여겨지는 활동의 대표주자로 게임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게임을 할 때의 뇌 활동과 노동을 할 때의 뇌 활동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이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몰입’시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몰입은 우리가 한 활동이 즉각적이고 지속적인 피드백을 통해 보상으로 연결될 때에 가능해지고, 단순히 즐거움을 넘어, 인간의 본질적인 심리 동기를 충족시키는 중요한 열쇠이다. 게다가 몰입의 결과가 성과로 연결되기 때문에 HR적으로도 조직 몰입, 직무 몰입을 고민하는 이유다.
몰입요인 ①. -노력을 무시하지 않기
현대 조직은 종종 몰입을 방해하는 구조적 실수를 범한다. 직원의 노력과 시간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결과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에 "열심히 말고 잘 해와!"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HR 입장에서는 '당연한 거 아닌가. 결과가 중요하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이런 구조에서 과연 대다수가 열심히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생긴다. “열심히 하면 뭐 해, 성과가 이것밖에 안 나오는데”라는 식의 질책은 직원들에게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무가치하게 만들고 몰입을 저해하는 대표적인 요소다. 그래서 게임이 재밌는 것일지 모른다. 게임은 모든 행동이 보상으로 연결되고, 게임에 들인 시간과 노력을 절대 비웃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시간 투자에 따른 명확한 결과를 받으며(많이 할수록 실력이 늘고 레벨업이 됨) 이는 몰입을 강화한다. 따라서 조직에서도 노력은 인정하고 성과를 별도로 평가, 피드백하는 것이 직원들의 몰입에 유익하다.
몰입요인 ②.- 당신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피드백
문화적 특성상 주체성이 강한 한국인은 자신이 주체임을 느끼는 피드백에 민감하다. 예를 들어, 배달 앱이나 모빌리티 서비스의 성공 사례를 보면, 단순히 빠른 서비스 제공이 아니라 고객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서비스 설계가 성공하고 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대신 “고객님께 열심히 달려가고 있습니다”라는 문구로 배달 라이더의 위치가 실시간 공유되며 고객을 주체로 느끼게 하며 몰입을 유도한다. 이러한 문화적 특성은 기업 내부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직원들은 연말 또는 연초에 있는 결과 중심의 일방적 피드백을 받기보다는, 자신의 노력과 과정에 대한 과정 상에서의 인정과 공감을 필요로 한다. 일의 의미와 보람을 느끼게 하는 긍정적인 피드백과 내 일에 조직이 관심을 갖고 있고 내 성장을 지원한다는 느낌이 드는 개선사항에 대한 피드백은 단순한 보상이나 칭찬 이상의 효과를 발휘하며, 조직에 대한 몰입을 촉진하고 조직에 대한 소속감을 높인다.
몰입요인 ③.- 우연한 성과에 대한 보상
게임에서 우연한 득점으로 기쁨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의도했던 행동이 아니었거나, 우연히 맞힌 타겟도 점수로 환산해 보상하는 게임의 보상체계가 게임을 더 재밌게 만들고 혹시나 있을 행운을 기대하며 게임을 계속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생각해 보면, 우연한 득점이 별로 없다. 일을 잘해왔을 때 상사에게 칭찬을 받고, 부탁한 일을 들어줬을 때 감사인사를 받는 것 정도의 계획된 보상만이 떠오른다. 대가로서 칭찬을 받고 감사를 받는 게 물론 기쁘지만, 게임만큼 짜릿한 기쁨이 없는 이유다. 따라서 사소한 행동이나 우연한 성과를 포착해 인정해 주는 것만으로도 구성원들은 좀 더 즐겁게, 일과 회사생활에 몰입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아주 작은 도움을 주었는데 예상보다 더 큰 감사표현을 받거나, 사소한 아이디어 제시가 생각보다 더 큰 성과가 되어 칭찬을 받는다거나, 나에게는 당연한 일이나 업무방식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잘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생각보다 더 큰 기쁨과 짜릿함을 느낄 것이다.
삶이 재미있는가? 일이 재미있는가? 우리의 삶이 게임만큼 재미있기를 바란다면 위의 몰입요인을 한번 생각해 보자. 게임이 재미있는 비결은 과정에서 즉각적인 피드백이 있고, 노력을 할수록 실력이 늘고 레벨업이 되는 보상체계, 그리고 우연의, 작은 행동까지 보상하는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해도 실력이 늘지 않고 레벨 업(성장) 하지 않는 게임은 재미를 느끼기 어렵다. 지금 한 게임의 결과가 몇 달 후 반영된다면 그것도 재미를 느끼기 어렵다. 내가 주인공이 된 느낌이 들지 않는 게임 역시 그리 재미있지 않다. 재미없는 게임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반대로 우리의 회사생활도, 우리의 삶도 충분히 재미있게 만들 수 있다. 결국, 게임적 접근법을 삶과 일에 도입하는 것은 재미와 몰입을 넘어, 자율성과 성취감을 높이고, 성과를 강화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