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 활동을 시작하기 전, 책 다섯 권을 들고 제주도로 떠났다. 주변에선 우리나라 취업시장에서 여자 나이가 중요한데 지금 떠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우려를 하거나 부럽다는 반응을 비췄다. 그냥 나는 나를 믿고 떠났다. 이 시간이 다른 기회비용들보다 값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리고 그게 맞았다. 그때 느꼈던 자유, 미래에 대한 불안과 기대, 쉼과 사색의 시간들이 현재의 나를 이루었고 지금까지도 버틸 힘을 준다. 4년 반이 지난 이 시점, 당시에 가졌던 마음이 희미해지고 직장 생활에 회의를 느끼는 지금, 그때의 고민과 감정을 다시 상기하고자 한다. 제주에서 3개월간 보고 느끼고 끄적였던 것들을 지금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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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6시 비행기.
여유를 부리다가 오늘 아침에서야 짐을 싸기 시작했다. 어차피 집에서 책 보며 인턴 보고서를 쓸거라
옷 두 벌과 잠옷만 가져갈 계획이었는데 싸다 보니 옷만 한 짐이다. 하하하.
제주도 새 집에 문명의 이기를 불어넣고자 구매한 블루투스 스피커와 블루투스 마이크도 넣었다. 제주도는 물자가 부족해 모든 것이 귀하단다. 그래서 드립 커피를 위한 여과지도 400매 넣었다. 노트북 거치대와 외장하드도 넣고 플랫슈즈도 넣고 책도 한가득 넣고.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내가 맥시멈 짐을 쌌다. 하하.
결심도 한가득 하고 육지를 떠난다. 과연 얼마나 결실을 맺고 돌아올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부담 없이 떠나는 거다. 아무 속박 없이. 하고 싶은 것들은 잔뜩 적어놓았지만 안 지킨 들 어떠랴.
저녁에 도착한 제주도. 고향 공기, 오랜만이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바깥 구경하는데 중국어 간판이 많이 보인다. 요새 한중 관계 악화로 중국인 관광객이 줄었다는데 제주 도민의 생계가 조금은 걱정이 되고
한편 몸살을 앓았던 제주도가 숨을 쉬겠구나 하는 약간의 안도?를 느낀다. 집에 와보니 생각보다 많이 아담하다. 그래도 마당 있는 삼층집은 처음이라 모든 게 사랑스럽다. 내 살림이 없고 주변의 편의시설이 없어서 집이라기보다는 여행 온 기분이다. 첫날이라 그런 건가.
내 소울푸드 커피. 책과 커피는 포기 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