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치

커피와 브라우니 4900원

by 어른이 된 피터팬

이른 아침, 창으로 새벽이 섞인 뿌연 밝음이 들어온다.
6시다. 6시의 밝음은 이런 느낌이다. 바쁜 일상으로 아침엔 감각을 off 했던 것 같은데, 오랜만에 느낀다.


모닝커피는 서울에서나 제주에서나 나의 아침을 열어준다.
서울 집에선 멜리타 커피머신이 진한 아메리카노를 내려주지만 여기에선 드립 커피를 마신다.

여기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로 했다. 3층은 온전히 나의 공간이니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내려가 먹을 것을 가져오고 책 읽고 싶으면 읽고 영화가 보고 싶으면 영화를 읽으면 된다.

나는 3층 작은 방을 내 서재로 지정했다. 여기에 가져온 책들과 노트북, 간식들을 쌓아두니 아늑한 카페 같다. 커피를 가져와 아늑함과 함께 마신다.


오전이 금방 갔다. 먹고 책 읽고 창밖 구경하다 보니 벌써 점심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제주 간식. 보리빵. 혼자 5개를 뜯어먹었다. 파리바게트의 어느 빵보다 중독성이 강하고 맛있다.


저녁 즈음, 제주 시내에 나갔다. 일요일인데 거리에 사람이 없다. 도로에 차는 많은데 길에 사람이 없으니 한적한 느낌이다. 눈에 보이는 아무 카페나 들어갔다. 브라우니와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켰더니 4900원이다. 아직 돈벌이가 없는 내가 누리는 작은 사치.


책을 꺼내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처음엔 손님이 나밖에 없었다. 1시간 반 동안 내 또래 여자 두 명(친구인 듯), 할머니 두 분, 아빠뻘 남성 두 분이 온 게 전부다. 두건을 쓰신 주인아저씨도 장사엔 별 관심이 없으신듯하다.
주문한 것을 서빙한 후에는 안쪽으로 들어가 게임을 하시거나 스포츠 경기를 보시는 것 같았다. 유자차를 시키신 할머니께서 뜨거운 물을 더 갖다 달라고 두 번이나 부르셨는데 못 들으시고는 세 번째 부를 때야 나오셨다.

서울과는 다른 분위기를 즐기고 카페를 나왔다.

카페에서 나와 이마트에 장 보러 갔다. 떡갈나무와 금전수라는 나무가 싸게 팔길래 집에 데리고 왔다.
이제까지 본 떡갈나무는 크고 굵은 나무였는데 이 아이는 완전 애기 나무다. 좀 더 자라면 할머니네( 제주시 함경면 조수리에 있는 시골집) 마당에 있는 흙을 퍼와서 분갈이해야지.


오늘은 중고사이트에서 테이블 2개를 구매해 식탁보를 씌웠다. 그랬더니 훌륭한 식탁 완성!
내가 주문한 커피포트랑 우드 트레이가 오면 여기에 비치하고 3층을 나만의 미니 카페로 만들 계획이다.


저녁 먹고 나서 갖는 영화 타임. 예전에 봤던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서 리스트를 뒤적거렸다. 데이비드 게일이라는 반전영화를 선택. 이제까지 세 번을 다시 본 영화다. 사형제도의 허점을 밝히기 위해 치르는 큰 희생. 자신의 소신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것, 나는 엄두도 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凡人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이렇게 제주에서의 두 번째 밤이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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