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영원한 비밀은 없다

by 안제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방의 벽마다 사방으로 붙어있는 내 아들의 사진을 보지도 않은 채,

내 조그만 집을 한번 둘러보지도 않은 채

현관에서 신발을 벗은 그는 그저, 나를 향해 직진해

그 여느 때보다도 힘껏 나를 끌어안았다.


잠시 진정되는 듯한 나의 눈물은

마르지 않는 샘처럼 계속해서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의 어린 남자친구는 한없이 들썩이는 내 등을 쓸어내리며


괜찮아.

괜찮아.

많이 힘들었지?

괜찮아...


그저 나이 많은 여자친구를 따뜻하게 위로했다.

10여 분이 흘렀을까.

조금 진정된 나를 떨어뜨려놓고

그제서야 그는 찬찬히 내 방을 둘러보았다.

백일 때 찍었던 아들의 사진부터,

갓 돌을 지나 뒤뚱거리며 걸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행복하게 바라보는 나.

복숭앗빛 뺨에 입을 맞추며 즐거워하는 나의 사진.

그리고 최근 면접 때 만나 아들과 함께 찍었던 모습 까지.

찬찬히 내 아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러고는 말한다.

유부녀가 아니라서 다행이야.


속여서 미안해.


아니야, 넌 속인 거 없어.

늘 나에게 말했잖아.

넌 나쁘다고.

그러니 넌 나에게 거짓말한 게 아니야.

난 니가 유부녀일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이었는데

이혼한 거, 아들 있는 거 이건 문제 될게 전혀 없어.

괜찮아.


일곱 살이 어린 사람이다.

내가 대학생 때 이 사람은 고작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나는 평소 어른스러운 남자를 좋아한다고 말해오곤 했다. 전 남편은 나보다 다섯 살이 많은 남자였지만

전혀 어른스럽다고 볼 수 없었다.

외아들에 부모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그와 비교했을 때 나보다는 일곱 살이 어린,

전 남편과는 띠동갑인 지금의 내 남자친구는

나보다, 또 내 전 남편보다 훨씬 더 속 깊고 어른스럽다.


감정의 미동도 크지 않다.

늘 잔잔한 파도 같은 사람.

이렇게 나는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닫는다.

마흔이 되어서야.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것이 아니듯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어린애 같고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 당연한 진리를 지금 이 순간

나는 또 한 번 깨닫는다.

살면서 느끼는 거지만 정말이지 삶은 깨달음의 연속이다.


한편으로, 내 가치를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이 사람에게 내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굽히지 않기 위해 거짓말로 그를 아프게 했던 나란 사람은

얼마나 더 살아내야 지금보다 더 성숙해지는 걸까.

나 자신이 혐오스럽다.


그런 그가 자기의 이야기를 내어놓는다.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기에,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무게가 실린다.

찬찬히, 그리고 나지막이

그러나 너무나도 진심을 담아 이야기한다.


네 아들을 보면 내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아.

어렸을 때 아버지가 어머니를 좀 힘들게 했어.

그리고 할머니랑 고모들이 어머니를 너무 괴롭혀서

아주 어릴 적 어머니가 나를 두고 집을 나가셨어.

그래서 어린 시절은 할머니가 나를 키워주셨고,

몇 년이 지나서 어머니를 다시 만났을 때

어머니는 신앙의 힘으로 자신에게 일어난 힘든 삶을

이겨내려고 하셨어. 그래서 또 어린 나를 두고 멀리까지 신학대학을 다니셨어.

그래서 내 어린 시절엔 어머니가 없어.

나는 어머니보다 할머니가 더 엄마 같아.

너의 아들을 보면 꼭 나 같아.

감정이입이 되고, 마음이 아프고...

우리가 더 단단해져서 하루빨리 데리고 와서

잘 돌봐줘야 할 것 같아.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이제 나랑 같이 이겨내고 헤쳐나가자.


그의 입에서 천천히 오랜 시간 걸쳐 나온 이야기였다.

말문이 막혔다.

더 이상 눈물도 흐르지 않았다.

지난 5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했다.

평화를 달라고.

그저 평범하게 살게 해달라고.

매일 이어지는 나의 기도는

내 아들과 내 부모형제를 위한 기도였으며

더불어 내 삶의 평온을 위함이었다.

이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나는 그동안 그리도 힘든 시간을 겪어야만 했던 것인가.


사랑은 종종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나는 지금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운명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뇌리를 스친다.


여담으로, 우리 집과 전 남편의 집은 모두 천주교이다. 내 아들은 천주교식 세례명이 있고

내 아들의 세례명이 그의 이름과 같다.

성도 같다.

천주교에서는 성과 세례명을 함께 이름 대신 부르곤 한다.

예를 들어 '이갑순'이라는 사람의 천주교 세례명이

'안나'라고 한다면 천주교에선 '이갑순'을 '이안나' 자매님이라고 부른다는 말이다.


내 아들의 천주교 이름은 내 남자친구의 이름과 같다.

사랑이 낳은 착각일 수도 있겠으나

나는 이 상황을 운명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매년 그랬다.

이혼했던 서른여섯에는 삼재라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야.(천주교 신자라고 고백했음에도 삼재 따위를 믿다니 부끄럽기만 하다.)

서른아홉이 되어서는 아홉수라 이런 힘든 일들이 벌어지는 거야.

그러니 내년이 되면 괜찮아질 거야.

내년에는 정말 좋은 일만 생길 거야.

올해 너무 힘들었잖아.


하나를 겨우겨우 넘어서면 또 다른 일이 터져버리니

항상 어떤 일을 걱정할 때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둔다. 그래야 진짜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을 때

내가 받는 데미지가 최소화된다.

40년을 살며 터득한 나만의 자기방어책이다.

고통스러운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니

약간의 강박장애도 생긴다.

저번에 이 옷을 입었을 때 전 시부모가 아이를 못 만나게 했어.

이 옷 입지 말아야지.

지난번 이 목걸이를 했을 때 면접이 또 힘들었었지.

이 목걸이는 절대 안 해.

이번 해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새해부터는 좋은 일만 생길 거야.

왜냐면 삼재도 지났고 아홉수도 지났으니까.


몸무게의 80%가 마음의 무게인 것 마냥

힘들고 불안했고 지쳐있던 지난 시간이었다.

혼자 사는 별 능력 없는 여자가 그렇듯

앞으로 죽는 날까지 홀로 먹고살아야 할 걱정과

내 아들을 못 보게 될까 두려운 앞으로의 일들이 무서워서 견딜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저 모든 걸 내려놓고

나를 너무나 힘들게 만드는 이 세상과

작별 인사를 하고 싶던 순간도 참 많았다.

그럴 때마다 아픈 손가락을 걱정하며 눈물을 보이시는 내 아버지와.

내 일이라면 누구라도 가만히 두지 않을 츤데레 나의 오빠.

무엇보다 제대로 돌봐주지도 못했는데,

엄마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단 걸 나중에 내 아들이 알게 된다면 그 일을 견뎌내야 하는 것은 내 아들의 몫이 될 터였다.


모든 게 핑계이다.

그저 나도 언젠가 올지도 모를 행복의 한순간을

놓고 싶지 않았을지 모른다.

나는 그렇게 지난 시간을 버텨왔다.

혼자 외롭게, 매일 밤 목놓아 울며 버텨온 지난 5년이었다.


하지만 다섯 번의 계절이 돌고 도는 동안

나는 깨달았다.

다음 계절이 오고,

또 다음 해가 와도,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으리란 것을.

그렇게 체념하며 더 이상 내 삶의 행복이란 것을 단념하는 순간.


그가 내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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