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재회(2)

by 안제나

오랜만에 밀실에 남자와 단둘이 있으려니

내 심장은 자연스레 쿵쾅댔다.

하지만 아직도 코로나바이러스의 잔해가 남아있는 탓인지 가벼운 산책에도 나는 기운이 없었다.

아침부터 정성스레 매만진 머리가 헝클어지든 말든

새벽부터 곱게 다린 나의 흰색 스커트가 구겨지든 말든 그동안 어렵게 쌓아온 우아한 이미지는 핸드백과 함께 바닥에 버려둔 채 나는 침대에 퍼지듯 누워 숨을 고르고 있었다.

착해빠진 나의 연하 남자친구는 옆에 테이블에 조용히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쯤 흘렀을까.

갑자기 남자친구가 짠해 보인다.

아니 조금 불쌍해 보였다.

나는 그래도 연애도 열 손가락으로 세지 못할 만큼 수없이 해보고 어쨌든 짧지만 결혼도 해본 경험 있는 여자다.


내가 아는 나의 남자친구는 세 손가락에도 채 못 미치는 연애를 했으며 그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나마도 짧디짧은, 그저 스쳐가는 인연들이었다.

더군다나 최근 6년 가까이 연애는커녕 여자를 접해본 적도 없는 참 보기 드문 청년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연애가 두렵다고 말하던 그가,

오랜만에 연애를 시작했는데

여자친구란 사람은 사귄 지 일주일 만에

코로나에 확진이 되어 2주간 격리하고,

오매불망 오늘을 기다리며 드디어 만나게 되었는데

늙은 여친은 침대에 혼자 널브러져 있고...

참...

갑작스레 그의 모든 것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여기 와서 누워, 나 지금 못 일어나겠어."


예약해둔 저녁을 먹으러 나가려면 아직 4시간의 여유가 있다. 우리는 레스토랑에 가기 전 침대에 잠시 누워 쉼을 청하기로 했다.

그. 러. 나.

혈기왕성한 남녀가

그것도 서로에게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고 있는 남녀가 한 침대에 바르게 누워 편히 쉬기만 하는 것은

어디가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겠지 : )


문제가 전혀 없었던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체온을 오롯이 느끼며 뜨거운 첫날밤을 아니, 첫날 낮을 맞이하게 되었다.


사실 전혀 기대는 없었다.

성적으로.

첫 키스하던 날 40도의 열감에도 나는 정성껏 그의 입속을 헤매며 연상 여자의 연애 베테랑으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싶었으나 아무리 찾아도 그의 혀는 느끼지 못했다.

그날 말은 못 했지만 가슴속 깊이

아... 이 새끼 모태솔로이구나.

느꼈던 터였다.

정말이지 나는 남자친구가 혀가 없는 사람인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육체적 사랑보단 정신적 교감이 더 필요했던 여자인지라 키스조차 할 줄 모르는 그였지만

그의 따뜻한 마음과 나를 편안하게 만드는 무드에

흠뻑 빠지게 되었단말이다.


허나.

나의 예상은 틀렸다.

분명 첫 키스 때 혀도 내밀지 못했던 그였는데.

허허.

계탔다!!! 오 신이시여!!!

누군가 나에게 그와의 첫날밤에 대한 소감을 묻는다면 나는 고민 없이 즉각 대답할 것이다.

마른 장작은 활활 잘 타올랐다고 : )

그렇게 둘만의 긴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그가 미리 예약해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코로나에 확진되고 처음으로 함께하는 둘만의 식사였다.

음식은 황홀히 맛있었고, 나를 배려하며 식사를 돕는 그는 음식의 맛보다 더 황홀한 자태였다.


천천히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주변을 산책했다.

바다가 보이는 산책길에서 우리는 밤공기가 내려앉을 때까지 걷고 또 걸었다.

회복되지 않은 몸과 낮 동안 태웠던 우리의 욕망,

그리고 긴 산책으로 몸은 많이 지쳐있었지만

내 마음은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사랑과 감사, 그리고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정말 생각했다.

두 번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하게 될 거라고.

이미 사람과 남자에게 너무나 지쳐있던 터라

더 이상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 수는 없을 거라고.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변한다.

함부로 그 어떤 것도 단언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나는 이런 분에 넘치는 그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뭇 여자들처럼 오롯이 그 사랑을 가슴에 담지 못했다.


자꾸만 가슴 한편에 죄책감이 느껴진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동그란 얼굴도 떠오른다.

내가 이러고도 엄마인 것인가.

아들을 떼어놓고 내가 젊은 남자와 여기 이런 멋진 곳에서 이런 시간을 보낼 자격이 있는 것인가.


그와의 아름다운 밤에 집중이 흐트러진다.

두 남자 모두에게 미안하고

갑작스레 내가 너무 죄인이 된 것 같다.

심지어 이 남자는 내가 속히 말하는 애 딸린 이혼녀라는 사실을 모른다.

나는 정말이지, 비혼이라고 하니까,

그냥 가볍게 연애만 하자고 하니까,

그런 단순한 마음으로 그를 받아들였고 함께 했다.

하지만 나도 아직 그렇게 나쁜 년은 못되나 보다.

나를 보며 말갛게 웃고

자기의 진심을 한껏 나에게 내어놓는 이 사람을 속이는 것이 너무나 괴롭다.


한편으로 그곳에서,

아이를 버거워하는 할머니와

아이에게 관심 없는 아버지와

아이를 귀찮아하는 배다른 누나와 함께

모자란 엄마를 그리워하며 웅크리고 있을

내 심장 같은 아들이 떠올라

나 자신을 죽이고 싶어졌다.


이런 생각으로 조금 침체된 나는 그와 함께

우리가 머무를 호텔로 돌아왔다.

무겁고 어두운 내 마음과 다르게

호텔에서 내려다 본 야경은 내가 본 그 어느 밤의 장소보다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솔직하게 고백할 용기는 아직 생기지 않는다.

내 기분이 조금 다운된 것을 눈치챈 그가

소리 없이 욕조에 물을 받고 거품을 내어 반신욕을 권한다.

그 손길이 너무 다정해서 또 한 번 눈물이 난다.


욕조에 가만히 앉아서 그에게 말했다.

나는 나쁜 년이야.

나는 정말 너한테 이런 사랑받을 자격 없는 사람이야. 직장동료일 때부터 워낙 착하고 성실하고 반듯한 사람이란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남자가 주는 이 진심을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받을 자격이 없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나는 내가 이혼녀라는 사실을 말할 용기도 없다.

너무나 행복하고 설레는 이 마음을

이제 그만 접어야 할 것 같다.

그에게 미안하지만,

그것만이 내가 사랑하는 내 아들에게

그리고 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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