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재회 (1)

by 안제나

이렇게 시간이 더디게 간 때가 또 있었을까.

코로나 완치 판정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부터

그의 자가격리가 종료될 때까지 우리는 4일의 시간을 더 보내야 했다.

다소 진부하지만 4일이란 시간이 마치 40일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동안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서로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아쉬움을 달래야만 했다.

더 이상은 견디기가 힘들다.

얼굴을 보고 손을 잡고 체온을 느끼고 싶은

뜨거운 욕망만 남아있다.


그는 2주 가까이 물과 음료로만 연명했던 나에게

어떤 음식이 제일 먹고 싶은지 물었다.

재회하게 되는 날 꼭 먹게 하고 싶다고.

나는 조금의 주저도 없이 말했다.


"신비 복숭아가 먹고 싶어."


평소 나는 고기나 밀가루같이 헤비 한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코로나로 완전히 입맛을 잃고 나서는 상큼하고 싱싱한 무언가가 유독 식욕을 자극했다.

초여름 한철에만 잠시 맛볼 수 있는 신비 복숭아가 무척 먹고 싶었다.

신비 복숭아를 한가득 손에 든 그를 이제 그만 만나보고 싶다.


운명의 날은 그렇게 다가왔다.

이미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야경이 멋지다는 호텔을 예약한 그는 약속한 시간이 돼서도 도착하지 않았다.


나는 기다리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워낙 성격이 급한 탓도 있지만,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그 감정이 나는 조금 힘들다.

기질적으로 예민하기도 하지만

그동안 이런저런 일을 겪어오면서 약간의 불안 증세가 있어 기다리는 것이 나에게는 유독 힘이 든다.


약속한 시간보다 훨씬 먼저 일어나서 온몸을 구석구석 씻고, 머리를 말리고 평소 사용하지도 않던 고데기로 머리를 드라이하고 아주 오랜만에 정성 들여 화장을 했다.

뷰러로 속눈썹을 있는 힘껏 올리고, 꼼꼼히 마스카라도 발랐다.

분명 어젯밤 자기 전에 오늘 입을 옷을 골라두었는데 아침이 되니 그 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옷을 꺼내 입고, 저 옷을 벗어던지고

한참 동안 옷을 골라 검은색 카디건에 하얀색 롱 스커트를 입었다.

예쁜 플랫 슈즈를 신고 싶었지만 아직 몸에 기운이 없고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었다.

옷에 어울리지 않는 하얀색 에어맥스 운동화를 신고

나는 그가 오기를 오랜 시간 기다렸다.


심장이 엄청난 속도로 뛰고 있다.

아니 나 마흔살이잖아.

스무살이 아니란 말이다.

도대체 이 연애가 무엇인데, 중년에 접어든 나의 가슴을 이렇게 뛰게 하는 거냐고.

막말로,

수십 번 연애해 보고, 결혼도 해보고,

심지어 나는 애도 낳아봤단 말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이 데이트가 떨리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약속한 시간보다 1시간 늦은 그의 사정은 내가 그토록 먹고 싶어 했던 신비 복숭아를 집 식탁에 고스란히 얹어 놓은 채 나왔는데 이 사실이 나를 데리러 오는 중간에 기억나, 다시 본인의 집으로 돌아가서 복숭아를 싣고 오느라 늦게 됐다는 것이었다.


기막히기도 하면서, 평소 직장동료일 때부터 사소한 건망증이 대단한 사람이란 건 이미 알고 있었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화도 나지 않았다.

마흔살 먹은 나도 오늘 이 재회가 이렇게 정신이 없고 가슴이 떨리는데 이 순진한 아이는 얼마나 마음이 조급했으면 신비 복숭아를 두고 오는 짓을 했을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 시간의 지각이 이해됐다.

나 점점 마음이 넓어지나봐.


마침내 그가 도착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가보니

좁은 도로를 가운데 두고 그가 서있다.


그가 나에게 다가온다.

너무 떨려서 정신이 혼미하고 심장이 고장 난 듯 정신없이 뛰고 있다.


이게 이럴 일인가.

하아.


그렇게 만나고 싶었던 사람인데

그렇게나 보고 싶고 만지고 싶던 사람인데

나는 정녕 또라이 패스인가.

손조차 잡을 수가 없다.

눈조차 마주칠 수가 없다.

내 앞에 서있는 그가 마치 처음 만난 사람인 양 낯설고 어색하고 불편하다.

몇 번이고 내 손을 잡으려고 나를 안으려고 시도하던 그가 나의 불편함을 눈치챘는지 더 이상 시도하지 않는다.


이런 내가 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 늙어서 이게 무슨 추태니 도대체.

그는 조용히 나를 차에 태우고는 예약해둔 호텔로 향했다. 체크인을 하기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다.

우리는 근처에 있는 큰 공원에 가서 햇볕을 쬐며

좀 걷기로 했다.


6월의 푸르름은 더위가 아닌 따뜻함이었다.

수국이며, 공원에 만발한 들꽃이며

꽃향기의 그윽함이 어색한 분위기를 한결 부드럽게 만들었다.


자연스레 그의 손을 잡고 공원을 걸었다.

체력이 별로긴 한가보다.

예전엔 틈나면 2만 보씩 걸을 만큼 나이에 비해

체력은 좋았는데,

고작 30분도 채 못 걷고 나는 정자에 걸터앉고 말았다.


신비복숭아 세알 : )


"지금 먹을까?"

곱게 싸온 신비 복숭아 세알을 내 앞에 꺼내놓는

나의 어린 남자친구.


한입 베어 문 신비 복숭아는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우리만큼이나 싱싱하고 달콤했다.


"와아... 이것만 먹고도 살겠다."


복숭아 하나를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곤 또 하나를 손에 쥔다.

복숭아를 쥐었던 손에서도 달달한 향기가 풍겨온다.

신비 복숭아를 맛있게 나눠먹은 우리는

복숭아향이 나는 손을 맞잡고 공원을 한 바퀴 더 돌며 어색함을 걷어낸 뒤, 체크인을 위해 호텔로 향했다.


코로나로 인해 체크인하는 시간이 부쩍 지연됐다.

문진 표 작성과 소독 절차, 그리고 열 체크가 이루어진 뒤 체크인 절차가 가능하다.

꽤 오랜 시간 기다렸지만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다.

내 곁에는 나를 꼭 안고 있는 복숭아 향을 닮은 남자친구가 함께 있다.

이제 갓 사랑을 시작한 커플이 그렇듯 기다리는 시간도 우리에겐 데이트의 연속일 뿐이었다.

아까 그렇게 어색해했던 내가 맞는지 나도 내가 의심스러웠다.

그의 품은 무척이나 따뜻하고 편안했으며 오랜 시간 불안감을 안고 살아온 내게 꼭 맞는 마음의 안식처 같은 공간이었다.

드디어 긴 시간에 걸친 체크인을 마치고 우리만의 공간에 들어갔다.


햇볕이 내리쬐는 그 공간에

너와 나.

오직 단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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