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코로나에 걸렸다(2)

생활치료센터에서의 열흘

by 안제나

연애를 시작한 지 딱 일주일째였던

6월 13일 일요일,

나는 코로나에 걸려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하게 되었다. 앰뷸런스를 타고 40분가량 달려 도착한 그곳은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허허벌판의 한가운데 자리한

한 기업의 리조트(?)였는데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는 꽤나 쾌적했다.

큰 창문에 창문 밖으로는

싱그러운 나무들이 가득한.

나의 몸 상태와는 정반대로 참 싱싱했던

요양하기에 딱 좋은 그런 곳.


도착하자마자 센터 입구에서 타이레놀 조금과

감기몸살 약 조금, 그리고 체온계와 혈압계 등

몇 개의 의료 기구와 생활치료센터에서의 주의사항 및 해야 할 일 등을 적은 페이퍼를 주었다.


아무도 안내를 해주지 않는다.

나는 감염병 환자이므로.

모든 절차와 안내는 문자와 전화로 이루어진다.

평소 길치인 나는 내 방 호수도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맸다.

5분쯤 왔던 길을 도로 가고 층계를 내려갔다 올라왔다 한끝에, 내 이름이 적힌 방을 찾아냈다.

방에 들어가서야 잔뜩 긴장해있던 몸과 마음이 풀리고 긴장으로 잠시 잊고 있었던 고열이 다시 한번 치솟으면서 몸은 불덩이가 되었다.


그야말로 그 상태 그대로 침대에 널브러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평소 그렇게 깔끔 떠는 스타일도 아니면서

괜스레 2주간 머무를 곳을 깨끗이 정돈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간단하게 싸온 짐을 정리하고

입소자를 위한 박스에 들어있던 조금의 컵라면,

믹스커피와 녹차 티백, 생수 몇 병 등을

있어야 할 곳에 가지런히 놓는 것으로 정리를 대신했다.


방송이 나온다.

밥시간이 되면 문 앞에 도시락을 놓을 테니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나와서 음식을 가져가시오.

밥 종료시간이 되면 방송을 할 테니

먹고 난 음식물 쓰레기를 바깥에 내놓으시오.

시간이 되면 체온을 재고 맥박을 재라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측정된 수치를 앱을 통해 의료진에게 전송한다.

2주간 무한 반복인 시스템이다.

전송한 열의 수치가 높으면 전화가 온다.

열이 높으니 타이레놀 두 알을 복용하세요.

기침이 심해서 잠을 잘 수 없다고 하니

몸살 감기약 조금을 문 앞에 놓겠다고 한다.

치료센터라기보다는 격리 센터가 맞다.

치료는 알아서 하는 거다.

누가 따로 치료해 주지 않는다.

그냥 자연적으로 괜찮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오직 타이레놀에 모든 것을 의지한 채.


시설에서 제공한 타이레놀로는 나의 열을 내리기 턱없이 부족해 집에서 챙겨온 타이레놀 세 박스를 추가로 먹었다.

40평생 살아오며, 다이어트를 365일 해오던 나는

입맛이 없다는 게 뭔지 잘 몰랐다.

실연을 당하고 이혼을 해도 그날만 밥을 잘 넘기지 못했지, 다음 날부터는 밥만 잘 챙겨 먹었던 나였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의 위력은 대단했다.

입맛이 없다.

심지어 미각을 상실하고 후각 역시 상실했다.

그냥 입맛이 없는 게 아니라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떤 음식을 먹어도 종이 씹는 듯한 촉각만 살아있을 뿐 무슨 맛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도시락은 꽤 그럴싸했다.

음식의 양도 충분했다.

하지만 맛을 느끼지 못하니 먹고 싶지가 않고

생존을 위해 조금이라도 먹어보려 하면

먹고 난 것을 모두 게워내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기침은 멈추지 않고 열은 내릴 생각이 없었다.

센터 안에는 TV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정말 너무 아파서.

며칠 지나니 이번엔 하혈이 시작됐다.

새빨간 피가 아니라 죽은 듯한 갈색 피가 멈추지 않고 찔끔찔끔 계속 나온다.


나 진짜 죽는 건가.

이렇게 활짝 피어보지도 못한 채 지게 되는 건가.

이제 막 좀 행복해 보려고.

이제 막 좀 사랑을 시작해 보려던 이참에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밥을 먹을 수 없다고,

일주일 가까이 물과 음료로 연명하고 있다고

의료진에게 알렸다.

돌아온 답은 근처 병원에 가서 링거를 맞고 와야 하는데 어떻게 하겠냐는 물음이었다.

갈 기운도 없었다.

그냥 빨리 이 모든 게 끝났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근육통은 날 매일 매 순간 괴롭게 했다.

온 마디마디가 쑤셔 누워있는 것조차 힘에 겨웠다.

어떤 것도 나를 편하게 해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나 때문에 자가격리에 들어가 재택근무 중이던

내 어린 남자친구는 매일같이 전화를 했다.

매일같이 가 아니라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전화를 붙잡고 있었다.

계속해서 나를 걱정하고 내 멘탈을 보듬어주었다.

몸이 아프고 배가 고프고 기운이 없어

밑바닥까지 드러난 나의 더러운 성질머리와 짜증에도 나의 어린 남자친구는

조금도 언성을 높이지 않고 나이 많은 여자친구의 짜증을 고스란히 받아주며 다독여 주었다.

이 자식은 진짜 천사인 것인가...

열흘이 지나고 폐렴 검사까지 끝났다.

다행히 폐렴에 걸리지는 않았고 열은 정상궤도를 찾았으며 근육통은 사라졌다.

조금은 살 것 같지만 여전히 기침이 심하고

맛을 느끼지 못했으며, 속이 불편하다.

하혈도 멎는 듯했지만 완전히 깨끗하게 멎진 않았다.

의료진은 말했다.

코로나 증상이 나타나고 일주일이 지나면

더 이상 바이러스에 감염력은 없다고 했다.

고열로 정신이 혼미한 상태임에도

역학조사관님은 하루에도 몇 번씩 여러 번 연락을 해서 내가 이동하며 접촉한 경로를 확인했다.

보건소에서는 내가 근무시간 이용했던 푸드코트 CCTV를 보내며 이 중에 누가 너인지 찾아내라고 했다.

하아... 나도 모르겠다 누가 나인지.


참으로 다행이었던 것은

정말로 다행인 것은

나로 인한 추가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역학조사관님은 나에게 '착한 감염자'라는 말을 덧붙여줬다.


안 그래도 증상 발현 전날까지 나와 점심을 먹고

나로 인해 자가격리에 들어간 직장동료들,

증상 발현 전 만났던 내 가족들,

증상이 있던 상황에서 나와 입을 맞췄던

사랑하는 나의 어린 남자친구까지.

아픈 몸에 더해진 죄책감으로

마음까지 힘들고 아픈 터였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 열흘쯤 지나니 몸이 많이 좋아졌다.

센터에서는 내가 많이 힘들면 며칠 더 머물러도 좋으나 열이 없고 상태가 괜찮다면 이제 퇴소해도 좋다는 의견을 전해왔다.


말해 뭐해,

당연히 집에 가야지.


아무리 환경이 좋더라도

(실제로 내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보다 더 넓고 깨끗했다)

죄수처럼 갇혀있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숨 막혀.

퇴소하기로 결정하고 입소할 때 가져온 물품들은

어떤 것도 가져갈 수 없었으므로 모두 폐기한 뒤

콜택시를 불러 집으로 향했다.


열흘간 나의 못된 마음과 예민한 성질을 모두 받아준 내 남자친구를 보러 달려가고 싶었지만

그간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걸을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재밌는 건, 코로나 확진자였던 나는 열흘 만에 퇴소하게 되었지만 밀접접촉자였던 그는 2주간의 격리가 필요했다.


아직 4일을 더 보내야, 나는 그를 만날 수 있다.

이렇게 애탈 수가 없다.

이렇게 보고 싶을 수가 없다.

그도 그런가 보다.

보고 싶어 견디기 힘들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집에 와서 체중을 재보니

4kg이 빠져있다.

역시 굶는 게 답이구나...

먹으면 곧 찔 테지만. 허허


우리는 남자친구의 자가격리가 끝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도대체 오지 않을 것 같은 그날을 기념하기로 했다.

내 남자친구는 집에서 30분 정도 거리의 가까운 곳의 호텔에서 1박2일 호캉스를 하자고 제안했다.

내 몸 상태가 여전히 정상이 아닌 것을 고려했고

연애를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2주를 떨어져 있어야 했으니 조금 더 함께 오래 있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그렇게 나는 코로나에 확진된 지 열흘 만에

나의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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