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코로나에 걸렸다.

by 안제나

뜨거운 첫 입맞춤을 나누고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와서, 따뜻한 물로

오래오래 몸을 씻어내며

입맞춤의 여운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샤워를 하고 나와 로션을 바르고

옷을 갈아입고 누웠는데,

비를 맞아 그런 건지

입맞춤의 설렘이 아직도 남아있어 그런 건지

알 수 없는 열기로 얼굴이 후끈후끈 달아오른 듯했다.


어라

몸이 이상한데.

설렘의 연속이라고 보기엔 물리적으로 몸의 체온이 올라가고 있는 게 느껴졌다.

몸이 너무 뜨거워

39.5도?

어 뭐지, 체온계가 고장 났나.

체온계의 전원을 껐다 켜서 다시 재봐도

체온계는 40도 근처를 웃돌았다.


몸에 기운이 없다.

한기가 느껴지고 몸의 마디마디가 쑤신다.

비를 오래 맞아서 열감기에 걸렸나 봐.

하면서 집에 있는 약 서랍을 뒤적거려

타이레놀 두 알을 삼켰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거야.

늘 그래왔으니까.


땀이 장난이 아니다.

베갯잇을 다 적실 정도로 땀이 나고

겨우겨우 기어서 선반 위 체온계를 집어

체온을 쟀다.

난 40도가 확실했다.


남자친구에게 연락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직장, 일단 직장에 먼저 알려야 해.

인사를 담당하는 직원에게 연락을 했다.

"아무래도 몸살인 것 같아. 열이 너무 많이 나"

체온계 사진을 함께 보냈다.


하루 연차를 내고 금요일을 쉬었다.

그제서야 남자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괜히 걱정을 끼치고 싶지도,

나에게 미안해하는 마음을 갖게 하고 싶지도 않아

몸살 기운이 있는 것 같다며 오늘 급히 연차를 내게

되었다고 말했다.

하루 푹 쉬면 괜찮을 거야.


요즘 호리호리한 체격의 10등신 연하 남자친구에 비해 딱 벌어진 나의 다부진 어깨와 6등신의 비루한 몸뚱이가 부끄러워 급격한 다이어트를 하느라 제대로 먹지도 못했고,

늦은 나이 갑작스러운 연애에 발동이 걸려

매일 밤늦게까지 데이트를 하거나 전화 통화를 하느라 나의 체력이 바닥났기 때문이라 스스로 합리화하며 타이레놀을 4시간 간격으로 먹으며 열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제 막 시작한 우리의 불꽃같은 연애에,

불꽃처럼 올랐던 나의 열감기를 걱정한 어린 남자친구는 퇴근하자마자 쌍화탕과 몸살 감기약, 생강 음료를 사서는 집 앞으로 찾아왔다.


몸이 녹아내릴 것 같은 통증에도

나는 집에서 있던 차림으로 나가고 싶지는 않아

몸에 달라붙는 민소매 원피스에 카디건을 걸쳐 입고

집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선 그의 차를 타고 가까운 공원으로 갔다.


사랑이 시작되긴 했나 보다.

열이 펄펄 끓어오르는데도

우리는 공원에 주차해놓은 차에 앉아

서로의 눈빛으로 위안을 삼으며

또 한 번 뜨거운 입맞춤을 나누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리 타이레놀을 먹어도 열은 내리지 않는다.

남자친구가 사다 준 쌍화탕과 몸살 감기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다.

진짜 코로나인가...

그렇다면 나 너무 억울한데...

이번 주 두어 번 밖에 나가 남자친구와

저녁을 먹긴 했다.

하지만 술도 먹지 않았고 카페도 가지 않았다.

아니 먹고는 살아야 할 것 아닌가.

정말 밥만 먹고 근처 공원에 앉아 있었을 뿐이다.

KF94 마스크를 꼼꼼히 착용하고

정말이지 회사와 집을 반복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금요일 밤이 되었지만 열이 내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날이 밝으면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선별 진료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겠다 다짐했다.

그러면서도 그저 몸살감기가 호되게 걸린 것이었으면..

그저 그 바람뿐이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고열로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회사에 못 나가게 되면 급여는 어쩌지?

급여가 덜 들어오면 내 이번 달 카드값은 어쩌지?

3주 뒤에 내 아들 면접일인데,

그때까지 무조건 나아야 하는데... 가능하겠지?

아침은 밝았고 코로나 검사를 하기 위해

8시 반부터 집 밖을 나서 검사 줄에 합류했다.

검사를 하러 나갈 때만 해도 열이 좀 떨어지는 듯했다.


괜한 기우이길...

나는 코로나에 걸리면 안 돼.

돈이 없는 사람은 돈을 벌어야 하니

코로나도 나는 피해 가야지.


검사를 받고 오늘은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고

집에서 타이레놀을 두통 째 먹어가며

고열과의 사투를 이어 나갔다.

그렇게 일요일 아침이 되었다.

회사에서 밀접접촉자로 코로나 검사를 받았던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다음날 9시쯤 문자메시지로

코로나 확진 여부를 알려줬다고 했다.

9시가 되길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기다리던 시간이 되어도 문자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9시가 훌쩍 넘은 시간,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온다.

하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보건소였다.


안제나 님,

코로나 검사 결과 양성반응이 나왔어요.

역학조사관이 연락을 드리고, 안제나 님께서 머무를 만한 기관을 알아본 뒤 다시 전화드릴 거예요.

그 밖에 생활치료센터로 입소하기 위한 주의사항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얘기가 귀 언저리에서 뱅뱅 맴돌았다.

눈물이 쏟아졌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머릿속에서는 그동안 걱정했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내 급여.

카드값.

아들 면접.

그리고...

아, 어제 나랑 키스했잖아.

얘 어떻게 하지.


만약 나 때문에 남자친구가 코로나에 감염됐다고 하면 그 미안함과 죄책감을 내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당황해하는 보건소 직원의 목소리도

점점 페이드아웃 되는 듯했다.

안 들려 아무 소리도.


2021년 6월 초.

이때까지만 해도, 코로나 확진자 수가

전국 몇백 명 단위로 나오던 시절이라

코로나에 걸린 사람들은 지금보다 특별(?) 대우를

받고 있던 때였다.

이를테면 문자메시지로 알려주더라.

(내가 사는 지역) 몇 번째 확진자라고.

확진자 수가 50명 미만이었을 시절이다.


겨우겨우 보건소와의 통화를 마치고, 가족에게 코로나 사실을 알리고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너 어제 나랑 같이 있었는데...

나 코로나에 확진됐어.

빨리 검사하러 가봐.


내 연락을 받고 어린 내 남자친구는 뭐라고 뭐라고

한참을 얘기했지만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직장에 코로나 확진을 알리고

나는 주섬주섬 그날로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하게 되었다.

앰뷸런스가 도착했고, 동네 주민들이 구경을 나왔다.

나는 죄인처럼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007 작전을 하듯 그렇게 치료센터 직원의 전화로

이동지시를 받으며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했다.


연애를 시작한 지 딱 일주일 되던 날이었다.


이전 03화# 3. 나는 비혼 주의자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