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잡고 교대역에서 사당역까지
6월 초였지만 아직은 밤공기가 쌀쌀했음에도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모처럼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은 채
새벽녘까지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과 버스는 이미 끊긴 터라
우리는 택시를 타고 내가 살고 있는 동네까지 함께 와서 이미 자정이 한참 지난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서둘러 집에 가지 못하고, 집 앞 편의점에 앉아
대화를 이어갔다.
여전히 손을 꼭 잡은 채.
자정이 지나가자 6월임에도 여전히 너무 추웠는데
코로나 여파로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우리 집에 함께 가자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 그럴 단계는 아니었으므로.
편의점 파라솔 의자에 앉아
새벽 세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까지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다가 네시를 넘기지 못하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그가 타고 갈 택시가 오고
나를 한번 조심스레 안더니 택시를 타고 돌아갔다.
이게 얼마 만에 느껴보는 심장의 뜀인지,
떨리거나 두렵거나 불안하거나 초조해서가 아니라
정말 오랜만에 가슴이 설레어서 심장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다음 날,
하루 종일 그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그는 연락이 없었다.
핸드폰이 이상한가.
전원을 두어 번 껐다 켰지만 전화는커녕
문자 하나 오지 않았다.
이건 뭐지.
신종 밀당인가.
분명 어제 우리의 분위기는
새로 시작하는 연인의 무드가 아니었던가.
참으로 기가 막힌데 나이 마흔에 서른셋의 남자에게
먼저 연락하는 건 그다지 자존심이 세지도 않은 나였지만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기막힌 토요일이 지나갈 때쯤
연애에 능숙한 유부녀 사촌 여동생에게 연락해서
어제저녁부터 새벽까지 손잡고 놓지 않고
헤어질 때 나를 안아줬던 남자가
오늘 연락이 없어, 이건 뭐니? 물으니
"언니, 감 잃었구나. 가지고 놀았네 ㅋㅋㅋ 그냥 즐기는 거 아냐?"
아...
세월이 변했구나...
내가 젊었던 시절만 해도
손잡으면 사귀는 건 줄 알았는데
요새 젊은이들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그래... 무슨 연애냐
제주도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욕을 욕을 하며 지난밤 있었던 잠깐의 설렘은 깨끗이 잊어냈다.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이제 예전처럼,
나의 결혼 이전처럼,
남자가 내 인생에 차지하는 부분이 절대적이지 않았으니까.
이혼하고 나니 그건 참 좋더라.
남자는 내 인생에 그다지 중요한 부분이 아니게 됐다.
분명히 그랬다.
헤어지는 일도 그렇게 아프지 않았다.
내 심장 같은 아들과도 떨어져 지내는데
그깟 남자쯤이야...
그렇게 별일 아닌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일요일은 편히 쉬며 원래의 내 루틴대로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도 시키고,
뽀얗게 쌓인 먼지를 털어내며 청소도 하고,
진한 아메리카노에 달달한 과자도 먹고
좋아하는 책을 보면서 여느 주말처럼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오후 늦게, 아니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그에게 카톡이 왔다.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며.
'아... 이 새끼 진짜 뭐지...'
카톡으로 대화하다 손가락이 아파왔는지
그제야 전화가 왔다.
맘 같아서는
'너는 손가락이 부러졌니? 새벽에 그렇게 나를 보냈으면 잘 들어갔는지 잘 쉬고 있는지 안부 문자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니?'라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나는 직장동료이자 일곱 살 많은 누나이다.
그렇게 옹졸해 보이고 싶지 않았나 보다.
전화통화의 8할은 여름휴가 때 제주도를 같이 가자는 내용과 비행기표 예매, 렌터카, 방은 하나이되 투 베드로 해야 하며 제주도의 어느 지역을 가보고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지 여행 얘기가 주를 이뤘다.
그러다가 문득,
옹졸해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보다 이 어린 남자의 속마음을 알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졌는지 어제 왜 연락 안 했니?로 대화가 옮겨져 갔다.
무슨 얘기를 주고받았는지 너무나 흥분상태여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저, 나를 좀 더 알아가고 싶다는 그 아이의 말에
기가 막혀서 외쳤던 나의 외마디.
"아니 10개월을 알고 지냈는데 뭘 더 알아가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돌아온 그의 외마디는.
"그럼 사귀어요 사겨"
로맨틱함이라고는 1도 없는 서로의 고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