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그렇게 사랑은 또 찾아왔다.

by 안제나

TV에서만 봤었다.

나이차가 많은 연상 여자와 연하 남자의 사랑은.

가까운 지인 중에 여덟 살 차이 나는 부부가 있기도 하지만 그 집은 둘 다 초혼이다.


나는 일곱 살 어린 남자와 연애 중이다.

요즘 세상에 큰 이슈가 아닐 수도 있지만.

나는 이혼녀라는 것이

조금은 특별하다면 특별한 일일 거다.


TV에서 보던 연상연하,

특히 여자가 연상인 커플들은

대개 여자의 미모가 대단히 뛰어나다거나

혹은 경제적 여유가 많다거나

혹은 남들보다 뭔가 월등하고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 보인다.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40대에 들어서면서 두툼해진 뱃살과

요즘 트렌드에 맞지 않는 넙데데한 얼굴,

이목구비는 뭐 그래도 봐줄 만한 것 같다.

최저임금을 조금 웃도는 평범한 직장을 다니고

수도권의 조그마한 1.5룸 오피스텔에 살고 있는,

그마저도 자가는 아닌.


어떻게 보면 평범하고 또 어떻게 보면 평범하지 못한 그런 여자임에도 나는 결혼경험이 없는 일곱 살 어린 미혼의 남성과 뜨거운 연애 중이다.


5년 전, 2년이 채 못 되는 짧은 결혼생활을 끝마쳤을 때 나는 두 번 다시 내 인생에 남자와의 사랑은 없을 꺼라 다짐했다.


이 세상에 영원히 존재하는 사랑은 부모 자식 간의 사랑뿐이며 그 밖의 것은 헤어지면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어버리는 가볍고 부질없는 것들이라 생각했다.


하도 이 남자 저 남자에게 데고 상처받다 보니

그 어떤 사람의 고백도 진심으로 담기지 않았던 것 같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너희들의 뜨거운 마음은 차갑게 식고

한번 돌아선 마음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나이니까.


그렇게 나는 내 마음에 보호막을 쳤다.

철저히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한 지 4년이 되던 해, 작년 초여름.

나는 또 한 번 눈치 없이 사랑을 시작하게 됐고

이제 그 이야기를 글로 담아보려 한다.


전업주부로 집에서 아이만 보던 나는

이혼을 하면서 직업이 없는 여자가 되었다.

결혼 전에 한 직종을 꾸준히 버텨내지 못하고

워낙 다양한 직장을 다녔던 터라

전문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맨몸으로 쫓겨나다시피 이혼을 하곤

부모님이 마련해주신 조그마한 오피스텔로 이사하던 날 어머니가 내 손에 쥐어주신 50만 원이

내가 가진 재산의 전부였던 나는.

먹고살기 위해 어떤 일이라도 시작해야 했다.

이혼하고 2년간은 한 대학의 계약직 교직원으로

근무하며 돈을 벌었다.


2년의 계약기간이 끝나고 또다시 백수가 되어야 했던 상황에서, 어렵게 한 법률사무소에 취업을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지금의 일곱 살 어린 남자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지금의 회사에 나의 이혼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앞으로도 내가 일하는 그 어떤 공간에서도

나는 나의 이혼 사실은 알리지 않을 것이다.


면접 때마다 면접관들은 나에게 늘 묻곤 했다.

"결혼은 했나요?"

그도 그럴 것이 30대 후반, 40대 초반 여성의 결혼 여부는 회사에서 장기간 근무하는데 꽤나 중요한 결정요소가 될 수 있으니 나는 그 질문이 기막히거나 부당하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의 대답은

거짓말도 아닌, 그렇다고 진실도 아닌

"혼사 살아요."가 됐다.

나의 입장에서는 "혼자 산다"는 나의 대답은 거짓말이 아니다.

진짜 혼자 살고 있으니까.

"결혼한 적 없어요. 난 처녀랍니다."라고 말하지는 않았으니까 이 대답이 거짓말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혼 후 첫 직장이었던 대학교 계약직원.

이곳에서 근무하는 동안 나의 이혼절차가 모두 끝나게 되었는데 그때 나는 참 바보 같은 순진한 마음으로 내가 처한 상황을 회사 동료들에게 숨김없이 얘기하며 그들에게 다친 내 마음을 위로받고 싶어 했었던 것 같다.


내가 이렇게 불쌍한 여자라고,

내가 이렇게 엿같은 결혼생활을 했으며,

이 세상에 나보다 불행한 여자는 없을 거라고.

그들은 소설 같은 나의 이혼 스토리를 들으며

앞에서는 나를 위로하고 공감해주었지만

뒤에서는 나를 동정하며, 불쌍히 여기며

나를 통해 본인들의 평탄한 삶의 위치를

다시 한번 단단히 했던 것 같다.


이를테면

"나도 참 힘든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쟤를 보면 나는 그래도 살만한 것 같아."와 같은

남의 불행을 통해 본인들의 삶에 안도하게 되는

뭐 그런 마음.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이 얘기를 전해 들으며 앞으로 내가 입사하는 어떤 회사에서도 이혼녀라는 사실은 절대로 말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혼자 사는 여자는 곧 미혼이다,라고 받아들이는 지금의 회사 분위기에서 나는 자연스레 나이 꽉 찬 노처녀로 회사에 자리 잡아갔다.


그때 내 나이 서른아홉.


사람들과 친해지면 어쩔 수 없이

나에 대해 묻고, 너에 대해 묻고

그러면 또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거나

아니면 사실대로 말해 동정을 사거나

하는 그런 진부한 과정이 싫고 지쳐,

나는 작정하고 사람들과 거리를 두었다.


점심도 혼자 먹고, 집에도 혼자 가고

어느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은 채

그렇게 회사생활을 이어가던 하루하루였다.


어느 날 옆자리 앉아 일하는 마케팅 부서 대리가 물었다.

"왜 과장님은 다른 사람이랑 친하게 안 지내세요?"

"나는 그냥, 사람들이 귀찮아요."

"그래도 사람들하고 소통하고 지내셔야죠."

"별로 안 내켜요."

서글서글하니 참으로 성실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체격에

얼굴이 완두콩 만하고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예의 바른.

참 고생 한번 안 해보고 바르게 컸을 것 같은 그였다.


한 달, 두 달 이어지던 직장생활에

옆자리 대리와 꽤나 자주 이야기를 하게 되고

피곤한 의뢰인들과 무리한 업무를 지시하는 회사 상사들 험담을 해가며 우리 둘 사이는 점점 더 가까워지게 됐다.


실제로 수십 명 되는 회사 직원 중

나는 그 사람이 제일 편했다.

얘는 감정 소모가 필요 없어.

삐지지도 않고 눈치 주지도 않고.

매번 어쩌고 저쩌고 하며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펼치는 뭇 계집애들보다 훨씬 마음 편해.


나는 가끔 집에서 챙겨 온 블루베리나 사과를

옆자리 남직원과 나눠먹었다.

참 동생 같고 편했던,

그러나 전혀 남자로 보이지는 않는 그와.

더불어 회사에서도 조금씩 다른 사람들과 친분을 다지며 조금은 덜 쓸쓸한 회사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회사에 입사한 지 10개월쯤 지났을 무렵,

옆자리 대리가 내게 고기를 사주겠다고 한다.

돼지고기도 아니고 무려 소고기를!

누구누구 모일까요?라고 묻는 그에게

여러 명 모이면 고깃값이 장난 아닐 것 같다는 말을 넌지시 던졌는데

"그러면 둘이 먹을까요?"라고 묻더라.

결단코 나는 꼬실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정말로 다른 사람들 없이 나에게 가장 편안함을 주는 존재와 좀 더 많은 소고기를 양껏 먹고 싶었을 뿐이다. ㅋㅋㅋ


회사 근처에 비싸고 정갈하기로 소문난 소고기집을 미리 예약한 젊은 청년과 룸에서 소고기 코스를 먹었다.

고기에 자연스레 따르는 한두 잔의 술로 분위기는 무르익고 웃기도 울기도 하며 참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참 이상한 일이기도 하지.

정말이지 맹세코,

나는 단 한순간도 그 아이가 남자로 보인 일이 없었다.


좁은 공간에 둘만 있고,

얘가 여기서 발가벗고 돌아다녀도

결단코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혼자 상상한 적이 무수했다.


분명히 소고기 집을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고기를 주문하고 불판에 구워지는 고기를 열심히 주워 먹을 때만 해도 나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는데,

그 고깃집을 나오는 순간 나의 입장은 바뀌었고

어느새 나는 그 젊은이와 손을 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