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사랑이라는 사치스러운 감정

나는 여전히 비겁하다.

by 안제나

모든 것을 고백하고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은 채

내 모든 것을 그에게 보였다.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았지만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


내 비밀을 알고도 아직까지는 변함없이 나를 사랑해 주는 나의 어린 남자친구.

하아... 어디서 이런 사람이 나에게 넝쿨째 굴러 들어온 걸까.

벅차기만 하다.


누군가 그랬다.

인생에는 행복 총 질량의 법칙이 있다고.

너는 지금껏 힘든 일이 많았으니

이제 좋은 일만 있어야 한다고.

사람이 한 평생을 살며 느끼는

총 행복의 질량은 같아야 하니까.

이제 너는 행복해질 차례라고.


나의 고백으로,

또 그의 어린 시절 고백으로

우리는 조금 더 친밀한 관계가 되는 듯했고

연애 역시 정상 궤도에 들어선 듯 했다.


코로나 완치 판정을 받고 회사에 첫 출근을 했을 때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히 냉랭하기만 했다.

마치 바이러스를 마주하는 듯한

차갑고 서늘한 눈빛.


지금은 하루에도 몇십만 명씩 코로나 확진자가 쏟아져 나오니 누가 코로나에 걸렸다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내가 코로나에 걸렸던 2021년 6월은 코로나에 걸린 사람이 많지 않아 주변에서 코로나에 걸린 사람을 보면 바이러스 환자 취급을 받던 그런 때였다.


때문에 나는 회사에서 괜히 주눅이 들어 쭈뼛거리며

기침 한 번 마음 편히 하지 못하고, 기침이 날 것 같으면 화장실로 달려가는 처지가 되었다.

분명 생활치료센터에서 퇴소할 때 음성확인을 받았음에도 사람들은 내 곁에 오는 것을 매우 찝찝해했다.


회사에서는 나에게 무급휴가를 권장하며

조금 더 쉬다가 출근할 것을 권고했다.

나도 더 쉬고 싶어, 근데 니들 월급 안줄꺼잖아;;;


평소 내 할말을 다 못하는 성격인지라

저...감염력 없어요...라고 말도 못하고

한껏 주눅들어 있는 나를 안쓰럽게 생각한 내 남자친구는 서초구보건소에 확인 전화를 걸어

안제나는 더이상 코로나 바이러스 전파력이 없는 사람이다 라는 확인을 받고 이 통화내용을 녹음해

대표이사한테 보고하는 멋짐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 보고를 받은 대표이사 왈,

그래 이렇게 명확한 걸 원한거였어.

차암나...


이전부터 쭉 같이 점심 식사를 하던 직장동료들은

조심스레 나에게 사내 메신저를 보낸다.


과장님, 당분간 회사 방침으로 모든 직원들이 식사를 따로 하기로 했어요. 조금 지나면 같이 점심 해요!


그래 알았어.

나랑 먹기 부담스럽단 얘기를 사뭇 정성스레 하기도 한다.


메신저를 보내놓고 삼삼오오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꼴이라니.

쳇, 괜스레 서운해지는 마음을 살살 달래본다.

서운한 마음에 찔끔 눈물이 핑 돌 무렵,

그에게 메신저가 온다.


점심 나랑 둘이 나가자.

: )


그래 적어도 이 공간에서 한 명은 내 편이구나.

언제까지일지 모르겠지만.


대학시절 CC를 해봤거나 사내연애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감정이다.

나는 대학시절 4년 내내 CC였다.

전공은 달랐지만 같은 동아리에서 만난 같은 학번 동기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는 나에게 남자친구를 넘어서 대학시절 가장 친한 친구이자 형제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대학 입학 때부터 자취를 해서 혼자 지냈던 나에게

그는 가족과도 같았다.

연인의 헤어짐이 누구 한 사람만의 잘못으로 일어나는 일은 아니겠지만 굳이 그 아이와의 헤어짐에 있어 누구의 잘못이 더 큰지 과실을 찾는다면 그 CC 남자친구의 반복되는 거짓말이 헤어짐의 불씨를 당겼다고 할 수 있다.


니 탓이야. 그러게 왜 자꾸 하지 말라는 거짓말을 해대니.

짜식이. 걸리지나 말던가. 쩝.


그런데 하필이면 그 아이가 군대에 가 상병 휴가를 나왔을 때 그동안의 거짓말이 탄로나 내가 그에게 헤어짐을 고했는데 이 아이는 주변 사람들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는 둥

더이상 살 수 없다는 둥

세상에 혼자 남은 기분이라는 둥

극에 바친 감정을 호소했고 결국 그 사건이 독이 되어 나는 주제도 모르고 꽤 괜찮은 남자친구를 배신한, 더불어 학교 선후배들과 동기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고무신 거꾸로 신은 못된 년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나의 4년간의 CC 생활은 끝이 났다.


나는 지금도 그 친구와 친구로 지낼 수 있다.

비록 연인 관계는 끝났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가장 친한 친구였고, 맘 맞는 동기였으며

형제 같은 우애를 나눈 사람들이다.

일말의 연인으로서의 감정은 조금도 남아있지 않기에 편히 보며 웃을 수 있는데, 그 친구는 나를 피한다더라 ^^;;;


친한 동기 결혼식 전, 청첩장을 나눠주러 동아리 친구들이 모이는 자리에 안제나를 부르면 나는 나가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는 얘길 듣고

내가 그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던 기억도 있다.


그래 내가 안나갈테니 편히 만나 놀아라.

쪼잔한 녀석.


이 경험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CC가 됐든 사내연애가 됐든 한 공간에서 누군가와 연애를 하면 희한하게 여자에게 더 박한 상황이 펼쳐진다.

자격지심일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내가 경험했던

CC의 세계는 그랬다.


때문에 나는 내 어린 남자친구와의 연애를

철저하게 비밀에 부치려고 한다.

더 이상 공격받고 싶지 않아.


다행히 연애 전부터도 워낙 친했던 터라

둘이 점심을 먹으러 나가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눈치였다.

점심시간은 또 다른 데이트 시간이다.

1분 1초를 아까워하며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을 사서 법원 근처를 산책한다.

가끔 몰래 손도 잡고 ^^

나무와 꽃과 달달한 바람과, 그리고 너 : )

사뭇 행복해지는 따뜻한 마음.

잠시나마 현실을 잊고 또 한번 달콤한 꿈에 젖는다.

날이 갈수록 이 녀석은 나에게 진심을 다한다.

진짜 나를 엄-청 사랑하고 있구나.

나한테 푸-욱 빠져 있구나가 절로 느껴진다.

함께 지하철을 타고 퇴근을 할 때도

자기의 눈에 나를 듬뿍 담는다.

나에게서 1초도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벅차다.

정말 가슴이 벅차다.


그런데 나는 참 꼬일 대로 꼬인 사람인가 보다.

이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으면서

도대체 왜 그 사랑을 그대로 고스란히 받지 못하는 걸까.

왜 계속해서 끊임없이 죄책감이 밀려드는 걸까.

죄책감은 한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두 사람에게서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든다.


이 착하고 순한 남자친구에게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더 어리고 예쁘고 싱싱하고, 결혼 경험이 없는 예쁜 아가씨가 이 남자에게 어울릴 거 같다.

내가 이 남자의 인생을 망치고 기회를 빼앗고 있다는 죄책감이 들어 나는 이 사람의 사랑을 오롯이 담지 못하고 자꾸만 밀어내게 된다.


또 한편으로는 내 아들,

40km 밖, 멀리서 엄마 없이 자라고 있을

가여운 내 아들은 도대체 무슨 죄란 말인가.

아무리 급여가 적어도

주변에 양육을 도와줄 사람이 없어도

엄마가 아이를 키워야지.라고 뭇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전 남편은 상당한 재력가다.

전 남편과 나의 소득차는 가볍게 헤아려지지도 않는다.


내 욕심에 내가 아들을 데려와 나중에 원망을 들으면 어쩌지.

나의 1.5룸을 답답해하며, 왜 엄마는 돈도 없으면서 나를 데려와 풍족하게 살 기회를 빼앗은 거냐며 나를 책망할까 두렵다.


그런 아들을 돌보지도 못하는 주제에

가뿐해진 몸으로 마음마저 가뿐하게

다른 남자와 행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회사에는 남자친구의 누나도 근무 중이다.

심지어 팀 내에서 나의 선임이다.

동생과는 달리 누나는 순둥이 캐릭터가 아니다.

기강을 잡고 직언을 잘하는 꽤나 센케이다.

다행히 나와 그의 누나는 동료로 잘 지내고 있지만

그의 누나는 나와 동생의 관계를 전혀 모르고 있다.

거기다가 나는 일곱 살이 많고, 이혼을 했다.

나는 그의 누나조차 속이고 있는 것이다.

계속해서 속고 속이는 거짓의 뫼비우스 띠.

젠장.

누나가 알게 되면 어쩌지.

하... 팀에서 업무로도 엄청 괴로워질 텐데.

진짜 첩첩산중이다.


하아...

더 이상 안될 거 같아.

이 죄책감과 두려움과 불안감을 난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아.

미안해 심쿵아.

나는 이렇게 나약하고 이기적인 여자야.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너랑만 헤어지면 나는 그저 예전처럼

비혼을 지향하는 고아한 여인으로

평범하게 지낼 수 있어.

쥐도새도 모르게, 우리가 사겼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 조용히 헤어지기만 한다면.


나는 몇 날 며칠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으며

심쿵이의 사랑에 온전히 행복할 수 없었다.

아닌 것 같아.

이런 식으로 지낼 수 없어.

나는 내 아들을 돌보지 못하는 죄를 저지르고 있으니 그 죄의 대가로 평생 홀로 지내야 해.

그리고 착하디 착한 내 남자친구의 인생을 망치고 싶지 않아.

그에게는 예쁘고 어리고 평범한, 아울러 얼굴도 조그만 그런 여자가 어울려.


욕심을 내려놓자.

그 몇 주 즐거웠잖니.

가슴 뛰게 행복했잖아.

분수에 맞지 않는 욕심을 내면 벌을 받게 되는 거야.

내려놓자...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의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헤어지자.


그렇게 나는 그에게 헤어짐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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