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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제나 May 24. 2022

# 6. 전쟁의 서막

요즘 아이를 원해도 안 생기는 집이 많대.

내 나이가 서른아홉이고 공주님 나이가 서른넷이니

아이가 생기기 어려울 수도 있어.

공주님 아이 엄청 낳고 싶어 했잖아.

어차피 결혼할 건데 지금부터 준비해도 늦은 거야.

한 번에 임신되리란 보장도 없고.


중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아이큐 검사를 했었다.

나의 아이큐는 134.

한 학년이 700명이 넘던 시절에,

나는 전교에서 네 번째로 머리가 좋았던 학생이었다.


20여 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서른넷의 지금.

나는 완전히 똥멍청이가 됐다.

마흔한 살인 지금의 내가 서른넷의 나를 떠올려보면

정말이지 등신 등신 이런 상등신이 따로 없다.


그 당시 전 남편의 사탕발림을 나는 그대로 믿었다.

아니, 나의 판단력은 사랑이란 멍청한 감정 뒤로 감춰줬고 나는 그저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싶었다. 그게 마음이 편하니까.


그러고는 채 몇 번 되지 않는 시도 끝에,

나는 그의 영악한 계략에 속절없이 당했고

결국 그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다.


마침 우리 집은 엄마가 뉴욕으로 여행을 떠난 상황이었고 나는 아버지와 단둘이 미사를 드리기 위해 성당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부모는 자식이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자식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모양이다.


그 녀석, 뭔가 있는 거니?

...

그 녀석, 혹시 이혼했니?

네...

애도 있니?

네...


안돼.


나는 34년을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아버지에게

안. 돼.

라는 단어를 들어본 일이 없다.

나뿐 아니라 오빠에게도 엄마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아버지는 "안돼"라는 단호한 부정의 단어를 사용하신 적이 없다.


내가 고3 시절 당시 고3 학년주임을 맡아 누구보다 입시에 빠삭했던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고

지방 교대가 아닌 서울 소재 생활과학대를 선택했을 때도,

대학을 졸업할 때 취업하라는 아버지 말을 듣지 않고 아나운서를 하겠다고 깝죽거렸을 때도,

아버지는 한 번도 내 뜻을 존중하지 않으신 적이 없었다.


안돼


하아.... 차마 임신했다는 말은 나오지 않고

긴... 싸움이 시작됐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 찼다.

그렇게 어색한 기운으로 나는 오빠와 함께 살고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동안 아버지에게선 연락이 없다.

그리고 엄마가 뉴욕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집으로 오너라.


아버지의 단호하고 간결한 문자메시지.

아버지의 호출로 집에 가니

엄마는 거의 기절할 정도로 통곡을 하신다.


아니, 내가 키운 애가 왜 재취 자리로 시집을 가야 해. 안돼, 절대 안 돼.


아버지는 입을 꾹 다무신 채.

이제껏 본 적 없는 어두운 얼굴로 허공만 바라보신다. 그러고는 나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셨다.


하늘에 있는 너희 엄마도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다.


하아......................... 미치겠다.

이때부터 영화 한 편을 찍기 시작한다.

하필이면 막장 중 막장의 스토리로.


부모님은 회사를 못 나가게 하셨다.

(마침 나는 목 디스크가 심하게 와 거동이 불편해,

회사를 그만두려던 참이었다.)

그리고 나선 오빠와 살던 집에서 부모님 집으로 나를 데려와 핸드폰을 빼앗고 방에 가뒀다.

그에게 전화가 오면 엄마는 전화를 대신 받아,

연락하지 말라는 매서운 말만 남긴 채 전화를 끊어버리셨고 아버지가 출근하시면 엄마는 외출도 삼가고 하루 종일 나를 감시했다.


그렇게 1주일이 지났을까.

엄마가 잠시 외출한 틈을 타, 그가 문을 부술 기세로 힘껏 두드린다.


나와 빨리


옆집에서 들을까 문을 살포시 열자, 그의 핼쑥해진 얼굴이 보인다.

그는 무작정 나를 데리고 멀리 도망쳤다.


중간 과정은 기억나지도 않는다.

아버지의 불호령에 그가 다시 나를 집에 데려다주는 것으로 짧은 사랑의 도피는 끝이 나는 듯했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 했던가.

부모님은 나의 대성통곡이 섞인 몇 주간의 기나긴 석고대죄와 그리고 그의 진정한 사랑처럼 보였던 역대급 메서드 연기에 속아 결국 우리를 허락하셨다.


그래.

새엄마면 어때.

어차피 전처의 아이는 시어머니가 길러주신 댔으니

걱정할 거 없어!

다시 생각해도 이 남자 같은 완벽한 조건의 결혼 상대자는 없지.

한강이 보이는 집에 살 수 있고,

내가 바라던 대로 평생 돈 걱정 없이 전업주부로

그렇게 행복하게 살면 돼!


이렇게 힘든 고비를 모두 넘기고

나는 매끄럽게 결혼까지 골인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 좀 보자.

그의 어머니께서 나를 호출하셨다.


그에게 연락해, 어머니께서 나를 보자시는데 무슨 일인지 물으니 결혼 전에 선물이라도 사주시려는  같다고  만나고 오라던 그였다.

한껏 차려입고 그의 어머니를 만나러 약속 장소로 향했다.


더 예뻐졌네?

근데, 속눈썹 네 거니?


잊을 수가 없는 멘트였다.

시어머니가 될지도 모르는 분이, 아들의 여자친구를 만나서 속눈썹이 네 거냐고 물을 때부터 보통이 아닌 분이란 걸 눈치챘어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서른넷의 나는 멍청이 중에서도

상멍청이였다.


. 어머니,

제 속눈썹은 인조 눈썹이 아닌 제 눈썹이에요.

뷰러를 있는 힘껏 집어 올리고 마스카라를 처바르면

이렇게 된답니다 : )

지금의 나라면 그렇게 말했을 텐데.


어색한 미소를 보이고 그의 어머니 차를 타고 교외로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음식이 나오고 그의 어머니가 묻는다.


오빠를 어떻게 생각해?


이건 또 무슨 질문일까.

하아... 진심 회사 면접 보는 것보다 더 힘들다.

무슨 이런 난해한 질문을.

(뭘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어머니.

결혼할 거니까 이 자리에 나와있는 거 아니겠어요?

모르시겠지만 제 뱃속엔 아드님의 핏줄이 생겨 자라고 있다고요!)


어머니께서 감사하게도 아이를 키워주실 거라고 얘기를 들었어요.

너희는 너희끼리 잘 살면 된다고, 딸은 어머니께서 키워주실 거라고.

그렇게 전해 들었습니다.


무슨 소리니?

어떻게 너는 아이 있는 남자랑 결혼할 거라면서

아이와 남자를 따로 떼어서 생각을 할 수 있니?

딸처럼 생각하고 키워라. 야무지고 똑똑한 애다.

키우지 않을 거면 예쁘게 헤어져라.


예쁘게 헤어져라.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 거야.

하아... 이 새끼의 거짓말은 어디까진 거야.

진짜 뭐 어떻게 하자는 거야.

아이는 시부모님 되실 분이 키워주시기로 했다고

우리 부모님께 말씀드린 것이 허락을 받는데 한몫을 했던 터였다. 근데 그 말도 거짓말이었던 건가 보다.

이 새끼 마케팅 할게 아니고 소설가를 했어야 했었다. 아니면 이 인간 진짜 허언증인건가...


기가 막히고 목이 메어서 밥이 들어가지 않는데

나보고 예쁘게 헤어지라고 말한 지 1시간도 되지 않아 내 팔짱을 끼고 산책을 하자는 그의 어머니는

내 상식 밖의 사람인 것 같다.

아니지.

이게 그들에겐 상식일 수도 있겠지.


그의 어머니는 그의 차를 타고 나와 나를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주셨다.

차에서 내리려고 하는 나에게.

오빠 전화 안 받을 거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에게 선물 받은 목걸이를 조용히 빼 조수석 손잡이에 걸어두고 조용히 차 문을 열었다.


핸드폰이 계속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머릿속이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그의 거짓말은 끝이 없고, 거짓말쟁이의 아이가 나의 뱃속에 있다. 안그래도 똥멍청이가 된 내 사고의 회로는 고장이 났다. 더이상 돌아가지 않는다.


진실이 뭘까?

과연 그에게 진실이란 게 있긴 한 걸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릿속이 아득해져 터져버리기 직전,

그의 전화를 받았다.


나 지금 집 앞에 와있어.

잠깐만 내려와.


어머니가 나랑 상의도 없이 너한테 그런 얘길 하셨어. 걱정하지 , 아이는 우리 엄마가 키울 거야.

그리고 우리가 결혼하면 1년 안에 전처한테 보낼 거야. 너는 뱃속의 아이랑 나랑 셋이서만 행복하게 살면 돼.

정말이야 믿어줘.


성질 같아선 그의 귓방망이를 힘껏 날리고 싶다.

내 인생이 장난 같냐며 머리끄덩이를 잡고 발로 복부를 차버리고 싶다.


그의 집에선 내가 아이를 키우지 않으면 결혼은 허락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의 아이를 키울 자신도 키울 마음도 없다.

그 사람은 나를 놓지 않는다.

나의 뱃속엔 그의 아이가 있다.


그 중간의 전쟁 같던 몇 개월은 시간의 흐름도 뒤죽박죽,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어쩌면 나 자신이 너무나 끔찍했던 그 일을 기억하고 싶지 않아 스스로 뇌리에서 지워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때의 괴로웠던 기억이 떠올라 빨리 이혼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연하남친과의 사랑얘기나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어쨌든 기나긴 싸움 끝에 우리는, 2년간의 신혼생활을 보장받아

(이 2년의 기간은 남편이었던 사람이 자신의 아이를 전처에게 보내기로 약속한 시간이었다.)


1. 2년간은 우리만 살되, 시어머니와 아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집을 구할 것.

2. 아이 학교 픽업은 내가 할 것.

3. 주말에는 아이와 함께 시간 보낼 것.

4. 아이 아빠는 매일 아이를 보러 시어머니 집에 들를 것.

5. 아이의 모든 학교 행사에는 내가 참여할 것.

6. 동네사람들에게 내가 새엄마란 사실을 숨길 .

7.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 줄 것.


위의 단서를 조건으로 그의 집에서도 어렵게 결혼 허락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잠만 따로 잔다. 는 조건을 길게 풀어놓은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의 나는 등신이다. 아니면 머저리였나.

어쩌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는지도.


이 과정은 5개월간 지속되었으며,

단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정말 끔찍했던 시간이다.

그 사이, 나는 임신했던 아이를 잃었다.

아이가 유산되기 전 날은 전 시아버지의 생신이었다. 그의 부모, 그와 나, 그리고 그의 아이까지 모두 모여 식사를 하는데 그의 어머니란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나는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나 보다.


우리애가 재혼이니까 너 같은 애를 허락하지 초혼이었으면 어림도 없다.

주제도 모르고 무슨 호텔에서 결혼을 한다고 하니. 동네 예식장으로 해라.

결혼하면 우리 손녀(그의 전처 딸을 가리킨다) 옷은 니가 만들어 입혀라.

엄마 자격도 없는 게 몸뚱이 함부로 굴려서 엄마가 됐구나.


이 말을 듣고 앉아 모래알을 씹듯 겨우겨우 밥을 넘기며 끔찍한 저녁식사 자리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던 나는,

다음 날부터 엄청난 양의 하혈을 시작하며

그렇게 아이를 떠나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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